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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데뷔를 한 가수는 사카모토 후유미, 고자이 카오리, 고다이 나츠코 등이 데뷔를 한다. 그러나, 1984년 미야코 하루미가, 1986년 모리 마사코가 은퇴를 하고,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1989년 미야코 하루미가 세상을 떠난다.
이 시기에 데뷔를 한 가수는 사카모토 후유미, 고자이 카오리, 고다이 나츠코 등이 데뷔를 한다. 그러나, 1984년 미야코 하루미가, 1986년 모리 마사코가 은퇴를 하고,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1989년 미야코 하루미가 세상을 떠난다.
===1990년대===


===2000년대===
===2000년대===

2016년 5월 4일 (수) 21:31 판

개요

演歌, 일본대중가요 장르 중의 하나이다. 엔카는 일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이다. 주로 바다나 , 눈물, 북쪽 지방등의 소재로 남녀간의 슬픈 사랑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역사

연설가

엔카는 '연설가'(演説歌)의 축약어로 그 기원은 메이지 시대 자유민권운동의 산물이다. 연설가는 번벌정치(藩閥政治, 메이지 유신에 공이 있었던 번의 출신자가 만든 파벌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에 대한 비판을 노래에 담아 정치주장이나 선전의 수단에 사용된 것이다. 즉, 정치를 풍자하는 곡으로서 연설에 대하여 단속이 심해진 19세기 말에 연설을 대신하여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엔카'라는 명칭의 시작인것이다.

유행가의 시대

쇼와시대에 접어들면서, 외국 레코드 회사가 일본에 제조회사를 만들어 전기녹음이라는 새로운 녹음시스템을 도입해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쇼와 3년(1928년)에 사토 치야코나 후타무라 테이이치, 쇼와 6년(1931년)에 후지야마 이치로의 등장으로 '유행가'라는 일대분야가 대중음악의 세계를 거의 독접하여, 엔카는 잠시 음악계에서 퇴장하게 된다.

1950년대

전후 일본의 대중가요는 유행가에 치우쳐 있었지만, 신세대의 등장과 쇼와 28년(1953년)에 후지무라 이치로의 은퇴에 따른 음악성의 동요와 동시에 지금의 엔카와 비슷한 곡이 출현했다. 그 시기 이미 부기우기(boogiewoogie, 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리듬이 빠른 재즈의 하나)로 유행가가수로 데뷔했던 미소라 히바리도 음악성을 시프트했고, 킹 레코드에서 망향가요의 카스가 하치로, 미하시 미치야, 빅터 레코드(現 빅터 엔터테인먼트)에서 임협노선의 스타 츠루타 코지, 테이직 레코드(現 테이직 엔터테인먼트)에서 낭곡출신의 미나미 하루오, 전후 대스타 이시하라 유지로, 콜롬비아 레코드(現 일본 콜롬비아)에서는 나키부시의 시마쿠라 치요코가 등장한다.

1960년대

쇼와 38년(1963년)에 엔카전문 레코드 회사인 일본크라운이 독립하고, 여러가지 종류의 음악의 유입으로 '유행가'는 소멸하고, 다수의 음악분야가 성립되었다. 그 와중에 요나누키 음계(ヨナ抜き音階, 서양의 7음계를 기준으로 4번째 음인 파(B)와 7번째 음인 시(B)가 빠진 형태의 5음계)와 소절(しょうせつ, 음악에서 악보가 읽기 쉽게 적당한 길이로 구분된 것)을 이용한 것이 '엔카'라고 호칭된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곡은 柔(1964년 10월, 미소라 히바리의 곡, 180만장 이상 판매, 제 7회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涙の連絡船(1965년 10월, 미야코 하루미의 곡, 155만장 이상 판매), 星影のワルツ(1966년 3월, 센 마사오의 곡, 170만장 이상 판매), 好きになった人(1968년 9월, 미야코 하루미의 곡, 20만장 판매) 등이 있다.

1970년대

1970년대에 들어 이츠키 히로시(五木ひろし), 야시로 아키(八代亜紀), 모리 마사코(森昌子), 마키무라 미에코(牧村三枝子),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나카죠 키요시(中条きよし), 니시카와 미네코, 호소카와 타카시, 니이누마 켄지, 카와나카 미유키 등이 등장했다. 이 시기의 히트를 친 엔카곡에는 1970년대 전반에는 圭子の夢は夜ひらく(1970년 4월, 77만장 판매), 傷だらけの人生(1970년 12월, 100만장 가까이 판매), よこはま•たそがれ(1971년 3월, 153만장 판매), わたしの城下町(1971년 4월, 134만장 판매), 雨の御堂筋(1971년, 79만장), 瀬戸の花嫁(1972년 4월, 74만장 판매), 女のみち(1972년 5월, 330만매 이상 판매), せんせい(1972년 7월, 51만장 판매), 女のねがい(1972년 12월, 83만장 판매), なみだ恋(1973년 2월, 60만장 판매), ふるさと(1973년 7월, 38만장 판매), くちなしの花(1973년 8월, 150만장 판매), 夜空(1973년 10월, 44만장 판매), なみだの操(1973년 11월, 200만장 판매), 夫婦鏡(1974년 5월, 150만장 판매) 등이 있고, 1970년대 후반에는 昔の名前で出ています(1975년 1월, 95만장 판매, 心のこり(1975년 4월, 80만장 판매), 北の宿から(1975년 12월, 140만장 판매), 嫁に来ないか(니이누마 켄지(新沼謙治) 노래, 1976년 6월, 15만장 판매), 津軽海峡・冬景色(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노래, 1977년 1월, 72만장 판매), 北国の春(센 마사오(千昌夫) 노래, 1977년 4월, 130만장 판매) 등이 있다.

1980~90년대

1970년대 후반부터 중장년층 사이에서 가라오케 붐이 일면서 1980년대에는 호소카와 타카시같이 노래방에서 부르기 쉬움을 의식한 가수들이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러나 청년층에서는 팝송을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엔카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는 것도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듣는 음악에 더더욱 괴리가 발생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된다. TV방송도 청년층을 타겟으로 잡은 것과 중년층을 타겟으로 잡은 것으로 나누어지고, 이렇게 되면서 연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엔카곡이 탄생하는 것이 그 이전에 비하여 어려워졌다. 또, 청년층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일본 팝도 노래방용의 악곡을 제작하는 등의 마케팅을 하게 되고, 기타지마 사부로같은 성량이 큰 가수나, 모리 신이치같은 독창적인 가창법을 가진 가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엔카는 1960~70년대에 비하여 TV 노출이 줄어들고, 그 자리는 대부분 아이돌음악이 차지한다. 그러면서 엔카도 보수화와 쇠퇴가 발생한다.

이 시기에 데뷔를 한 가수는 사카모토 후유미, 고자이 카오리, 고다이 나츠코 등이 데뷔를 한다. 그러나, 1984년 미야코 하루미가, 1986년 모리 마사코가 은퇴를 하고, 1987년 이시하라 유지로, 1989년 미야코 하루미가 세상을 떠난다.

2000년대

오리콘 차트 1위곡

  • 주간
    • 星影のワルツ/千昌夫 (1968년 6월 3일부터 7월 1일까지, 1968년 8월 3일부터 8월 9일까지의 6주)
    • 港町ブルース/森進一 (1969년 6월 9일부터 7월 7일까지의 5주)
    • 池袋の夜/青江三奈 (1969년 9월 8일부터 10월 13일까지의 6주)
  • 연간
    • 1968년 : 星影のワルツ/千昌夫
    • 1971년 : わたしの城下町/小柳ルミ子
    • 1972년, 1973년 : 女のみち/宮史郎とぴんからトリオ
    • 1974년 : なみだの操/殿さまキングス

유명 엔카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