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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년 [[김춘추]]와 [[선덕여왕]]이 [[당 고종]]에게 접근하였고, 이로써 당과 신라의 연합은 확정되었다. 이를 견제한 [[백제]]는 653년 [[왜]]와 확실한 군사 동맹을 맺었고, 654년에는 [[태종 무열왕]]이 신라에서 즉위하여 역사는 삼국통일전쟁을 향해 다가가게 되었다. | 650년 [[김춘추]]와 [[선덕여왕]]이 [[당 고종]]에게 접근하였고, 이로써 당과 신라의 연합은 확정되었다. 이를 견제한 [[백제]]는 653년 [[왜]]와 확실한 군사 동맹을 맺었고, 654년에는 [[태종 무열왕]]이 신라에서 즉위하여 역사는 삼국통일전쟁을 향해 다가가게 되었다. | ||
660년 나당연합이 [[백제]]를 침공하면서 삼국통일전쟁은 드디어 시작하였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660년 | 660년 나당연합이 [[백제]]를 침공하면서 삼국통일전쟁은 드디어 시작하였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당하고, 660년 7월 18일 [[의자왕]]이 웅진에서 항복하면서 백제는 멸망해 버렸다. 이때 당나라는 신라를 협박하여 백제 전체를 자국 땅으로 편입하였는데, 이는 후에 [[나당전쟁]]이 터지는 계기가 된다. 아무쪼록 전쟁 시작한지 반년도 안되어 힘없이 몰락해 버린 백제는 고구려에게는 충격이었고, 백제도, 돌궐도 없고 외교적으로 고립된 고구려는 이미 망할 운명이었다. | ||
661년에 350,000명의 당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이때 신라는 당에 의해 군사적인 지원은 하지 못하고 무기 및 식량만 공급하도록 되었는데, 이는 당연히 당나라가 고구려를 혼자서 먹으려는 계략이었다. 당나라는 약해져 버린 고구려의 방어선을 뚫고 평양에 도달해 포위하였는데, 이는 662년 | 661년에 350,000명의 당군이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이때 신라는 당에 의해 군사적인 지원은 하지 못하고 무기 및 식량만 공급하도록 되었는데, 이는 당연히 당나라가 고구려를 혼자서 먹으려는 계략이었다. 당나라는 약해져 버린 고구려의 방어선을 뚫고 평양에 도달해 포위하였는데, 이는 662년 2월까지 지속되었다. 역시 악화된 날씨로 당나라군은 일단 철수하였다. | ||
이 후 고구려와 당은 별 결과 없이 계속 싸움을 진행하였는데, 666년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은 정권 장악을 위해 세력다툼이나 하였고, 이는 고구려 정부까지 더 개판으로 만들어 고구려 생존의 마지막 희망까지 말아먹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당은 668년 평양의 포위 공격을 재개하였고, 신라군까지 합류하면서 평양은 결국 함락당하였다. 이때 평양 주민 200,000명이 장안으로 끌려갔다. | 이 후 고구려와 당은 별 결과 없이 계속 싸움을 진행하였는데, 666년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은 정권 장악을 위해 세력다툼이나 하였고, 이는 고구려 정부까지 더 개판으로 만들어 고구려 생존의 마지막 희망까지 말아먹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당은 668년 평양의 포위 공격을 재개하였고, 신라군까지 합류하면서 평양은 결국 함락당하였다. 이때 평양 주민 200,000명이 장안으로 끌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