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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6일 (수) 01:35 기준 최신판

서산 부장리 고분군
서산 부장리 고분군.jpg
건축물 정보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219-10번지
대지면적 14,108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475호
지정일 2006년 11월 6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2004년 서산시의 임대아파트 조성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해당 부지에 대해 사전 문화재 발굴조사를 충남역사문화원에 위탁하여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 37기(주거지 31기, 수혈유구 6기)와 백제시대 유구 74기(주거지 40기, 분구묘 13기, 수혈 18기 석곽묘 3기), 조선시대 움무덤 83기를 포함한 104의 유구가 확인되어 유적지 전체에서 총 260여기의 유구가 확인된 생활 및 분묘 유적에 해당한다 2006년 11월 6일 사적 제475호으로 지정된 유적지이다.

유적 특성[편집 | 원본 편집]

부장리(副長里) 고분군 중에서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분구묘[1]가 이목을 끌었는데, 총 13기의 분구묘가 백제시대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무덤들의 규모는 한 변의 길이가 20~40m이며 봉분의 높이는 높은 것은 3~4m정도에 이르는 규모로 전체적인 형태는 사각형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음은 말각방형(抹角方形)이며 무덤 주변에 설치하는 도랑인 주구(周溝)가 설치되어 있었다.

매장시설로는 모두 토광을 사용한 움무덤으로 토광에 덧널 목곽을 사용한 것과 덧널 없이 목관만을 사용한 것이 있고 분구 내부에 시신을 매장하는 매장주체부는 1기에서 10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당시 출토 유물로는 금동제품을 비롯해 각종 철기루와 토기류 등이 나왔으며 특히 5호분에서는 백제계의 금동관모, 금동신발, 철제초두, 고리자루칼, 곡옥, 귀걸이 등이 다수 출토되어 무덤 주인의 신분이 꽤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거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마을 형태의 주거지역(취락)도 함께 확인되었으며 이외에 조선시대 주거지로 확인된 7기의 주거지 형태는 한쪽 벽면에 부뚜막과 구들장(온돌)이 있는 평면의 부정원형으로 확인되어 이후에도 이 일대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유적에서 다양하게 나온 분구묘 양식으로 분구묘와 분묘군의 형성과정 등을 보다 상세히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무덤과 집터의 공간 배치에서 둘의 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을 확인하여 당시 생활지역과 무덤유적의 분리가 확실히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중앙 역사에서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은 백제 지방 세력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금동관이나 금동신발, 고리자루칼, 철제초두와 같이 왕릉이나 이에 준하는 신분에 해당하는 유물이 나온 만큼 당시 백제 중앙과 지방 세력간의 관계 등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이 유적지 바로 뒤편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애초에 임대아파트 부지로 시굴조사를 하다 나온 유적지인만큼 유적지 이외 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파트 입장에서 보면 무덤뷰(...)가 되는 묘한 상황이 된다.
  • 이 유적지의 위치를 보면 현재는 서산A지구 방조제(간월방조제)에 막혀 호수와 간척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바다가 꽤 가까운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런 위치를 보이는 곳은 이 곳 말고도 나주 옥야리나 장동리 고분이 있으며 무덤 양식의 경우 이후 인근 서산 기지리에서 발견된 기지리 유적지의 분구묘 양식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두 지점의 세력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 세력권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곳에서 출토된 백제계 유물의 경우 한성백제시대(4~5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공주 수촌리 고분군의 출토유물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확인되어 당시 서산지역의 지방 세력의 정체가 백제계 지방세력이거나 마한 세력권에서 백제쪽으로 넘어간 세력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각주

  1. 흙을 쌓아올려 분구를 만들고 위에 매장을 하는 무덤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