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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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윤성효 (尹星孝 / Yoon Sung-Hyo)
  • 출생일: 1962년 5월 18일
  • 국적: 대한민국
  • 출신지: 경상남도 김해시
  • 학력: 대감초-부산교대부속초-동래중-동래고-연세대
  • 포지션: 미드필더
  • 신체: 173cm, 70kg
  • 소속팀: 한일은행 (1985~1986)-포항제철 (1987~1993)-대우 로얄즈 (1994~1995)-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0) 1
  • 지도자: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 (1999)-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0 ~ 2003)-숭실대학교 감독 (2004~2010)-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10~2012)-부산 아이파크 감독 (2013~2015)-김해시청 축구단 감독 (2017~)

소개[원본 편집]

'리얼 블루'의 시작을 알리다 -수원 삼성 공홈

선수 시절은 영구결번을 받을 정도로 수원의 레전드였으나 감독으로선 수원의 암흑기를 이끈 수원 역사상 최악의 졸장

선수 경력[원본 편집]

3.1. 어린 시절, 실업팀[원본 편집]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으로, 부산시의 동래중, 동래고, 연세대를 나왔다. 동래중 시절까지 학업과 체육 특기생 생활을 병행하다가 동래고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축구선수를 꿈꾼 특이한 케이스이기도.. 동래고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뽑히지는 않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고교 수비수로 활약하여 서독 재한인협회의 초청으로 서독 축구캠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2  동래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윤성효는 1,2학년 시절 래프트 윙으로 뛰며 곧잘 골을 성공시키는 공격 자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3학년 무렵부터 연세대 축구부에서 거의 출장시간을 갖지못하였고,3 대학 졸업을 앞두고 경기를 거의 소화하지 못한 윤성효는 연세대 졸업 후, 가까스로 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축구 생활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3.2. 프로 경력[원본 편집]

스승인 김호 감독의 지휘 아래 급성장하며 K리그 무대에 안착하였다. 이후 포항제철, 대우 로얄즈를 거쳐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고,4 1998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면서 1999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로 부임하였다. 당시 해이해진 기강과 경기 능력으로 문제의 온상이 되었던 수원 2군을 쇄신하기 위해, 윤성효는 2군 선수들과 함께 똑같이 훈련함은 물론 직접 2군 출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2군 경기를 소화하며 선수들을 규합, 진두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를 보고받은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윤성효 코치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며 은퇴를 번복케하고 플레잉 코치로 1군 엔트리에 등록시켜 다른 수원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였다. 이후 98, 99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리그 2연패를 이끌고 2000년 최종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터프한 맨마킹과 돌파 능력으로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않고 활약했던 수비자원이었다. 단순히 터프한 것만 아니라 발도 매우 빠른 선수였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수가 아니면 윤성효를 제껴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일은행 시절만 해도 테크니션 윙어에 가까웠지만,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보다 체력과 스피드에 역점을 두고 하드 트레이닝을 거듭했다고. 이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15년 동안이나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지도자 경력[원본 편집]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되기 힘들다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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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시절을 빼곤 커리어 전체가 흑역사다.5

5.1. 초기[원본 편집]

윤성효 감독 커리어 최전성기

은퇴 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2003년까지 있었다. 김호 감독이 떠나고 차범근 감독이 들어오자 수원을 떠나 2004년에 숭실대학교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도합 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울산대학교가 강세를 보이던 대학 축구 리그를 정복했다. 6

5.2.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윤성효의 흑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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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사상 최악의 감독

숭실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2010년 6월 경질된 차범근 감독을 대신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새 감독이 되었다. 차범근 감독과 비슷한 지명도의 국내 지도자 혹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결과. 수원과 K리그 올드팬이야 알지만 K리그를 잘 안 보는 사람들이나 2000년대 이후로 신규 유입된 K리그 팬들에게는 역시나 듣보잡 취급. 아무튼 감독 교체 버프를 한껏 받은 수원은 한때 꼴찌 까지 쳐져있던 순위를 7위로 마무리 했고 FA컵에서 우승하면서 2011 AFC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거머쥐며 2010 시즌 후반기 수원의 부활을 이끌었다. 선수와 코치 시절 보좌하던 김호 감독의 영향이 커서인지 나름 대학 감독 시절 선수 육성에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었던지라7  수원의 팀 체질을 바꿀 감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수원의 폭풍 영입이 시작되었다. 이운재와 조원희를 보내고 그 대신 정성룡, 오장은, 이용래, 마토, 게인리히, 오범석 등등... 그리고 대망의 2011 시즌을 맞이했다.

5.2.1. 2011 시즌[원본 편집]

무려 K리그 전반기 15경기 중 7경기에 승점 1점 추가라는 환장할 성적을 보여줬다! 그리고 팀은 14위로 추락. 그 중 성남과의 무승부도 게인리히가 후반 43분에 얻은 득점... 수원은 하마터면 7연패를 할 뻔했다!

리그에서 죽 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아챔에서는 초반부터 흠좀무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5월 25일 아챔 16강전에서 만난 나고야 그램퍼스를 2:0으로 바르고 8강에 진출했다.

리그에서는 성적이 떨어지다 못해 천연 암반수를 뚫었지만 아챔에서는 1패도 하지 않고 4승 3무라는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깡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에서 5위의 성적을 거두고 FA컵에서 울산을 연장 접전 끝에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해 팬들에게는 지지를 받았으나 타팀팬들에게는 한국의 베니테스, 운장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도 전반기의 막장 행보에서 후반기에는 리그 4위까지 복귀했다. 사실 수원의 선수단 구성을 봤을 때는 당연히 올라가야 할 성적이다.(...)

2011년 9월 29일 모두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던 AFC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에 성공했다.(...)이제부터 깔 수도 없는건가8

10월 3일, 이날 44537명이 입장해 수원 월드컵 경기장 최초이자 K리그에서 월드컵 경기장 최초 만원 관중을 기록했는데, 경기 시작 전부터 그랑블루 서울 서포터즈간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고간 가운데 양팀 치열한 공방전 끝에 후반 33분 스테보의 결승골로 1:0 승리와 동시에 3위로 뛰어 올랐다.

10월 8일에 있을 수원 vs 매북의 경기에 매동국, 서정진, 황보원이 국가대표 차출로 결장하면서, 윤성효의 운은 절정을 찍고 있다. 수원도 정성룡, 이용해, 게인리히, 스테보를 차출당해서 도찐개찐이다. 허나 수원은 원래 뽑히던 선수들이고 전북은 조광래가 별로 쓸 생각도 없으면서 혹은 뽑히리라 기대도 안 하던 선수들을 뽑은 것.

정성룡, 이용래, 게인리히, 스테보 등 차포 다 뗀 상태로 홈 경기에서 매북을 맞아 2:2로 비겨 3위 유지에는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이나, 이날 윤성효가 크게 성질을 냈는데 전북경기에서 후반 31분 조용태를 교체 투입했는데 2:1 상황으로 앞서다가 조용태가 수비벽에 슛을 때린 것이 김동찬한테 가고 에닝요에게 패스해 동점골을 만들어 2:2 상황이 됐다. 이 장면을 본 윤성효는 노발대발해서 라인 앞까지 나와 조용태에게 욕을 퍼붓고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허공에 발길질까지 했다. 이걸 본 관중들과 그랑블루는 당황했으며 대기심과 코치들까지 나와서 겨우겨우 윤성효를 진정시켰으나 조용태는 기가 죽어 제 플레이를 펼치치 못하고 결국 교체당했다.

그리고 시즌 트레블을 위한 첫 단추인 2011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는 10월 3일 리그 경기의 천운이 독이 되어 돌아왔는지, 멀쩡한 박현범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는 바람에 골을 날리고, 후반 내내 파상공세를 펼쳤음에도 성남의 코너킥과 조동건의 헤딩 한 방에 0:1 패배. 내년도 AFC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놓고 북패와 다시 한 번 치열한 경쟁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6강 플레이오프 부산 전에서 전반 막판 하태균의 결승골을 잘지켜 뻥축구 개판의 경기력에도 6, 7백을 시전해 부산을 이기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침대 축구와 심판의 석연치 않은 수원 편파 판정이 나와 원정 온 부산 팬들에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가 "공격해라 수원!"이라고 외쳤을 정도.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울산 현대로 확정된 상태에서 K리그 정규리그 순위가 울산보다 위여서 2경기 연속 홈에서 경기를 치루는 장점을 얻었다. 그러나 홈에서 0:1로 질질 끌려다니다가 후반 38분에 마토의 PK로 겨우 동점을 만들어 승부차기까지 가는 추태를 보였다. 그리고 두번째 키커부터 삼연뻥을 작렬시키면서 울산에게 아챔 티켓과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모두 내주고 말았다.

게다가 아챔에선 너무나도 비통하고 원통하게 떨어졌다. 4강 알 사드 전에서 수원은 홈에서 상당히 답답한 경기를 펼치다가 결국 후반 24분 알사드의 니앙에게 선제골을 내 주고 만다. 경기장 분위기는 수원의 안풀리고 답답한 경기에 여기 저기서 그랑블루 국축갤은 수원탓 윤성효 탓으로 돌렸고 경기는 약간 지루한 침대축구 정국으로 가던 도중... 실점 후 공격 상황에서 최성환이 알 사드의 수비수의 축구화에 정통으로 얼굴을 밟히고 두 선수가 고통으로 경기장에 쓰러진 상황에서 염기훈은 공을 경기장 밖으로 걷어냈다.

그런데 알 사드가 드로인한 공을 수원 선수에게 넘기지 않고 바로 파워스루패스 공격을 전개해 수원이 유야무야하는 상태에서 골을 넣어 버렸다.

이 문제로로 흥분한 수원의 관중이 난입해 알 사드의 골키퍼와 언쟁을 벌였고 결국 골키퍼는 관중에게 주먹질 폭력을 행사했다.

양팀 선수는 물론이고 코칭 스태프까지 뒤엉켜 싸우는 초유의 폭력 사태가 벌여졌고, 이 과정에서 알 사드의 몇몇 선수들은 피를 흘리기도 했다. 스테보와 게인리히는 사전뜻 그대로 용병의 모습을 보여줬다.9

이 과정에서 이정수 선수가 페어 플레이가 아닌 점을 들어 한 골을 내주자고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동료들과 언쟁이 벌어졌고 결국 이정수는 자신의 발로 경기장을 떠났다. 양팀 선수 각각 한 명씩 퇴장당하고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알 사드 선수들의 신경질적인 플레이로 인해 한 차례 퇴장과 경고가 더 나왔고 10분 추가시간 동안 수원은 만회골을 터뜨리는데 실패, 창단후 15년 만에 아시아팀을 홈에서 맞아 패배하고 말았다.

북패, 성남 일화 팬들은 라이벌 관계를 떠나 수원을 옹호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나머지 팬들도 이날 만큼은 수원을 옹호해 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트레블엔 모두 한 끗 차이로 실패.

5.2.2. 2012 시즌[원본 편집]

그러나 K리그와 FA컵을 모두 석권하는 일은 없었다.

2012 시즌은 AFC 챔피언스 리그도 못 나간다. 다른데 눈 돌릴 틈 없이 리그에 올인 모드로 시작. 주요 영입으로는 이미 2011 시즌 중반 영입한 스테보와 겨울 이적시장에서 라돈치치, 조동건, 수비에 호주출신의 에디 보스나을 데려오는 등 폭풍영입을 진행하였다. 주요 영입만큼 팀을 떠나는 선수도 많았다. 마토를 내보내고 게인리히도 팀을 떠났으며 염기훈이 경찰청 군입대, 개상호의 중동 임대, 황재원의 이적 등 떠나는 선수도 많았다.

시즌 초반부터 리그 선두를 질주한다. 강력한 우승 경쟁 상대로 예상되었던 울산과 북패, 매북은 예상밖에 고비를 겪으면서 뒤를 쫓는 양상이 펼쳐졌으며, 남패가 깜짝 돌풍을 일으키며 2위까지 바짝 추격했다. 그러나 6월 들어서면서 리그 순위에 한바탕 변동이 생긴다. 매북이 1위를 탈환하고, 북패와 울산이 수원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해온다.

그리고 7월 들어 K리그 팬들과 프렌테 트리콜로는 충격과 공포를 목도하게 된다.

  • 7월 1일 수원 VS 포항 0:5 패
  • 7월 8일 수원 VS 매남 0:3 패
  • 7월 14일 수원 VS 매북 0:3 패

놀랍게도 무득점 11실점 3연패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최근 들어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불만을 품던 서포터즈들은 급기야 7월 14일 매북전에서 윤성효 퇴진을 외치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후에도 2무를 기록한 끝에 인천을 만나 가까스로 1승을 거두며 7월 최종 성적은 3위로 끝났다. '그러나 이는 월말 정산의 마술일 뿐, 사실 7월 내내 4위였다가 막판 울산이 부산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승점 2점 차로 역전한 것이라 팬들로서는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봄에 잔뜩 벌어놓은 승점 덕분에 상위권에 머물고 있기는 한데, 우승권 경쟁 팀들이 여름을 나는 페이스에 비한다면 현재 수원은 글자 그대로 방전 상태라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그렇다고 8월 들어서 반등할 호재가 딱히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28라운드 서울 원정에서 다시 한번 서울을 잡아내면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심지어 이 경기까지 서울전 전적이 6승 1패에 5경기 연속 무실점이기 때문에 '딴 건 몰라도 북패 잡는건 성효가 최강'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29라운드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무재배를 하면서 또 다시 대차게 까였다.10

30라운드까지 일정을 마치고, 3위로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1위 북패와 승점 11점차로 벌어졌고, 4위 울산은 승점과 득실까지 같고 다득점에서 앞섰을 뿐이라 사실상 털끝만한 차이라 팬들은 우승 레이스에 대한 희망은 커녕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획득 여부를 걱정할 판이었다. 참고로 5위 포항과는 승점 3점차.

10월을 마친 시점에서 리그 성적은 3위. 이미 1위 북패와 승점은 14점 차로 벌어졌고, 2위 매북과도 7점 차이라 사실상 우승 경쟁에서 탈락한 모양새다. 한편 스플릿 시스템이 가동된 이후 줄곳 3위 자리를 놓고 다툰 울산은 아챔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상대적으로 리그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5위로 쳐졌고, 반면 포항이 꾸준히 수원의 뒤를 쫓는 형국이 되었다.

11월을 마친 시점에서 리그 성적은 4위. 포항과 줄곳 피말리는 3위 다툼을 벌이다 결국 막판 승점 1점차로 3위 자리를 내줬다. 공교롭게도 12월 2일 리그 최종전 상대가 포항이라 이날 승자가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12월 2일 포항에게 0:3으로 완패하며 최종 순위는 4위. 더구나 이날 황선홍 감독은 후반 38분 황진성을 빼고 문창진을 투입하는 능욕 선보이기까지 했다.11

다행히 포항이 FA컵 우승으로 아챔 진출권을 획득한 상태이기 때문에,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진출권은 대신 수원이 받게 되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리그 역사상 첫 강등팀까지 나오면서, 리그엔 감독 교체 바람이 몰아쳤다. 축구팬들의 관심사는 단연코 매강희 팀 복귀가 맞물린 매북 이흥실 감독과 올 시즌 잔뜩 체면을 구긴 수원 윤성효 감독의 재계약 여부였다. 그러나 수원 프런트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프런트가 점찍어둔 감독이 있는데 수원행을 사양한다는 카더라가 돌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유임하지 않겠냐는 예측도 힘을 받았다.

결국 12월 12일, 수원 구단은  2011 시즌과 2012 시즌 부진, 전술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반발 등으로 말미암아, 결국 잔여 계약 기간 6개월을 남기고 전격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은 서정원 수석코치.

5.3. 부산 아이파크[원본 편집]

윤성효의 흑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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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다시 버로우

그리고 2012년 12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에서 사퇴한지 불과 5일만에 부산 아이파크 사령탑으로 부임하였다. 부산 팬들은 이 소식에 소위 멘붕을 느꼈지만, 다행히 부산 감독 취임 후 첫 시즌이었던 2013 시즌은, 성효부적이라는 이슈도 만들어내면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풀리그에서 무난한 성적을 거두며 안익수 감독이 다져놓은 부산 선수진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데 이어, 26라운드 對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성남 일화 천마를 밀어내고 상위 스플릿 리그에 안착, 갓성효로 평가가 반등하는데도 성공하였다. 게다가 이어진 상위 스플릿 리그에서는 한동안 부진을 겪기도 하였지만, 막판에 수원과 인천을 잇달아 잡아낸데 이어, 울산 현대와의 일전에서 후반 44분 결승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어 버리며 울산의 자력 우승을 좌절시키기도 하였다.12  이후 울산은 13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2위 포항과 동해안 더비를 진행했지만, 포항의 극적인 우승에 들러리가 되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고 이에 윤성효 감독은 리그의 설계자 효느님(...)으로 평가가 반등되게 이른다. 요컨대 윤성효는 자타가 공인하는 2013 K리그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며, 수원 시절의 부정적 평가를 떨쳐내는데 성공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낸 셈.

그러나 인기는 2013 시즌 단 한 해로 끝나고 말았다. 2014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로까지 전락하며 부진을 이어가다, 하위 스플릿에서 약팀 등을 꺽으며 간신히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성공했지만, 2015 시즌에도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며 극도의 부진을 이어가 강등권을 맴돌고 말았던 것. 결국 2015년 7월 1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직에서 자진 사임하였다. 즉 수원 시절과 비슷한 형국으로 부산과의 인연도 정리하고만 셈. 이후 부산은 온갖 오명을 쓴 채 강등당하고 만다.

5.4. 김해시청[원본 편집]

윤성효의 흑역사 3

갑질 논란이 일어나다

2016년 12월, 계약이 만료된 김귀화의 후임으로 내셔널리그 축구팀인 김해시청의 새 감독에 선임되어, 비록 다른 리그지만 현장에 복귀하게 됐다. 숭실대와 수원 시절 함께했으나 지금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하강진을 데려왔으며, 청소년 대표 출신의 지언학 등을 영입하였다.

개막 이전 김해시청을 우승후보로 꼽는 의견이 많았고, 이에 걸맞게 윤성효는 기존의 중위권이였던 김해시청을 강력한 우승후보로까지 끌어올렸으며, 13라운드까지 6승 7무로 13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1위를 달리는 저력을 보여줬다.

특히 과거 지루한 롱볼 축구만 한다는 비판받았던 것을 의식했듯이 김해에서는 빠르고 간결한 패스 플레이를 선보였으며, 내셔널리그 통합 준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8년 3월 9일 “우리는 윤성효 감독에게 장난감 취급 당했다”라는 기사가 올라오며 논란이 일었다. 선수의 계약해지과정에서 잔여연봉을 주지않기 위하여 사직서를 강요했는데 윤성효 감독의 넓은 인맥을 두려워 한 선수들은 감히 항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숭실대 감독 시절에도 이와 같은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2016년 4월 26일 라디오볼에서 근황이 얼떨결에 공개되었다. 서호정 기자가 밝히기를, 부산 아이파크를 떠난 후 축구계는 쳐다보기도 싫다며 야인으로 돌아가 김해시 산 속에서 꾸지뽕 농사를 짓고 있고, 의외로 수입이 짭짤해서 돈 좀 많이 만졌다고 한다. 13 기사
  • 2010년 9월 1일 K리그 성남 vs 수원 전에서 윤성효는 잔디 상태를 보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실제로 보니 더욱 심각하다. 경기는 둘째치고 부상을 조심해야겠다. 이런 곳에서 경기를 해보지 않아 부담스럽다. 경기장을 보고 있자니 모라도 심어야겠다." 그리고 경기 후엔 "잔디 때문에 원했던 경기를 하지 못했다. 성남은 연습 구장으로 사용했기에 더욱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 너무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하고자 한 대로 못한 것이 아쉽다. 물론 상대도 없지 않았겠지만, 우리가 가진 스타일 때문에 더욱 불리했던 것 같다." 라고 말했다.

    14

      이후에도 하도 잔디타령을 많이 해서 팬들로부터 윤잔디라는 별명을 얻었다.

  • 수원의 레전드로 인식되면서 그의 등번호 38번이 비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이 되어 아무도 38을 달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수원에서 겨우 5년밖에 뛰지 않았다. 이 영구결번에 대한 비화도 있는데 팬들도 윤성효의 번호인 38번을 결번으로 알고 있었으나 2008 시즌 김현준 선수가 38번을 달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에 영구결번 같은 게 없었다는 얘기가 대세를 이루던 중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그가 부임하게 되자 수원 구단에서는 행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2011년 다시 3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가 2016 시즌에 유한솔이 등번호 38번을 받았다......가 착오가 있었다며 37번으로 바꿔 달았다. 기억상실증 수준
  • 윤성효는 수원 감독 부임 후 첫 북패전에서 패하였지만 이후 내리 7연승을 거두며 북패킬러로써 K리그 정의구현에 힘썼다. 수원에서의 마지막 북패전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연승 행진은 마감했지만 8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후 2013 시즌부터 부산 감독을 맡으면서 이 기록을 이어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3월 17일 북패와의 홈경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면서 팀빨이 아닌 자신의 능력(?)임을 입증하며 북패전 9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나갔다. 15
  • 윤성효는 선수 시절, 부천 SK와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윤정환 선수는 기술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였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윤성효 선수의 마킹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수원의 윤정환 마크법을 지켜본 여타 팀들은 부천과의 경기 때마다 윤정환을 전담 마크하는 수비수를 따로이 지정해두기도 하였다.
  • K리그에서의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로 뽑힌 일은 거의 없어서 16 17  K리그를 예전에 안 봤던 일반인한테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수원삼성블루윙즈 위키 - wikidok>bearsuwonblue | 윤성효(http://ko.bluewings.wikidok.net/wp-d/5b588a45de62d61c40177019/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