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분실: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Mykim5902님이 대공분실 문서를 보안분실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현 명칭)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토막글}}
{{토막글}}
'''대공분실'''(對共分室)은 [[경찰청]]에서 설치한 수사기관으로 방첩, 국가보안법 위반을 한 사람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공식적으로는 '''보안분실'''(保安分室)이라고 부른다.
'''보안분실'''(保安分室)은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근무하는 별관으로 방첩, 국가보안법 위반을 한 사람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과거에는 '''대공분실'''(對共分室)이라고 불렀다.


== 실제 ==
== 실제 ==
원래 목적은 방첩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조사하는 것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가 같이 당시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를 고문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 말고도 간첩사건 관련 할당량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던 경우도 있었다.
원래 목적은 방첩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조사하는 것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민주운동가 같이 당시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를 고문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 말고도 간첩사건 관련 할당량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던 경우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이 경찰청 직속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보안분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건물 팻말을 달지 않거나, 위장 명칭을 달고 있었다. 2010년대 후반까지 실존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영장없이 체포돼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다.
 
== 폐지 ==
공안경찰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높아지고 사회고발 영상물([[1987 (영화)]] 등)의 상영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보안분실의 운용이 어려워졌다. 시범 사업으로 가장 악명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폐지되어 인권센터 및 여성·청소년 부서가 설치되고 5층의 고문실은 일반에 개방되었다. 뒤이어 경찰청 본청 및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보안분실을 폐지하고 본관으로 이전함에 따라 전국 27개 보안분실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15/0200000000AKR20180615101900004.HTML?input=1195m 군사정권 시절 인권유린 공간 '경찰 보안분실' 폐지된다], 연합뉴스, 2018.06.15.</ref>


{{각주}}
{{각주}}
[[분류:공공기관]]
[[분류:공공기관]]
[[분류:정보기관]]
[[분류:정보기관]]

2018년 8월 8일 (수) 22:56 판

틀:토막글 보안분실(保安分室)은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근무하는 별관으로 방첩, 국가보안법 위반을 한 사람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과거에는 대공분실(對共分室)이라고 불렀다.

실제

원래 목적은 방첩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조사하는 것이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민주운동가 같이 당시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를 고문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자 말고도 간첩사건 관련 할당량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던 경우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았던 것이 경찰청 직속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보안분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건물 팻말을 달지 않거나, 위장 명칭을 달고 있었다. 2010년대 후반까지 실존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영장없이 체포돼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다.

폐지

공안경찰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이 높아지고 사회고발 영상물(1987 (영화) 등)의 상영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보안분실의 운용이 어려워졌다. 시범 사업으로 가장 악명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폐지되어 인권센터 및 여성·청소년 부서가 설치되고 5층의 고문실은 일반에 개방되었다. 뒤이어 경찰청 본청 및 지방경찰청에 설치된 보안분실을 폐지하고 본관으로 이전함에 따라 전국 27개 보안분실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