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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서울 지하철]]로 채택될 뻔 한 방식이다. | 의외로 [[서울 지하철]]로 채택될 뻔 한 방식이다. | ||
1968년 [[서울 전차]]의 폐지 당시, 이를 대체하는 지하철로서 도입이 검토되었다. <ref> '도심지 전차 철거'. 경향신문, 1968년 4월 16일 보도.</ref> 당시의 보도들에서 묘사되는 것은 궤도가 단선으로 바퀴가 타이어로 되어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어 실물 시스템을 어느 정도 정해두고서 검토가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 1968년 [[서울 전차]]의 폐지 당시, 이를 대체하는 지하철로서 도입이 검토되었다. <ref> '도심지 전차 철거'. 경향신문, 1968년 4월 16일 보도.</ref> 당시의 보도들에서 묘사되는 것은 궤도가 단선으로 바퀴가 타이어로 되어 있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어 실물 시스템을 어느 정도 정해두고서 검토가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 ||
당시의 보도에서는 4량편성으로 량당 정원은 250명이 승차할 수 있는 것으로, 최대 3분 시격의 운전이 가능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ref>'전철 새해 초 착공'. 동아일보, 1968년 11월 23일 보도.</ref> 도입 교섭은 일본과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금리 등의 차관 교섭이 원활치 않은데다 노선 계획 역시 명확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후 SS트램의 도입은 흐지부지 되고 현재와 같은 대형 철제차륜 전동차에 의한 지하철 건설로 방향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잊혀진 기술방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당시의 보도에서는 4량편성으로 량당 정원은 250명이 승차할 수 있는 것으로, 최대 3분 시격의 운전이 가능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ref>'전철 새해 초 착공'. 동아일보, 1968년 11월 23일 보도.</ref> 도입 교섭은 일본과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금리 등의 차관 교섭이 원활치 않은데다 노선 계획 역시 명확하지 않았으며, 결국 이후 SS트램의 도입은 흐지부지 되고 현재와 같은 대형 철제차륜 전동차에 의한 지하철 건설로 방향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잊혀진 기술방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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