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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정리되자 북한군은 김화군을 금성에 재설치했고, 대한민국측은 1954년에 수복지구 행정구역을 재설치하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에선 김화군을 철원군에 합치려고 했으나 국회 심의결과 김화군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불과 9년 뒤 철원군에 합병되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의 김화군'이 폐지되고 [[이북5도]] 행정구역상으로의 김화군만 존재한다.  
전쟁이 정리되자 북한군은 김화군을 금성에 재설치했고, 대한민국측은 1954년에 수복지구 행정구역을 재설치하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에선 김화군을 철원군에 합치려고 했으나 국회 심의결과 김화군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불과 9년 뒤 철원군에 합병되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의 김화군'이 폐지되고 [[이북5도]] 행정구역상으로의 김화군만 존재한다.  
단, 휴전선 이남의 김화군이 폐지되었기는 해도, 아직도 강원영서북부나 경기북부 지역의 도로 표지판에는 신철원(현재 [[철원군]]청 소재지), 동송, 김화를 각각 따로 표기하고 있다.


[[분류: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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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이북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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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7일 (수) 17:10 판

金化郡

소개

북한의 행정구역 또는 이북5도 행정체계상의 행정구역이다. 김화군의 이름과 달리, 김화군 지역은 1914년 이전의 김화군 지역과 별다른 관계가 없고 1914년 이전의 금성군에 해당한다.

개요

김화 지역+(금성지역)은 교통의 요충지여서 6·25 전쟁의 와중에 철의 삼각지대라는 이름의 격전지가 되었다. 김화읍을 옛 김화군 지역은 대부분 대한민국이, 옛 금성군 지역은 대부분 북한이 차지하는 것으로 휴전이 이루어졌다. 휴전 협정 직전까지 대한민국측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 상당수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북한이 1952년에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금성지역의 중심지인 금성면마저도 전선에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김화군청을 금성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창도로 옮겨 '창도군'이라고 이름지으면서 북한에서 김화군이 일시 폐지가 되었다.

금성 지역으로 돌출된 전선을 못마땅히여긴 중공군은 이승만의 반공포로석방에 항의한다며 수만명의 군사를 동원해 7월 13일에 한국측에 대한 공세를 개시(금성 전투)하였으나 한국군의 반격으로 금성천 이남 지역은 대부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금성천 북방 지역을 한평도 되찾지 못하였다.

전쟁이 정리되자 북한군은 김화군을 금성에 재설치했고, 대한민국측은 1954년에 수복지구 행정구역을 재설치하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에선 김화군을 철원군에 합치려고 했으나 국회 심의결과 김화군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불과 9년 뒤 철원군에 합병되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의 김화군'이 폐지되고 이북5도 행정구역상으로의 김화군만 존재한다. 단, 휴전선 이남의 김화군이 폐지되었기는 해도, 아직도 강원영서북부나 경기북부 지역의 도로 표지판에는 신철원(현재 철원군청 소재지), 동송, 김화를 각각 따로 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