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418번째 줄: | 418번째 줄: | ||
[[한국]]에서는 20세기 초반 에스페란토 운동이 활발했다. 대표적인 예로 문학 시간에 배우는 KAPF<ref>흔히 '카프'라고 읽고 넘어가지만 문자 하나하나의 이름을 에스페란토식으로 읽어서 '코아포포'라고 해도 상관없다, 아마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겠지만.</ref>가 사실은 에스페란토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을 뜻하는 약자이다. 해방 이후 에스페란토 운동이 줄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유명 에스페란티스토인 [[석주명]]이 주요 학자로 활동하면서, 에스페란토협회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6·25 전쟁]] 문제에도 끄떡없이 사단법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정작 가장 큰 위협이 된 조치는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정부지원단체에 대한 보조금 삭감정책'을 발표하면서 당시 문교부에서 해당 단체 중 하나로 한국에스페란토협회를 추가한 것. 다행히 1994년 [[한국 방문의 해]]와 함께 발맞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유치하면서 잠시 활동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 [[한국]]에서는 20세기 초반 에스페란토 운동이 활발했다. 대표적인 예로 문학 시간에 배우는 KAPF<ref>흔히 '카프'라고 읽고 넘어가지만 문자 하나하나의 이름을 에스페란토식으로 읽어서 '코아포포'라고 해도 상관없다, 아마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겠지만.</ref>가 사실은 에스페란토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을 뜻하는 약자이다. 해방 이후 에스페란토 운동이 줄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유명 에스페란티스토인 [[석주명]]이 주요 학자로 활동하면서, 에스페란토협회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6·25 전쟁]] 문제에도 끄떡없이 사단법인 활동을 이어나갔다. 정작 가장 큰 위협이 된 조치는 1981년 [[전두환]] 정권이 '정부지원단체에 대한 보조금 삭감정책'을 발표하면서 당시 문교부에서 해당 단체 중 하나로 한국에스페란토협회를 추가한 것. 다행히 1994년 [[한국 방문의 해]]와 함께 발맞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유치하면서 잠시 활동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 ||
현재 한국의 에스페란토 홍보와 보급을 위해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a Asocio)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 현재 한국의 에스페란토 홍보와 보급을 위해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a Asocio)가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 ||
== 비판과 그 반박 == | == 비판과 그 반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