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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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수원 화성|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수원 화성|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관람방법==
===스탬프 투어===


==트라비아==
==트라비아==

2016년 3월 15일 (화) 11:29 판

틀:문화재

개요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관람방법

스탬프 투어

트라비아

행궁은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 많이 등장하였다. 이하는 그 목록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