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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 === | === 한국군 === | ||
1950년 4월 22일 제1사단장에 부임한 백선엽 대령은 작전지역을 돌아본 방어계획을 전면 수정하였다. 유사시 개성, 연백, 청단 등 주요 지구를 포기하는 이 계획은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의 승인을 받았다. | 1950년 4월 22일 제1사단장에 부임한 백선엽 대령은 작전지역을 돌아본 방어계획을 전면 수정하였다. 유사시 개성, 연백, 청단 등 주요 지구를 포기하는 이 계획은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의 승인을 받았다. 방어계획의 전면적 수정에 따른 재편성으로 제1사단은 6월 초까지 진지구축작업을 마치고 임진강 철교 폭파를 계획하였다. | ||
제1사단은 중대 전술훈련을 마치고 대대 전술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23일 비상경계가 해제된 장병들은 24일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1/3이 휴가를 떠나고 남은 병력의 1/3은 외출 또는 외박 중이었다. 또한 보유차량의 대부분이 차량정비 계획에 따라 기지창으로 후송되었으며, 사단장은 6월 14일부터 보병학교 입교를 위해 자리를 비운터라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이 사단장 대행 중이었다. 추가적으로 용산의 육군회관 낙성식에 많은 고급지휘관들이 초대되어 전쟁 전 날 사단장대리 최경록 대령과 제13연대장 김익렬 대령 등 많은 장교들이 외출한 상태였다. | 제1사단은 중대 전술훈련을 마치고 대대 전술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23일 비상경계가 해제된 장병들은 24일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1/3이 휴가를 떠나고 남은 병력의 1/3은 외출 또는 외박 중이었다. 또한 보유차량의 대부분이 차량정비 계획에 따라 기지창으로 후송되었으며, 사단장은 6월 14일부터 보병학교 입교를 위해 자리를 비운터라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이 사단장 대행 중이었다. 추가적으로 용산의 육군회관 낙성식에 많은 고급지휘관들이 초대되어 전쟁 전 날 사단장대리 최경록 대령과 제13연대장 김익렬 대령 등 많은 장교들이 외출한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