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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혁명'''({{포르투갈어|Revolução dos Cravos|헤볼루상 두스 크라부스}})은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무혈 [[쿠데타]]이다. 별명은 '''리스본의 봄'''이며, 포르투갈에서는 '''4월 25일 혁명'''({{포르투갈어|25 de Abril|빈트 이 싱쿠 드 아브릴}})이라고도 부른다.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쿠데타]]이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에서는 4월 25일 혁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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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 진행 ==
4월 25일 좌파 군인들이 날이 밝기도 전에 국영 방송국을 포함 수도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했다. 그 대신 유혈 충돌은 없었다.
1974년 4월 25일 좌파 군인들이 날이 밝기도 전에 국영 방송국을 포함 수도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했다. 그 대신 유혈 충돌은 없었다. 이에 시민들은 독재와 식민지 전쟁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군인들의 총구와 제복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다.
이에 시민들은 독재와 식민지 전쟁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군인들의 총구와 제복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다.
 
== 결과 ==
총리와 명목상의 대통령은 유폐했고, 그들이 추대한 장군이 임시 대통령이 됐다.  이후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해외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일괄포기했다. 그 덕분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들은 독립을 쟁취했으나 얼마 안되어 권력 싸움이 벌어져 내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사이 권력 투쟁이 있었지만 1976년 자유총선거로 MFA 출신 장군인 [[안토니우 하말류 아이느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안정을 취하게 되었다..<ref>[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4250487823600 카네이션 혁명(4.25)], 한국일보, 2018. 04. 25.</ref><ref>https://m.blog.naver.com/pthnuiverse/220341037699</ref>


[[분류:사회 운동]]
{{각주}}
[[분류:쿠데타]]
[[분류:혁명]]
[[분류:1974년 포르투갈]]
[[분류:1974년 분쟁]]

2022년 3월 6일 (일) 02:46 기준 최신판

카네이션 혁명(포르투갈어: Revolução dos Cravos 헤볼루상 두스 크라부스)은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무혈 쿠데타이다. 별명은 리스본의 봄이며, 포르투갈에서는 4월 25일 혁명(포르투갈어: 25 de Abril 빈트 이 싱쿠 드 아브릴)이라고도 부른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살라자르 총리의 장기 집권으로 인해 식민지 전쟁은 지속되어 경제적 낙후가 지속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죽어서도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있어서 이에 대해 반발한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하여 발생했다.

진행[편집 | 원본 편집]

1974년 4월 25일 좌파 군인들이 날이 밝기도 전에 국영 방송국을 포함 수도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했다. 그 대신 유혈 충돌은 없었다. 이에 시민들은 독재와 식민지 전쟁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군인들의 총구와 제복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다.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총리와 명목상의 대통령은 유폐했고, 그들이 추대한 장군이 임시 대통령이 됐다. 이후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해외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일괄포기했다. 그 덕분에 포르투갈의 식민지들은 독립을 쟁취했으나 얼마 안되어 권력 싸움이 벌어져 내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사이 권력 투쟁이 있었지만 1976년 자유총선거로 MFA 출신 장군인 안토니우 하말류 아이느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안정을 취하게 되었다..[1][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