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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넘겨주기 [[광개토대왕]] |
| 18세에 등극하여 호를 영락으로 하였다. 태왕의 은택이 황천에 미치고 위무는 사해에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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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상- ...아니한 것을 쓸어버리자 그 업에 사람들이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은성하며 오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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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성히 익었다. 하늘이 돌보지 아니하여 39세에 나라를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 9월 29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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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에 신릉으로 옮겨 모셨다. -광개토대왕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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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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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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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태왕'''(생애:374년~412년, 제위:391년~412년)은 [[고구려]]의 19대 국왕으로 성은 계루부 '''고'''씨이며 호는 '''담덕'''이다. 연호를 제정하고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며 대제국 [[고구려]]를 이룩한 정복군주로서 [[한민족]] 최고의 전성기를 열고 수많은 원정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몰락 직전의 고구려를 동북아시아의 최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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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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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4년에 출생하여 386년에 세자로 책봉된다. 그가 즉위하기 전 고구려는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상흔을 지우고 소수림왕 대부터 진행되던 국가 재정비에 따라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며 국력을 회복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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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국제 관계는 거란을 비롯한 유목부족들과 고구려의 주적인 전연이 북족에서 버티고 있는데다 진정한 숙적이라 할수 있는 [[백제]] 역시 고구려의 남쪽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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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392년 고구려의 태왕으로 즉위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정복활동을 펼치는데 첫 제물은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원수 [[백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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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정으로 고구려는 한강 이북을 장악했으며 한강 일대의 백제의 성 10여개가 함락되며 백제를 패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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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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