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단일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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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동계 올림픽
* 2018년 동계 올림픽
*: 평창에서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단 개막식 동시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결정되었다. 이는 올림픽 흥행을 위한 IOC의 제안으로 유력 하키선수가 포진한 NHL이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아이스하키연맹도 볼거리 만들기에 동의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80122/88292458/1 IOC “北선수 5명 고정 출전” 파격 제안… 부정적 여론 부담된 南 “3명으로 하자”], 동아일보, 2018.01.22.</ref> 사실 남북 단일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2011년부터 추진되어왔다.
*: 평창에서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단 개막식 동시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결정되었다. 이는 올림픽 흥행을 위한 IOC의 제안으로 유력 하키선수가 포진한 NHL이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아이스하키연맹도 볼거리 만들기에 동의했다.<ref>[http://news.donga.com/3/all/20180122/88292458/1 IOC “北선수 5명 고정 출전” 파격 제안… 부정적 여론 부담된 南 “3명으로 하자”], 동아일보, 2018.01.22.</ref> 사실 남북팀은 2011년부터 추진되어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79&aid=0002267023&sid1=001 정치권,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추진 합의], 노컷뉴스 CBS 임진수 기자
** [http://news.joins.com/article/22289163 현정화 “빙판의 작은 통일 좋지만 선수가 먼저다”], 중앙일보 박린, 김지한 기자
** [http://news.joins.com/article/22289163 현정화 “빙판의 작은 통일 좋지만 선수가 먼저다”], 중앙일보 박린, 김지한 기자
**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503463_22663.html 단일팀, 화해의 열쇠? '일회성' 논란 극복해야], MBC 김정호 기자: MBC의 기자가 남북 단일팀을 일회성이라고 인정했다.
**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503463_22663.html 단일팀, 화해의 열쇠? '일회성' 논란 극복해야], MBC 김정호 기자: MBC의 기자가 남북 단일팀을 일회성이라고 인정했다.

2018년 1월 23일 (화) 14:06 판

남북 단일팀은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합쳐 만든 국가대표팀이다. 남북 단일팀은 독일의 동·서 대표팀을 벤치마킹 한 것이며, 1964년 도쿄 올림픽 이래로[1] 국제 스포츠 대회의 평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행사로써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스포츠 대회에서 두 국가를 하나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이다. 개폐회식 동시입장만 해도 대회위원회와 준비위원회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선수를 아주 섞어서 단일팀을 꾸리려면 해당 종목의 국제 연맹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며[2], 엔트리 우대 문제로 경쟁국들의 볼멘 소리도 쉽게 나온다. 내부적으로도 선수들 간의 알력이나 연습 시간 부족 등의 문제가 불거진다. 물론 단일팀을 꾸리려면 북한을 달래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

남북 단일팀 성립시 국기는 하늘색 한반도기를 사용하며, 국명은 “코리아(KOREA)”, 국가(國歌)는 《아리랑》을 사용한다. 이는 1991년 실무회의에서 정해진 방침이다.[3] 약어는 때에 따라 다르나 KOR(영어)·COR(불어)을 사용한다. 공동기수 2명은 남북에서 1명씩 선정하되 성별을 번갈아가며 선정한다.

역사

  •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91년, 일본)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 대회이다. 여자단체전에서 8연패에 빛나는 중국 선수단을 꺾고 금메달을 성취해 본격적인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텄다.[4] 재일동포연합인 민주 계열의 민단과 공산 계열의 조총련도 이 때만큼은 사상에 상관없이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영화 《코리아》가 이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1991년, 포르투갈)
    탁구대회와 동시기에 논의된 대회로, 선수 엔트리는 남북한에 각각 9명씩 배정됐다.[5] 주변의 우려와 달리 16강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여줬으나 8강에서 브라질에게 4강 진출을 저지당했다.[6]
  • 2000년 하계 올림픽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올림픽 최초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통례대로 선수단은 아리랑 연주와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7]
  • 2002년 하계 아시안 게임
    남한(부산)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8]
  •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구에서 열린 대회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10]
  • 2006년 동계 올림픽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이때의 국명은 “COREA”.[13]
  • 2006년 하계 아시안 게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하계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한반도기에 독도를 포함하자고 결정한 때가 이 시기.[14]
  • 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중국 창춘에서 열린 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이때부터 한반도기에 독도가 포함된다.[15]

외부 링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