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75번째 줄: | 75번째 줄: | ||
: 또, 부산 방향에 붙이기 위해 지형상 덜 문제가 되는 지점을 찾다보니 대전에서 접속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전(회덕)은 조그만 시골이었으나 호남선의 연결 이후 대전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과의 교통로에서 대전은 서울과 상당히 먼 지점일뿐만 아니라, 선형 역시 돌아가는 형태로 유지되어 문제를 낳게 된다. 도로의 경우도 호남고속도로가 이런 문제점을 답습했으나, 현재는 [[논산천안고속도로]]의 신설로 해결된 반면, [[호남고속선]]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말았다. 해당 항목 참조. | : 또, 부산 방향에 붙이기 위해 지형상 덜 문제가 되는 지점을 찾다보니 대전에서 접속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전(회덕)은 조그만 시골이었으나 호남선의 연결 이후 대전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과의 교통로에서 대전은 서울과 상당히 먼 지점일뿐만 아니라, 선형 역시 돌아가는 형태로 유지되어 문제를 낳게 된다. 도로의 경우도 호남고속도로가 이런 문제점을 답습했으나, 현재는 [[논산천안고속도로]]의 신설로 해결된 반면, [[호남고속선]]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말았다. 해당 항목 참조. | ||
; 전주 미경유 문제 | ; 전주 미경유 문제 | ||
: 전주에서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제가 익산(당시 이리)를 선호한 것은 이리의 규모가 엄청 작은 편도 아니었고, 당시 일본인 거주구가 있었던 [[군산시|군산]]과의 연결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산의 입구인 전주와 달리 평야 지대에 있어 쌀의 수탈도 쉬웠기 때문. 때문에 전주 방향은 나중에 [[전라선]]을 신설하여 해결하게 되었는데, 도시 규모상 호남선이 전주를 통과하지 않게되는 바람에 호남선의 수요가 분산될 | : 전주에서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일제가 익산(당시 이리)를 선호한 것은 이리의 규모가 엄청 작은 편도 아니었고, 당시 일본인 거주구가 있었던 [[군산시|군산]]과의 연결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산의 입구인 전주와 달리 평야 지대에 있어 쌀의 수탈도 쉬웠기 때문. 때문에 전주 방향은 나중에 [[전라선]]을 신설하여 해결하게 되었는데, 도시 규모상 호남선이 전주를 통과하지 않게되는 바람에 호남선의 수요가 분산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낳았다. | ||
; 광주 도심 문제 | ; 광주 도심 문제 | ||
: 광주의 경우는 전주처럼 미경유까지는 아니지만, 이 역시 문제가 조금 있다. [[광주광역시]]에는 일부 걸치지만, 외곽지에 해당하는 [[광주송정역|송정리]]에서의 접속만이 이루어졌고, 정작 광주는 [[광주선]] 같은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나마도 사실 [[경전선]]이 들어가던 것을 이설하면서 지선화한 것. 고속철도 운행 이후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 : 광주의 경우는 전주처럼 미경유까지는 아니지만, 이 역시 문제가 조금 있다. [[광주광역시]]에는 일부 걸치지만, 외곽지에 해당하는 [[광주송정역|송정리]]에서의 접속만이 이루어졌고, 정작 광주는 [[광주선]] 같은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나마도 사실 [[경전선]]이 들어가던 것을 이설하면서 지선화한 것. 고속철도 운행 이후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