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덕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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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정희왕후]] 사이의 적장자.
'''덕종'''(德宗, 1438년~1457년 9월 20일)은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왕세자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었다. 초명은 이숭(李崇), 이름은 이장(李暲), [[자 (이름)|자]]는 원명(原明)이다.
[[성종]]의 아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도원군(桃源君)이란 군호를 받았고,  세조 즉위 후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 죽음으로써 의경세자(懿敬世子)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성종 즉위 후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
[[조선 세조|세조]]와 [[정희왕후]] 사이의 적장자이며, [[조선 성종|성종]]의 아버지다. 아내는 [[한확]]의 딸인 [[인수대비]] 한씨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도원군(桃源君)이란 군호를 받았고,  세조 즉위 후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 죽음으로써 '''의경세자'''(懿敬世子)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성종 즉위 후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


세조 재위 때 의경세자가 죽자 차남인 [[예종]]이 세자가 되었다. 적장손인 [[월산군]]이 세손이 되지 않은 이유는, 세조 자신이 세종의 장성한 차남으로서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서 보아 세조는 나이 어린 후계자를 별로 원하지 않았던 것 같고 유교의 장자 승계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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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한확]]의 딸인 [[인수대비]] 한씨이다.
== 사후 ==
세조 재위 때 의경세자가 죽자 차남인 [[조선 예종|예종]]이 세자가 되었다. 적장손인 [[월산군]]이 세손이 되지 않은 이유는, 세조 자신이 [[조선 세종|세종]]의 장성한 차남으로서 어린 [[조선 단종|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서 보아 세조는 나이 어린 후계자를 별로 원하지 않았던 것 같고 [[유교]]의 장자 승계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외부 참조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412 덕종(德宗)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주}}
[[분류:조선의 왕족]]

2023년 11월 9일 (목) 22:10 기준 최신판

덕종(德宗, 1438년~1457년 9월 20일)은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왕세자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되었다. 초명은 이숭(李崇), 이름은 이장(李暲), 는 원명(原明)이다.

세조정희왕후 사이의 적장자이며, 성종의 아버지다. 아내는 한확의 딸인 인수대비 한씨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도원군(桃源君)이란 군호를 받았고, 세조 즉위 후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 죽음으로써 의경세자(懿敬世子)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성종 즉위 후 덕종(德宗)으로 추존되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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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편집 | 원본 편집]

세조 재위 때 의경세자가 죽자 차남인 예종이 세자가 되었다. 적장손인 월산군이 세손이 되지 않은 이유는, 세조 자신이 세종의 장성한 차남으로서 어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서 보아 세조는 나이 어린 후계자를 별로 원하지 않았던 것 같고 유교의 장자 승계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외부 참조[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