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단일팀

Mykim5902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2월 12일 (월) 09:44 판 (→‎역사)

남북 단일팀은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합쳐 만든 국가대표팀이다. 남북 단일팀은 독일의 동·서 대표팀을 벤치마킹 한 것이며, 1964년 도쿄 올림픽 이래로[1] 국제 스포츠 대회의 평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행사로써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스포츠 대회에서 두 국가를 하나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이다. 개폐회식 동시입장만 해도 대회위원회와 준비위원회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선수를 아주 섞어서 단일팀을 꾸리려면 해당 종목의 국제 연맹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며[2], 엔트리 우대 문제로 경쟁국들의 볼멘 소리도 쉽게 나온다. 내부적으로도 선수들 간의 알력이나 연습 시간 부족 등의 문제가 불거진다.

남북한 사이에도 지루한 의논이 연속된다. 단일팀의 명칭은 1991년 큰틀을 잡아놓은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지만, 선수는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 합동 연습은 언제 어디서 할 것인지,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같은 허들을 국제 대회 접수 마감 전까지 연속으로 넘어야 한다. 보통 남한이 제의하면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시간을 놓쳐 무산되는 게 태반이다.

남북 단일팀 성립시 국기는 하늘색 한반도기를 사용하며, 국명은 “코리아(KOREA)”, 국가(國歌)는 《아리랑》을 사용한다. 이는 1991년 실무회의에서 정해진 방침이다.[3] 약어는 때에 따라 다르나 KOR(영어)·COR(불어)을 사용한다. 공동기수 2명은 남북에서 1명씩 선정하되 성별을 번갈아가며 선정한다.

역사

  •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1991년, 일본)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 대회이다. 여자단체전에서 8연패에 빛나는 중국 선수단을 꺾고 금메달을 성취해 본격적인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텄다.[4] 재일동포연합인 민주 계열의 민단과 공산 계열의 조총련도 이 때만큼은 사상에 상관없이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영화 《코리아》가 이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1991년, 포르투갈)
    탁구대회와 동시기에 논의된 대회로, 선수 엔트리는 남북한에 각각 9명씩 배정됐다.[5] 주변의 우려와 달리 16강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여줬으나 8강에서 브라질에게 4강 진출을 저지당했다.[6]
  • 2000 시드니 올림픽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올림픽 최초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통례대로 선수단은 아리랑 연주와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7]
  • 2006년 도하 하계 아시안 게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하계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이 동시 입장했다. 한반도기에 독도를 포함하자고 결정한 때가 이 시기.[14]

외부 링크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