요하

두루치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0월 26일 (목) 08:51 판 (그냥 동아시아사 같은데)

요하(遼河), 또는 랴오허는 만주와 화북 사이의 평야지대를 흐르는 강으로 내몽고에서 발원하여 발해로 들어간다.

지리

역사

고대부터 요하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거쳐가곤 했던 곳으로 특히 우리 한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강이다.

역사가 발흥하기 전 선사 시대에도 요하 일대는 많은 인구가 밀집하던 지역으로 빙하기가 끝난 뒤 많은 인구가 강변을 따라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모여 살던 이들은 서기전 6천년에서 5천년 전, 홍산 문화라는 큰 규모의 신석기 문화권으로 발전하였고 여기서 발생한 농경문화는 동북아 제민족과 북방 유목 민족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더욱 발전된 고대 국가들이 요하 유역으로 들어서게 되니, 서기전 20세기에서 7세기 경 요서를 중심으로 일어선 고조선은 요동과 한반도를 향해 세력을 확장하며 서기전 7세기부터 쟁쟁한 중원 강국들과 대적할 만한 강국으로 번영했으나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요하일대를 상실한 채 한반도로 세력이 위축되었다.[1]

한민족이 요하에서 밀려나고 요하 일대는 한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었으며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 요동 태수 직을 맡고 있던 공손씨 가문(동연)은 189년~238년 동안 요하 유역을 점유했지만 사마의의 위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이 시기 요동은 어느 동방 세력의 지속적인 침공이 이루어지는데, 태조왕 시절부터 시작된 요하 방면으로의 진출은 고구려의 숙원 사업이었다.

결국 중원 세력과 고구려의 공방전이 이뤄졌지만 3세기 경 선비족의 일원인 모용선비가 요동을 점유하며 요하는 선비족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러나 고구려는 요동을 포함한 요하 지역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결국 5세기 광개토대왕의 후연 정벌로 요하는 고구려의 판도에 들어온다.

관련

각주

  1. 이때 도읍지도 요서에서 평양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