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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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벽대전에서 ===
=== 적벽대전에서 ===
유표가 죽자 조조는 형주를 정벌했는데, 유비는 번성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려고 하며 별도로 관우를 보내 사람들을 태운 수백 척의 배를 이끌게 하여 강릉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판에서 유비군이 대파당하자 유비는 한진을 끼고 도주했는데 이때 관우의 배를 만나 구원을 받았고 함께 하구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유비가 조조를 칠때 종군했으며 유비와 주유가 강릉에서 조인을 포위하자 일부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길을 끊는 역할을 했다.
유표가 죽자 조조는 형주를 정벌했는데, 유비는 번성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려고 하며 별도로 관우를 보내 사람들을 태운 수백 척의 배를 이끌게 하여 강릉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판에서 유비군이 대파당하자 유비는 한진을 끼고 도주했는데 이때 관우의 배를 만나 구원을 받았고 함께 하구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유비가 조조를 칠때 종군했으며 유비와 주유가 강릉에서 조인을 포위하자 일부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길을 끊는 역할을 했다.  


이때 관우는 단독으로 서황, 만총, 문빙, 악진, 이통을 상대하여야 했는데 서황은 만총과 함께 한진에서 관우를 치고, 조인과 함께 강릉에서 주유를 쳤으며 문빙은 악진과 더불어 심구에서 관우를 격퇴하고 또한 관우의 치중을 한수에서 공격, 그 배를 형성에서 불태웠다. 악진은 관우, 소비(蘇非) 등을 모두 패주시켰고, 또한 유비를 쳐서 임저장 두보, 정양장 양대를 모두 대파해 남군 바로 위에 위치한 임저가 위에 넘어가고 남군일대 만이들과 부곡 몇 개가 투항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이통이 자신의 군사를 나누어 관우와 싸우게 하고 자신은 일부의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유비와 주유의 포위망을 뚫어 조인을 구출하기도 했다.
이때 관우는 단독으로 서황, 만총, 문빙, 악진, 이통을 상대하여야 했는데 서황은 만총과 함께 한진에서 관우를 치고, 조인과 함께 강릉에서 주유를 쳤으며 문빙은 악진과 더불어 심구에서 관우를 격퇴하고 또한 관우의 치중을 한수에서 공격, 그 배를 형성에서 불태웠다. 악진은 관우, 소비(蘇非) 등을 모두 패주시켰고, 또한 유비를 쳐서 임저장 두보, 정양장 양대를 모두 대파해 남군 바로 위에 위치한 임저가 위에 넘어가고 남군일대 만이들과 부곡 몇 개가 투항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이통이 자신의 군사를 나누어 관우와 싸우게 하고 자신은 일부의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유비와 주유의 포위망을 뚫어 조인을 구출하기도 했다.  


이후 유비는 형남 4군(무릉,장사,영릉,계양 들을 공격하여 차지했고 공이 있는 자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관우를 양양태수(襄陽太守), 탕구장군으로 봉하여 강북에 주둔하게 했다.
이후 유비는 형남 4군(무릉,장사,영릉,계양 들을 공격하여 차지했고 공이 있는 자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관우를 양양태수(襄陽太守), 탕구장군으로 봉하여 강북에 주둔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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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양대치 ===
=== 익양대치 ===
관우가 형주를 지키고 있을무렵 손권은 [[유비]]와의 형주 소유건을 두고 대치하여 여몽을 시켜 군을 이끌고 형주를 공격하게 했다, 장사와 계양은 군대를 이끌고 편지를 보내 협박하여 항복시켰으며 영릉은 태수 학보가 오군의 계략에 속아 항복했다. 이에 유비는 5만을 이끌고 직접 형주를 구원하고 익양에서 관우를 시켜 노숙과 대치했다. 노숙에게 회담을 제의하는데, 관우는 "형주땅은 유비가 노력해서 얻은 땅"이라며 항변했으나 노숙의 "그건 손권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반박하는 말에 밀려 커다란 성과는 보지 못했다.
관우가 형주를 지키고 있을무렵 손권은 [[유비]]와의 형주 소유건을 두고 대치하여 여몽을 시켜 군을 이끌고 형주를 공격하게 했다, 장사와 계양은 군대를 이끌고 편지를 보내 협박하여 항복시켰으며 영릉은 태수 학보가 오군의 계략에 속아 항복했다. 이에 유비는 5만을 이끌고 직접 형주를 구원하고 익양에서 관우를 시켜 노숙과 대치했다. 노숙에게 회담을 제의하는데, 관우는 "형주땅은 유비가 노력해서 얻은 땅"이라며 항변했으나 노숙의 "그건 손권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반박하는 말에 밀려 커다란 성과는 보지 못했다.  


관우는 3만 명의 병사 중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상류 10여 리의 얕은 여울에 배치하고 밤을 틈타 냇물을 건너려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감녕은 당시 3백 명의 병사만 있었는데 자신에게 병사를 주면 관우를 공격하여 포로로 만들것이라고 자신하고 노숙은 곧바로 병사 1천명을 선발하여 감녕에게 더해 주었다. 감녕은 그날 밤에 관우의 도하지점으로 이동했고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건너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서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관우뢰라고 부른다. 한편 노숙 역시 진영을 만들면서 관우를 대비했는데 이것을 노숙제라고 불렀다.
관우는 3만 명의 병사 중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상류 10여 리의 얕은 여울에 배치하고 밤을 틈타 냇물을 건너려 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감녕은 당시 3백 명의 병사만 있었는데 자신에게 병사를 주면 관우를 공격하여 포로로 만들것이라고 자신하고 노숙은 곧바로 병사 1천명을 선발하여 감녕에게 더해 주었다. 감녕은 그날 밤에 관우의 도하지점으로 이동했고 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건너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서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관우뢰라고 부른다. 한편 노숙 역시 진영을 만들면서 관우를 대비했는데 이것을 노숙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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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주 공방전 ===
=== 형주 공방전 ===
유비는 한중왕이 되자 관우에게 전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절월을 내렸다. 그 해에 관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번성의 조인을 공격했다. 그러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 조인을 돕도록 했다. 가을이 되어 큰 장마비가 내리자 한수(漢水)가 범람하여 우금이 이끄는 칠군이 수몰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관우는 배를 이용해 화살을 쏘면서 위군을 격렬하게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어 살아남은 7군 잔병 3만을 잡아 포로로 삼았으며 사령관 우금은 항복시키고 방덕의 목을 베었다. 위나라에선 난을 일으키는 자들이 관우의 관인(官印)이나 봉호를 받아 그의 한 무리가 되었다, 관우의 위엄은 화하에 떨쳤고 번성과 양양을 포위했다. 이후 서황의 조인 구원도 실패했다.
유비는 한중왕이 되자 관우에게 전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절월을 내렸다. 그 해에 관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번성의 조인을 공격했다. 그러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 조인을 돕도록 했다. 가을이 되어 큰 장마비가 내리자 한수(漢水)가 범람하여 우금이 이끄는 칠군이 수몰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관우는 배를 이용해 화살을 쏘면서 위군을 격렬하게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어 살아남은 7군 잔병 3만을 잡아 포로로 삼았으며 사령관 우금은 항복시키고 방덕의 목을 베었다. 위나라에선 난을 일으키는 자들이 관우의 관인(官印)이나 봉호를 받아 그의 한 무리가 되었다, 관우의 위엄은 화하에 떨쳤고 번성과 양양을 포위했다. 이후 서황의 조인 구원도 실패했다.  


조조는 천도까지 논했으나 사마의, 장제가'관우가 뜻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은 손권이 반드시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므로,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관우의 배후를 치도록 권하고 강남을 나누어 손권이 갖는 것을 허락 해준다면 번성의 포위는 스스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하자 조조는 이에 따랐으며 본인이 직접 출병했다. 한편 [[서황]]은 조인을 구원하기 위해 신병들만 있을때는 싸우지 않고 기다리다가 12영의 군사를 모아 사총에서 관우의 보기 5천명을 격파하고 10겹의 녹각을 격파했으며 성안에서 만총이 협공하니 관우의 번성포위는 풀린다. 이에 관우는 후퇴해 면수를 수군으로 굳게 통제하고 양양을 단단하게 포위하여 양양과 북쪽의 위군 간의 연락이 끊긴다.
조조는 천도까지 논했으나 사마의, 장제가'관우가 뜻하는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은 손권이 반드시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므로,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관우의 배후를 치도록 권하고 강남을 나누어 손권이 갖는 것을 허락 해준다면 번성의 포위는 스스로 풀릴 것'이라고 주장하자 조조는 이에 따랐으며 본인이 직접 출병했다. 한편 [[서황]]은 조인을 구원하기 위해 신병들만 있을때는 싸우지 않고 기다리다가 12영의 군사를 모아 사총에서 관우의 보기 5천명을 격파하고 10겹의 녹각을 격파했으며 성안에서 만총이 협공하니 관우의 번성포위는 풀린다. 이에 관우는 후퇴해 면수를 수군으로 굳게 통제하고 양양을 단단하게 포위하여 양양과 북쪽의 위군 간의 연락이 끊긴다.


한편 남군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었고 장군 사인은 공안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평소 관우가 자기들을 경시했던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관우가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면서 미방과 부사인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맡겼지만, 이들은 서로 최선을 다해 관우를 원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관우는 "돌아가면 마땅히 이들을 문책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고, 미방과 부사인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남군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었고 장군 사인은 공안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평소 관우가 자기들을 경시했던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관우가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면서 미방과 부사인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맡겼지만, 이들은 서로 최선을 다해 관우를 원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관우는 "돌아가면 마땅히 이들을 문책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고, 미방과 부사인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중에서도 미방은 관우와 사이가 틀어졌고 남군태수로 있을때 남군성에 불이나 많은 물자와 기물을 태운 죄로 질책을 받아 두려워하며 손권과 몰래 내통하였다. 이후 여몽이 잠깐 기만책으로 아직 큰 공적이 없던 육손과 자리를 교대하고 이에 육손은 좋은말로 관우를 꼬고 협력할 것을 약속하니 관우는 육손을 경시하여 수비병을 뽑아 지원군으로 보내고 7군을 잡아들여 식량이 부족해지자 상수의 관문인 상관의 군량고를 털었는데 여몽이 이를 기회로 형주로 침공했으나 내통이 있었으니 척후나 봉화가 발동되지 않았다, 우번이 공안을 굳게 지키려고 하고 오의 항복사자를 만나지도 않으려던 사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형주에 우리와 내통한 내응자가 있으며 포위되어 굳게 지키려고 해도 살길이 없을것라고 언질하자 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항복했다, 남군에서는 미방 혼자만 성문을 열고 항복했는데 갑작스러운 내응에 남군에서 여몽에게 반격을 하려고 했으나 우번의 충고를 들은 여몽이 신속하게 남군을 제압하고 남군의 민심을 통치를 후하게 베풀어서 무마시켰다.
이중에서도 미방은 관우와 사이가 틀어졌고 남군태수로 있을때 남군성에 불이나 많은 물자와 기물을 태운 죄로 질책을 받아 두려워하며 손권과 몰래 내통하였다. 이후 여몽이 잠깐 기만책으로 아직 큰 공적이 없던 육손과 자리를 교대하고 이에 육손은 좋은말로 관우를 꼬고 협력할 것을 약속하니 관우는 육손을 경시하여 수비병을 뽑아 지원군으로 보내고 7군을 잡아들여 식량이 부족해지자 상수의 관문인 상관의 군량고를 털었는데 여몽이 이를 기회로 형주로 침공했으나 내통이 있었으니 척후나 봉화가 발동되지 않았다, 우번이 공안을 굳게 지키려고 하고 오의 항복사자를 만나지도 않으려던 사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형주에 우리와 내통한 내응자가 있으며 포위되어 굳게 지키려고 해도 살길이 없을것라고 언질하자 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항복했다, 남군에서는 미방 혼자만 성문을 열고 항복했는데 갑작스러운 내응에 남군에서 여몽에게 반격을 하려고 했으나 우번의 충고를 들은 여몽이 신속하게 남군을 제압하고 남군의 민심을 통치를 후하게 베풀어서 무마시켰다.  


관우는 이렇게 되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러나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리들과 처자식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관우의 군대는 흩어져버렸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여 관우와 그의 아들 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 관우가 격파된 이후에도 육손은 형주를 돌아다니면서 형주를 진압해야 했고 형주에서 저항이 있거나 촉으로 탈출한 군원들도 있었으며 무릉만이들은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였다.
관우는 이렇게 되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러나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리들과 처자식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관우의 군대는 흩어져버렸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여 관우와 그의 아들 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 관우가 격파된 이후에도 육손은 형주를 돌아다니면서 형주를 진압해야 했고 형주에서 저항이 있거나 촉으로 탈출한 군원들도 있었으며 무릉만이들은 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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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회 : 관우는 평소 용맹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이름나 그 기세를 타고 올라온다면, 근심이 될 것입니다.
온회 : 관우는 평소 용맹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이름나 그 기세를 타고 올라온다면, 근심이 될 것입니다.


[[주유]] : 유비는 용맹한 영중의 자태가 있고, 관우와 장비같이 곰같고 범같은 장수들을 가지고 있어, 결고 오래도안 굽히면서 남을 위해서 쓰여줄 자가 아닙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론, 가장 좋은 계책은 유비를 옮겨 오(吳)에 두면서, 그를 위해서 성대하게 궁실을 짓고 미녀와 완상(玩賞)물을 많이 두어 그의 이목을 즐겁게 해주고, 관우 장비 이 두사람을 나눠 각자 한 곳에 두어, 주유 저 같은 자로 이들을 얻어 함께 싸우게 한다면, 대사(大事)는 아마 정해질 것입니다. 지금 땅을 함부로 나눠줘 그들의 대업을 세우는데 도와주고, 이 세 사람을 모아 모두 변방에 두신다면, 교룡(蛟龍)이 구름과 비를 얻어 끝내는 못속의 한갓 물건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주유]] : 유비는 용맹한 영중의 자태가 있고, 관우와 장비같이 곰같고 범같은 장수들을 가지고 있어, 결고 오래도안 굽히면서 남을 위해서 쓰여줄 자가 아닙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론, 가장 좋은 계책은 유비를 옮겨 오(吳)에 두면서, 그를 위해서 성대하게 궁실을 짓고 미녀와 완상(玩賞)물을 많이 두어 그의 이목을 즐겁게 해주고, 관우 장비 이 두사람을 나눠 각자 한 곳에 두어, 주유 저 같은 자로 이들을 얻어 함께 싸우게 한다면, 대사(大事)는 아마 정해질 것입니다. 지금 땅을 함부로 나눠줘 그들의 대업을 세우는데 도와주고, 이 세 사람을 모아 모두 변방에 두신다면, 교룡(蛟龍)이 구름과 비를 얻어 끝내는 못속의 한갓 물건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유엽]] : 관우가 유비를 돕는데 유비가 뭐를 못하겠느냐? 관우와 장비가 삼군을 뒤덮을 용맹으로 장군이 된다면 도모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유엽]] : 관우가 유비를 돕는데 유비가 뭐를 못하겠느냐? 관우와 장비가 삼군을 뒤덮을 용맹으로 장군이 된다면 도모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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