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바 (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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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青葉(아오바. 푸른 잎) 일본군이 건조한 아오바급 중순양함의 1번함. 동형함은 2번함 키누가사가 있다. 이름의 유래는 교토와 후쿠이현 경계에 있는 아오바 산.

함생

아오바의 함생 관련 내용은 영문위키 아오바를 참조했으며, 더 자세한 정보는 각 항목에 나온 영문위키와 일본어위키, 기타 홈페이지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람.

남방작전

중일전쟁에서는 상하이 상륙작전 등에 참가했으며,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개장을 거쳐 20cm 2연장포 3문을 20.3cm 2연장포 3문으로 교환했다. 이후 중순양함 4척(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 카코)로 이뤄진 제6전대의 기함이 된다.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이 일어나자, 아오바는 남방작전의 일환인 괌 전투에 참가한다. 제6전대와 수상기모함 키요카와마루 등이 투입된 이 작전에서 일본군은 섬을 대대적으로 공습한 후 10일 새벽에 상륙작전을 감행, 10일 아침 6시에 미군의 공식적인 항복을 받아낸다. 미군은 처음부터 괌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방어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오바는 이후 라바울 공략전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1차 웨이크 섬 전투에서 일본군이 비참하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미군 수비대가 본토에 물자지원을 요구하면서 "Send us more Japs!"라는 말을 덧붙였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고, 일본군은 패배의 치욕을 씻기 위해 2차 웨이크 섬 침공을 단행한다. 아오바는 2항전(히류, 소류)과 함께 2차 웨이크 섬 전투에 참가, 공략 성공에 일조한다. 이후 아오바의 제6전대는 R작전(라바울 전투)에 참가했고, 라바울은 일본군에게 점령된다.

1942년 2월 11일, 아오바는 종군기자이자 나중에 일본 SF의 시조 중 한 사람이 되는 우미노 쥬조를 맞이한다. 우미노 쥬조는 아오바에 탑승한 취재 경험을 책으로 정리하였는데, 이 책이 적도남하이다.

산호해 해전

1942년 4월, 일본군은 MO작전을 기획했고 아오바의 제6전대는 경항공모함 쇼호를 호위하는 역할로 이 작전에 참가하게 된다. 제6전대와 쇼호는 경순양함 텐류와 타츠다, 구축함 사자나미와 함께 투라기 침공을 엄호하고, 곧바로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 엄호를 위해 남하한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요크타운과 렉싱턴으로 구성된 함대를 보낸다. 일본군도 5항전(쇼카쿠, 즈이카쿠)을 보내 여기에 맞섬으로서 산호해 해전이 벌어진다.

5월 7일, 5항전의 쇼카쿠가 내보낸 정찰기가 미군 항모를 발견한다. 5항전의 함재기들은 이 미군 항모를 격침시키기 위해 출동하는데, 아오바의 제6전대에 소속된 후루타카와 키누가사가 파견한 정찰기가 다른 방향에서 미군 함대를 발견하고 5항전에 통보한다. 그러나 5항전은 이 정보를 무시했고, 미군은 93대의 함재기를 파견하여 쇼호를 공격한다. 아오바의 제6전대는 사력을 다해 쇼호를 호위했으나, 너무 적기가 많았기에 쇼호는 침몰한다. 문제는 5항전이 공격한 미군 함대가 항모가 아닌 유조선 1척과 구축함 1척이라는 점(...) 게다가 5항전은 다음 날의 결전을 대비한다며 후루타카와 키누가사를 차출한다.

5월 8일의 결전에서 미군은 렉싱턴이 침몰하고 요크타운이 전치 3개월의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군 역시 쇼카쿠가 대파되고 함재기 전력이 크게 줄어든다. MO작전의 책임자인 이노우에 제독은 이 전력으로는 포트 모르즈비를 점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취소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문위키 산호해 해전 참조.

이후 1942년 7월 14일, 아오바의 제6전대는 제8함대의 일원이 되어 과달카날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사보섬 해전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

1942년 8월 8일 밤, 제8함대 기함 초카이, 아오바의 제6전대, 경순양함 유바리와 텐류, 카미카제급 구축함 유나기가 미군 함대를 습격한 전투. 유바리와 텐류와 유나기의 장비와 숙련도가 크게 떨어지는 데다, 엔터프라이즈가 제공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일본군에게는 승산이 없어보였지만, 어째서인지 일본군이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에서 아오바는 8일 밤에 정찰기인 아오바 1호를 내보냈고, 아오바 1호는 한밤중에 불을 켜고 미 함대 위를 날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 8함대 지휘관인 미카와 군이치 제독에게 보고했다. 당연히 미군이 이걸 봤지만, 모두 미군기라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반격을 취하지 않았다고(...) 정보를 보고받은 미카와 제독은 휘하 함선에 돌격을 명령했고, 미 함대는 약 30분만에 박살나버렸다. 같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군 중순양함 캔버라도 함께 격침당했고, 일본군 제8함대는 초카이와 아오바가 소파된 걸로 끝.[1]

자세한 내용은 영문위키 사보섬 해전일본어위키 제1차 솔로몬 해전을 참조하자. 두 항목의 이름이 다른 이유는 미군과 일본군이 이 해전을 부르는 명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된 내용을 보려면 #.

그러나 전투가 끝난 후, 제6전대는 귀환 도중 미군 잠수함의 습격을 받아 중순양함 카코를 잃었다. 일본군이 장악한 해역으로 빠져나온 후에 회피기동을 중단하고 정찰기 1대만 띄운 채 귀환하고 있었는데, 이때 미군 잠수함 S-44의 습격을 받았다고.

동부 솔로몬 해전

에스페란스 곶 해전

솔로몬의 늑대

베허호 사건

혼작전(곤작전)

오르목만 전투(다호작전)

아오바, 일본으로 돌아가다

구레 군항 공습

전후

평가

각주

  1. 한밤중에 불을 켜고 미 함대 위를 날아다닌 정찰기가 누구인지는 영문 위키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관련 이야기는 과달카날 전투를 다룬 서적인 '핸더슨 비행장'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칸코레 위키 아오바 항목에서는 이 전투에서 보여준 아오바 1호기의 창의적인 정찰을 크게 찬양하고 있으므로 아오바 1호기의 소행으로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