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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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of Yalu River / 鴨綠江 海戰/(황해 해전)
*Battle of Yalu River / 鴨綠江 海戰/(황해 해전)
==개요==
==개요==
이 해전은 [[청일전쟁]] 기간 중에 [[일본]]과 [[청나라의 ]] 주력함대가 공해상에서 전개한 유일한 해전이다. 이 해전은 이토 제독이 지휘한 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 외해에서 정여창 제독이 지휘하는 청나라 함대를 조우한 {{날짜/출력|1894-9-17}}에 발생한 전투였다. 이 때 청나라 함대는 지상군을 압록강 부근에 상륙시킨 수송선단을 호송하고 난 뒤 여순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일본함대에게 발견당한 것이었다.
이 해전은 [[청일전쟁]] 기간 중에 [[일본]]과 [[청나라의 ]] 주력함대가 공해상에서 전개한 유일한 해전이다. 이 해전은 이토 제독이 지휘한 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 외해에서 정여창 제독이 지휘하는 청나라 함대를 조우한 {{날짜/출력|1894-9-17}}에 발생한 전투였다. 이 때 청나라 함대는 지상군을 압록강 부근에 상륙시킨 수송선단을 호송하고 난 뒤 여순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일본함대에게 발견당한 것이었다. 본 해전의 명칭은 일본측에서는 황해 해전, 중국측에서는 압록강 해전이라고 하는데 [[러일전쟁]]에서 있었던 황해 해전과 구분하기 위해 결정적인 전투가 있었던 [[압록강]] 어귀의 명칭을 따서 일단 압록강 해전으로 기록한다.


==양측의 전력==
==양측의 전력==

2018년 11월 7일 (수) 15:20 판

{{{전쟁이름}}}
군사 충돌 정보
날짜 틀:날짜/출력
결과 일본 함대의 승리
교전단체
{{{단체1}}} {{{단체2}}}
정여창 제독
이토 제독
병력:
전함2척, 순양함4척
방호순양함 6척, 어뢰정 3척
병력:
장갑함 3척, 속사포 순양함 1척
방호순양함 4척, 구식 장갑함 2척
  • Battle of Yalu River / 鴨綠江 海戰/(황해 해전)

개요

이 해전은 청일전쟁 기간 중에 일본청나라의 주력함대가 공해상에서 전개한 유일한 해전이다. 이 해전은 이토 제독이 지휘한 일본 함대가 압록강 하구 외해에서 정여창 제독이 지휘하는 청나라 함대를 조우한 틀:날짜/출력에 발생한 전투였다. 이 때 청나라 함대는 지상군을 압록강 부근에 상륙시킨 수송선단을 호송하고 난 뒤 여순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일본함대에게 발견당한 것이었다. 본 해전의 명칭은 일본측에서는 황해 해전, 중국측에서는 압록강 해전이라고 하는데 러일전쟁에서 있었던 황해 해전과 구분하기 위해 결정적인 전투가 있었던 압록강 어귀의 명칭을 따서 일단 압록강 해전으로 기록한다.

양측의 전력

압록강 해전에 참여한 양측의 전력은 전체적으로 보아 청의 함대가 무장과 장갑면에서 훨씬 강력하였다. 청의 함대의 전함 2척에 장착된 8문의 305mm 주포만으로도 화력에서 이미 우위를 점하는데 충분했을 정도이다. 이에 비해서 일본의 함대는 속력이 빠르고 함포의 발사속도가 빠른 속사포가 많다는 점이 청의 함대보다 유리한 점이었다.

청나라

청나라 함대는 7,350톤급의 전함 정원과 진원 2척이 주력을 이루었다. 여기에 2,900톤급의 순양함 래원과 경원이 있었으며, 2,300톤급의 순양함 정원(靖遠)과 치원이 있었다. 그 외에 1,000~2,000톤급 방호순양함 6척이 있었으며 어뢰정 3척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중 실질적인 주력함은 순양함급 이상인 12척이었으나 실제 전투에는 10척이 참여하였다.

일본

일본 함대는 4,300톤급의 장갑함 마쓰시마, 이구스시마, 하시다테 3척을 비롯하여 23노트의 속력을 자랑하는 4,200톤급의 속사포 순양함 요니소와 3,700톤급의 속사포 방호순양함 나니와, 다카지호, 아키스시마 3척이 있었다. 그리고 2,400톤급의 방호순양함 지요다와 구식 장갑함 후소오와 히에이 2척이 있었다. 그 외에 포함 아카키 1척과 수송함 세이코마루 1척이 동행하였으나 이 함선은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전투 전개

양측의 함선 배치

일본의 함대를 조우한 정여창 제독은 예하 함정 10척을 쐐기형 진형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전함 2척을 중앙에 위치하게 하고 그 좌현과 우현에 각가 4척씩 나머지 함정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함정의 동질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가운데 배치된 진형이었다. 반면에 일본의 이토 제독은 예하 함정을 2개의 전대로 편성하고 단종열진을 형성하였다. 전위에는 차석 지휘관인 쓰보이 제독이 지휘하는 순양함 4척으로 구성된 유격전대가 배치되었으며, 후위에는 이토 제족이 직접 지휘하는 순양함 3척과 속력이 느린 장갑함 3척으로 구성된 주력전대가 배치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좌현 함미 방향으로 포함 1척과 수송함을 배치하였다.

전투 진행

청의 함대는 6~7노트의 속력으로 전진하였으며, 일본의 함대를 함수 정면 방향에 두기 위하여 조금씩 변침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기동은 충각기동을 하여 일본 함선을 들이받는 것과 정원과 진원 두 전함의 주포를 효과적으로 사용[1]하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일본 함대에게 T자 씌우기를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양측의 함대는 서로 접근하다가 12:50경 6천미터 거리에서 청의 함대가 먼저 발포하였고, 5분 뒤 3천여미터 거리에서 일본의 함대가 사격을 개시하면서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 때 유격전대를 지휘하던 쓰보이 제독은 청 함대의 우익에 있는 순양함 2척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전체적으로 일본 함대가 청의 함대를 시계 방향으로 포위하려는 기동을 하게 되었다. 즉 일본 함대는 청나라 함대의 우익을 통과한 다음 쓰보이 전대가 좌회전하고 이토 제독의 본대가 우회전하면서 청나라 함대를 완전히 포위하게 되었다. 결국 청의 진형은 우익에서 2척의 함선을, 좌익에서 1척의 함선이 침몰하면서 진영이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 결국 15:30경 진형이 무너진 청의 함대는 전투에서 이탈하기 위한 기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함정 2척이 다시 심한 손상을 받아서 전투력을 상실하였으며, 나머지 함정들도 모두 약간씩의 손상을 입은데다 탄약을 모두 소모하여서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었다.

한편 청의 함대를 포위한 이토는 진형을 제정비하고 자신의 기함인 마쓰시마를 선두에 배치시키고 전투를 재개하였으나 이 때 포탄 1발이 이토의 기함에 명중하면서 마쓰시마가 전열을 이탈하게 되었다. 이에 이토의 기함이 향도함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되자 이토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일본 함대의 진형이 흐트러지게 되었고, 일본 함대가 진형을 재정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게 되었다. 결국 진형의 재정비가 마무리된 17:30경 이토는 다시 청나라 함대의 잔존 함정들에 대한 추격을 재개하였으나 청나라의 어뢰정이 출현하고 뒤이어 일몰이 되었기 때문에 이토는 추격을 단념하였다.

다음 날 이토는 압록강 하구에서 위해위에 이르는 항로상에서 청나라의 함대를 탐색하였으나 청의 나머지 잔존 함정들은 이미 여순항에 무사히 귀항한 뒤였다.

결과

이 해전의 결과 청 함대에서는 4척의 함선이 침몰하고 1척의 함선이 좌초되었다. 주력함 12척 가운데서 정원과 진원을 포함한 7척만이 여순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함대에서는 마쓰시마와 히에이, 아카키 정도만이 소파되었으나 수리 후 전열에 복귀하는데는 지장이 전혀 없었다.

뒷 이야기

  • 이 해전은 28년 전에 있었던 이탈리아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사이에서 있었던 리사 해전에서의 전훈과는 정 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난 전투였다. 리사 해전에서는 장갑과 포에서 우세한 이탈리아 함대가 종열진으로 함포전을 시도하였으며, 반대로 장갑과 함포가 열세했던 오스트리아 함대는 횡열진을 형성하여 충각전술을 감행하였었는데 이 때 이탈리아의 함대 사령관의 애매한 지휘로 이탈리아 함대가 패배하면서 증기선 시대의 해전에서 있었던 종열진과 횡열진 사이의 논쟁에서 충각전술에 유리한 횡열진의 우위가 입증된 것으로 나타났었고, 심지어 장갑함을 상대하려면 충각이 제일이라는 요상한 전훈까지 남겨졌었으나 이 압록강 해전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이 전술논쟁은 종열진의 승리로 결론내려지게 되었다.
  • 양측의 명중률에 있어서 일본과 청나라 함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함포와 사거리면에서 모두 우위였던 청나라 함대가 일본 함대에 명중시킨 명중탄 수는 140발에 불과하였으나 청나라 함선들이 두들겨 맞은 포탄의 수는 1,200발이 넘어갔던 것.
  • 당시 청나라 해군 지휘관이었던 정여창 제독의 명령은 해군 전술에는 전혀 맞지 않는 요상하고 애매한 명령이었다. 압록강 해전에서 정여창 제독이 시달한 기본 전술은 "동형함은 동조기동하고 상호지원할 것. 항상 함수를 적에게 향할 것, 기함의 기동에 주의할 것"이었는데 이 기본 전술은 함선이 아닌 함대 전체를 하나의 전투단위로 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된 함대 기동을 할 수 없는 요상한 지침이었다[2]. 반면 전투 직전 일본 선두함의 요시노의 신호는 다음과 같았다 "단종열진을 준수할 것, 속력 14노트, 3천미터 거리에 접근하면 발포할 것, 적의 우익에 화력을 집중할 것.

각주

  1. 전함 주포 4문의 동시발사는 함수방향으로만 가능하였다
  2. 정확히는 지상전 전술, 특히 전열보병 스타일에 가까운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