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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식 중장갑차(九二式重装甲車 큐니시키주소코샤)는 [[일본 제국]]이 최초로 직접 만들어낸 준전차(Tankette)이다. [[일본군]] 육군의 기갑부대용으로 계획되어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제조소(株式会社石川島自動車製造所)<ref>오늘날의 [[이스즈 자동차]]</ref>에서 만들어졌으며, 주로 정찰이나 보병지원용으로 쓰였다. 보통 경전차로 분류되지만, 특이하게 중장갑차라는 명칭이 붙어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차]]는 보병사단으로 배속되는데, 정작 이 무기는 기갑부대를 위한 용이라서 중장갑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ref>여담으로, 비슷한 사례를 미국의 [[M1 전투차량]]에서도 볼 수 있다.</ref> | |||
==개발사== | ==개발사== | ||
[[제1차 | [[제1차 세계대전]]이후에, 많은 유럽국가들이 기병대의 기계화에 착수하였으며,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여기서 몇몇 차량을 도입해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차륜형 장갑차]]는 만주의 열악한 도로 상황과 혹독한 겨울로 인해 큰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일본군은 여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장갑차]]를 기존의 기병대 진형과 결합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펼치었다. | ||
1920년대 초반부터 일본군은 [[ | 1920년대 초반부터 일본군은 [[치바 현]]에 소재한 황립육군기마사관학교에서는 [[영국]]의 카든 로이드 경전차(Carden Loyd tankette)와 [[프랑스]]의 르노 FT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유럽산 경전차의 시운전을 실행하였다. 1929년, 일본은 카든 로이드 경전차를 기반으로 해서 기존의 장갑차 부족을 해결할 새로운 형태의 차륜형 장갑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 ||
92식 중장갑차는 처음엔 궤도와 차륜을 동시에 장착하고, | 92식 중장갑차는 처음엔 궤도와 차륜을 동시에 장착하고, 전후진이 둘 다 가능하며, 수륙양용으로 쓰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시운전은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일본 육군 역시 이러한 기능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수륙양용전차는 폐지되었고, 오직 육상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형태의 궤도형 차량으로 바뀌게 된다. | ||
생산은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제조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1932년에서 | 생산은 이시카와지마 자동차 제조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술상의 문제로 1932년에서 1939년 동안 총 167대를 만드는데 그쳤다. 그러나 구동 장치에 있던 문제를 고친 이후로 만주와 중국의 열악한 도로와 거친 지형에서 나쁘지 않은 정도를 보였으며, 속도는 40km/h에 달하였다. 몇몇 차량은 전조등 2개를 장착하여 야간 작전기능도 보유하였으며, 마크 4 ''오츠''<ref>1934년 모델로 88파운드(약 40kg)에 0.6마일(약 1km)의 송신거리를 지녔으며 뒤집힌 L모양의 7.0m짜리 안테나를 장착하였다.</ref>의의 경우에는 무전기 역시 장착되었다. | ||
92식 중장갑차는 [[중일전쟁]] 중 94식 준전차로 교체되었다. | |||
==장갑과 무장== | ==장갑과 무장== | ||
92식 | 92식 중장갑차의 경우에는 6~12mm에 이르는 리벳용접식 장갑을 장착하여 무게를 3톤까지 줄일 수 있었지만 일반 소총탄에 뚫일 정도로 장갑이 빈약하였다. 장갑과 무기 모두 유럽제 차량에 비해 더 가벼웠지만 고작 속도는 시속 40km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 ||
무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차량이 2기의 기관총을 포탑과 차체에 각각 1기씩 장착하였다. 나중에는 호치키스사의 것을 라이센스 생산한 13mm [[97식 중기관총]]이 차체에 장착시켜 주포로 썼다. 주포의 회전은 제한되었지만, 회전형 접안렌즈를 조준기에 장착하고 고각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어서 대공사격 역시 가능하였다. 부포는 6.5mm 탄환을 쓰는 [[91식 경기관총]]을 썼으며 나중에 7.7mm [[97식 경기관총]]이 수동 회전식 포탑에 장착되었다. | |||
차량 생산이 끝나고 나서는, 지속적인 무기 개량을 실시하였다. 몇몇 기종에는 97식 중기관총을 대체하여 98식 20mm 기관포가 장착되었다. 몇몇 기종에는 37mm 전차포가 장착되었으나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또한 포탑 후방의 대공 무장을 제거하여 91식 기관총이나 97식 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엔진 해치의 경우에는 개폐가 가능하도록 개조하여 기관총을 보병이 타서 직접 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 |||
==변형== | ==변형== | ||
주요 변형으로는 | 주요 변형으로는 3가지 형태가 있다. 최초의 형태인 차륜형 장갑차나 방수형 차체와 부낭, 소형 고무 타이이어, 그리고 프로펠러를 장착한 수륙양용전차(92식 아-이-고)는 고속으로 회전시 트랙을 이탈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신형 서스펜션을 장착한 기종으로 바뀌었다. | ||
92식의 | 92식의 제 1기 형태는 6.6mm 경기관총을 각각 차체와 포탑에 장착하였다. 일본군 기갑사단에 쓰여서 1932년 하얼빈 전투에 참가하였다. | ||
제 2기 형태는 차체에 13.2mm 중기관총을 장착하였고, 대공 능력을 갖추어 그 유용성 역시 높였다. 일본군 8사단의 특수기갑대에 의해 1933년 4월, | 제 2기 형태는 차체에 13.2mm 중기관총을 장착하였고, 대공 능력을 갖추어 그 유용성 역시 높였다. 일본군 8사단의 특수기갑대에 의해 1933년 4월, 레헤 전투에 참가하였다. | ||
제 3기 형태는 1942년 4월, 만주에 배치되었다. 해당 기종은 새로운 형태의 관측창과 다른 방향으로 회전이 가능한 바이저, 그리고 7.7mm 96식 경기관총을 포탑에 장착하였다. | 제 3기 형태는 1942년 4월, 만주에 배치되었다. 해당 기종은 새로운 형태의 관측창과 다른 방향으로 회전이 가능한 바이저, 그리고 7.7mm 96식 경기관총을 포탑에 장착하였다. | ||
==사용== | ==사용== | ||
92식 전차는 주로 [[관동군]]과 [[ | 92식 전차는 주로 [[관동군]]과 [[조선진주군]]에 배치되었다. | ||
{{주석}} | 92식 전차는 하얼빈 전투의 제 1 기갑연대와 레헤 전투에서 8사단 소속의 특수기갑대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였다. | ||
{{주석}} | |||
{{번역된 문서|en|Type 92 Heavy Armoured Car}} | {{번역된 문서|en|Type 92 Heavy Armoured Ca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