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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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이 1905년 9월에 강화조약으로 종결되면서 일본은 사실상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철도 사업에 대해서도 구태여 주식회사의 형태로 놔둘 이유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미 1902년에 경인철도를 경부철도 주식회사에 합병하여 영등포 이북 구간을 경부철도가 공용하도록 개편해 둔 상태였지만, 한편으로 전쟁중에 임시군용철도통감부에서 건설권을 강탈에 부설을 실시한 [[경의선]] 및 건설중인 [[경원선]]이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 부처간의 논의 끝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경영케 하도록 하는 방침이 결정되어, 1906년 6월에 경부철도를 정부가 매수하여 국유화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ref>{{서적 인용|저자=교통부 편 |제목=한국교통60년약사 |날짜=1958 |출판사=교통교양조성회 |쪽= 33|ISBN= }}</ref>
러일전쟁이 1905년 9월에 강화조약으로 종결되면서 일본은 사실상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철도 사업에 대해서도 구태여 주식회사의 형태로 놔둘 이유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이미 1902년에 경인철도를 경부철도 주식회사에 합병하여 영등포 이북 구간을 경부철도가 공용하도록 개편해 둔 상태였지만, 한편으로 전쟁중에 임시군용철도통감부에서 건설권을 강탈에 부설을 실시한 [[경의선]] 및 건설중인 [[경원선]]이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 부처간의 논의 끝에 조선통감부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경영케 하도록 하는 방침이 결정되어, 1906년 6월에 경부철도를 정부가 매수하여 국유화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ref>{{서적 인용|저자=교통부 편 |제목=한국교통60년약사 |날짜=1958 |출판사=교통교양조성회 |쪽= 33|ISBN= }}</ref>


이에 따라 동년 7월에 통감부 철도관리국이 설치되어 한국 내에 설치된 경인, 경부, 경의, 경원 각 철도의 통일 경영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경기 냉각으로 경영여건이 극히 악화되었던 바 그 조직을 추곳하고 경비절감을 꾀할 수 밖에 되어 이후 1909년에는 다시 통감부 철도청으로 개칭하여 조직을 축소개편하였고, 이후 다시 일본 본토의 철도원 소관으로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총독부가 설립되면서, 1년여만에 최종적으로 총독부 철도국이 한국 내의 철도를 총괄하게 되었다.<ref>상게서, 36-38쪽.</ref>
이에 따라 동년 7월에 통감부 철도관리국이 설치되어 한국 내에 설치된 경인, 경부, 경의, 경원 각 철도의 통일 경영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경기 냉각으로 경영여건이 극히 악화되었던 바 그 조직을 추곳하고 경비절감을 꾀할 수 밖에 되어 이후 1909년에는 다시 통감부 철도청으로 개칭하여 조직을 축소개편하였고, 이후 다시 일본 본토의 철도원 소관으로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총독부가 설립되면서, 1년여만에 최종적으로 총독부 철도국이 한국 내의 철도를 총괄하게 되었다.<ref>상게서, pp. 36-38.</ref>


'''초창기 개량공사'''
'''초창기 개량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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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화'''
'''복선화'''


경부선은 일제 당시 가장 핵심 간선으로서 지속적인 개량과 정거장의 증설, 열차 증강이 이어졌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 근본적인 시설 개량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경의선]]과 함께 [[복선]]화 및 시설 대개량이 결정되어 1937년부터 착수가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신간선의 전신인 [[탄환열차]] 건설계획이 구상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에 호응하여 가급적 구배와 곡선이 최소화된 노선으로의 개량이 꾀해지지만 [[중일전쟁]]의 개전에 따른 물가상승 및 자재난으로 인해서 극적인 개량에는 이르지 못하고, 최소곡선반경 600m, 최대경사는 8퍼밀로 하되 하행선로에 한해 10퍼밀까지 허용하는 기준 하에 복선화 개량이 착수되게 되었다<ref>상게서, 66-68쪽.</ref>.  
경부선은 일제 당시 가장 핵심 간선으로서 지속적인 개량과 정거장의 증설, 열차 증강이 이어졌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 근본적인 시설 개량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경의선]]과 함께 [[복선]]화 및 시설 대개량이 결정되어 1937년부터 착수가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신간선의 전신인 [[탄환열차]] 건설계획이 구상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에 호응하여 가급적 구배와 곡선이 최소화된 노선으로의 개량이 꾀해지지만 [[중일전쟁]]의 개전에 따른 물가상승 및 자재난으로 인해서 극적인 개량에는 이르지 못하고, 최소곡선반경 600m, 최대경사는 8퍼밀로 하되 하행선로에 한해 10퍼밀까지 허용하는 기준 하에 복선화 개량이 착수되게 되었다<ref>상게서, pp. 66-68.</ref>.  


개량공사 이전에 이미 1918년에는 부산~[[부산진역|부산진]]간, 그리고 1919년에 영등포~[[서울역|서울]]간의 복선이 사용 개시되어 있었다. 1937년의 복선화 방침이 확정될 즈음에 1936년부터 이미 일대의 공사가 착착 착수되어서, 1937년에는 부산진~[[삼랑진역|삼랑진]]간 46.3km와 영등포~[[대전역|대전]]간 158.1km의 복선 공사가 착수되었으며, 1940년에는 삼랑진~대전간 234.0km구간이 착수되었다.
개량공사 이전에 이미 1918년에는 부산~[[부산진역|부산진]]간, 그리고 1919년에 영등포~[[서울역|서울]]간의 복선이 사용 개시되어 있었다. 1937년의 복선화 방침이 확정될 즈음에 1936년부터 이미 일대의 공사가 착착 착수되어서, 1937년에는 부산진~[[삼랑진역|삼랑진]]간 46.3km와 영등포~[[대전역|대전]]간 158.1km의 복선 공사가 착수되었으며, 1940년에는 삼랑진~대전간 234.0km구간이 착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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