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동 남고생 살인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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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 = [[2005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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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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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사망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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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9일 (목) 11:13 판

{{{사건이름}}}
구의동 고등학생.jpg
사건의 피해자 한인택 군의 모습
사건 정보
원인 살인

개요

구의동 남고생 살인 사건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의 아차산역 인근 대로변 언덕길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한인택 군(17,남)이 걸어가던 중 범인의 흉기에 깊게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범인을 찾지 못해 19년째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사건 진행

2005년 9월 6일 오후, 학원을 모두 마친 인택 군은 광진구 구의동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PC방에서 놀았다. 마침 그 날은 학원 자체에서 테스트만 보던 날이었던지라 평소보다 더 널널하게 놀 수 있었던 듯. 이후 인택 군은 밤이 늦은 오후 11시 30분이 넘어서야 PC방을 나와서 친구들과 차차 헤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가장 마지막까지 인택 군과 함께한 친구는 김 군이었다.

사실 인택 군은 학원과 학교는 서울에서 다니고 있었으나, 정작 자택은 경기도에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1]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김 군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워낙 밤이 늦었던지라 버스가 쉽게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후 11시 42분, 인택 군은 자신의 모친과 전화를 하였다. 그 때까지도 버스는 전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인택 군은 광역버스가 많이 서는 강변역까지 걸어가겠다고 김 군에게 말하고, 그렇게 김 군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11시 50분경, 김 군과 헤어진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인택 군이 2명의 남성에게 쫓기는 것을 인근 주유소에 있던 직원이 목격하게 된다. 이 때, 주유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한 명의 손에는 30cm 정도 되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고, 이들은 "죽는다", "거기 서라" 등 소리를 지르며 마치 장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게 따라가고 있었다고.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원이 다시 대로변을 바라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인택 군은 보이지 않고, 인택 군과 추격전을 벌이던 그 2명의 남성만 다시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그리고 다음 날인 9월 7일 새벽 12시 1분쯤, 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전화를 받았지만 신고자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 즉, 신음이 섞인 목소리여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결국 경찰 측에서는 한 군의 휴대폰 위치를 추적, 발신지 인근으로 경찰관들을 출동시켰으나, 경찰관들은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새벽 1시쯤, 대학생 2명으로부터 경찰이 출동했던 지역 인근 언덕길에 사람이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경찰은 다시 현장에 출동하였다. 현장에는 다름 아닌 인택 군이 사망한 채 쓰러져 있었고, 현장으로부터 약 100m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었다. 인택 군이 사망한 곳은 치안센터에서 채 100m도 안 되는 곳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치안센터는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되고 있었다.

사건 조사

우선 현장의 한인택 군은 생전 모습 그대로 가방을 등에 맨 채 엎드려 있었고, 한 손에는 마지막 발신지로 112가 기록되어 있는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었다. 한인택 군의 사인은 복부 자창으로, 범인이 인택 군의 배에 깊게 칼을 쑤셔넣은 것으로 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게 칼이 배 안을 파고들어 대동맥까지 찌르는 바람에 대동맥이 절단되어 곧바로 엄청난 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복부 자창과 함께 인택 군이 사망에 이르는 것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단 한 번 가슴이나 목과 같은 급소도 아니고 배를 찌른 것이 사망에 이를 깊이 정도였다는 것. 또한, 저 정도의 깊이로 배를 찔렀다는 것은, 범인은 반드시 인택 군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동맥이 절단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현장에 혈흔이 많지 않았던 것은 근육이 피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버려서, 즉, 복부 자창으로 인해 피가 인택 군의 배 안에서만 계속 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 대한 조사가 당연히 바로 실행되었지만, 범인이 노린 것인지 해당 흉기의 손잡이는 재질이 울퉁불퉁한 재질로 되어 있어 재질 자체가 지문이 남을 수가 없는 형태였다. 즉,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흉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

사건 발생 다음 날인 9월 8일 경찰은 우선 인택 군의 주변 친구들부터 소환 조사를 시작했고, 혹시 주위에 원한을 산 친구들이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인택 군이 칼에 찔린 깊이로 봐서, 인택 군에게 큰 원한을 산 사람이 죽이겠다는 의지로 배에 칼을 그대로 꽂아넣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기 때문. 경찰은 먼저 인택 군의 친구인 김 군과 정 군을 불러 조사를 했으나, 이 둘은 범행을 강력하게 부인하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 경찰은 일단 이들을 훈방조치를 하였다. 사건 발생 직전까지 인택 군과 함께 있었던 김 군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지만, 김 군은 이후 인택 군과 동행한 이력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또다시 하루가 지난 9월 9일, 경찰은 탐문 수사를 위해 사건이 발생한 장소 인근을 돌아다녔고, 이윽고 인택 군이 뛰어가는 것을 본 사건 발생 현장 인근 주유소의 직원을 만나 목격담을 전해들었다. 다만, 너무 빠르게 뛰어서 지나갔기에, 아직 주유소 직원은 그 2명이 혹시 인택 군의 친구 즉, 김 군과 정 군인지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9월 10일, 경찰은 해당 주유소를 다시 방문하여 해당 직원에게 김 군과 정 군의 사진을 보여주고는 인택 군을 쫓던 사람이 이 사람들이 맞냐고 재차 물었고, 직원은 이번엔 이 둘이 맞다며 얘기를 했다.

9월 12일, 경찰은 정 군과 김 군을 유력 용의자로 재차 긴급체포하였다. 주유소 직원의 말도 그렇지만 당시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던, 인택 군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친구 김 군 역시 이번에는 사건 당일날 인택 군이 간 곳으로 김 군과 정 군이 뒤따라가는 것을 봤다고 증언하였고, 인택 군이 사망하기 직전 경찰에게 걸어온 신고전화에서 김 군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경찰은 이 둘, 김 군과 정 군이 범인임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체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 군과 정 군은 자신들의 범행을 자백하게 되었다.

이후 과정

그러나 김 군은 2006년, 대법원까지 가서 재판을 받은 끝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김 군에 대한 당시 동선을 이용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증거 자료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

윤 씨와 마지막까지 인택 군과 함께 있던 김 군의 증언에 대해서 벌써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2명의 범인들에 대해 누구였는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경찰이 그들의 사진을 보여준 이후 갑자기 이들이 범인이 맞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으며, 나중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던 그들의 신발에 대해서도 기억이 난다며 진술을 하였다. 마지막까지 인택 군과 함께 있었던 김 군 역시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진술을 하였지만, 나중에 와서는 김 군과 정 군이 인택 군의 뒤를 밟는 것을 봤다고 말을 바꾸게 되면서 혹시 이게 강압수사가 아니냐, 아니면 이들이 무고한 2명을 물 먹이려 하는게 아니냐는 등 여러 가설이 쏟아져나왔으며, 자백 받은 것도 혹시 강압적으로 자백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김 군과 정 군은, 처음 체포될 9월 8일에는 강력하게 자신들의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가, 9월 12일에는 불과 5일만에 자신들의 범인을 자백하고 인정하였다. 짧은 기간도 아니고, 확실한 증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의 갑작스런 범행 자백은 당연히 큰 의심과 의문점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신고 음성 역시 김 군을 범인이라고 확실히 지목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신고 음성은 신음 소리와 섞여 알아듣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김 군의 이름이 들어있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웠으며, 경찰들이 김 군이 범인이라고 굳게 생각하고 들으니까 김 군의 이름이 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역시 쏟아져나오게 되면서 신고 음성 역시 믿을만한 단서가 안 된다는 주장이 많아졌다.

미제 사건으로 남다

결국 구의동 남고생 살인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2005년에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19년이 지난 2024년 현재까지도 범인의 신원과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이 사건은 원래대로라면 2020년 9월 7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겠지만, 다행히 태완이법이 개정되면서 2000년 8월부터 발생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 이 사건 역시 언제든지 범인만 잡히면 처벌이 가능하다.

만약 이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말고 112나 관할 경찰서에 제보해보도록 하자.

여담

  • 2020년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영하면서 더 대대적으로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 인택 군은 사망 이후 자신의 집 앞마당에 묻혔다고 한다.
  • 요즘은 이런 경우가 드물지만, 2005년에는 광진구에 각종 불량배와 폭력배 등이 많았고, 충분히 사람을 칼로 찌를 정도의 깡을 가진 학생이 많이 있었다. 때문에 김 군과 정 군이 아닌 불량배들에게 쫓기다가 인택 군이 변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 인택 군의 아버지는 뇌종양을 투병 중이셨는데, 아들이 변을 당하게 되자 투병 끝에 결국 별세하셨다고 한다. 아들도 잃고 남편도 잃어 혼자 남겨진 인택 군의 어머니는, 슬픔 속에서 아들을 죽인 범인을 끝까지 찾고 싶어하고,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신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같이보기

대한민국의 다른 살인 사건

틀: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각주

  1. 사실 맨 처음 인택 군이 타려던 버스는 광역버스 정류장인 강변역으로 향하는 마을버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