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리라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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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 [[시리아 임시정부]]<ref>UN에 가입된 시리아(국가)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내전으로 그 '시리아'에 대항하는 반군 중에서 터키 영향의 괴뢰국 세력을 가리킨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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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추이 : 리라를 버리고 달러를 취한다! ===
=== 환율 추이 : 리라를 버리고 달러를 취한다! ===
1980년대부터 시작된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2005년 화폐개혁를 기점으로 차츰 잡히기 시작하여, 2010년 전후로 안정감을 찾게 되었다. 다만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이 당시 기준으로 5% 이상 찍었던지라 물가상승은 잦아들지 않은 상태에서 [[레젭 타입 에르도안|에르도안]]의 이상한 경제정책과 2013년 시위 사태, 2016년 쿠테타 미수사건 등으로 인한 안정성 추락 이미지가 씌워져 2020년대로 넘어가서도 계속 나락을 향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낙폭이 더욱 급격하게 커졌다.  
[[파일:USDTRY20112021.png]]
튀르키예 리라는 201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 낙폭이 급격하게 커진 통화이다. 전성기인 2011 ~ 2012년 경 환율은 약 680원/₺ (2₺/$ 미만)이었고, 각종 해외발 금융사태가 터진 뒤인 2016년 환율이 대략 400원/₺ 이하 정도를 가리켰는데, 그 해 말에 30% 넘게 대폭락을 했고, 2018년 5월에 추가로 10% 떨어지면서, 중앙은행 차원에서도 환율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당연히 낙폭에 맞춰 터키 물가 상승률은 반비례로 급등하였는데, 예를 들면 이스탄불의 교통 토큰인 제톤(Jeton) 1개의 가격도 2004년에는 650,000TL~1,000,000TL(₺0.65~₺1.00)였지만 2012년에는 ₺1.75~₺2 정도, 2015년 경에는 ₺3(3,000,000TL)까지 올랐다. <s>다만 [[교통카드]]로는 ₺1.95, 튀르키예 학생이라면 ₺0.90라는 게 함정</s> 2017년 기준으로는 제톤 코인이 없어지고 카드로 바뀌었으며, 기본요금으로 ₺5를 받고 있다.
2018년 8월 10일에는 바로 전날 대비 17원 이상 떨어졌는데, 전달인 7월 26일만 해도 232원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미국과의 외교전쟁으로 인해 국제정세적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리라를 버리고 달러로 돌아서면서 또다시 떡락이 일어났으며, 연동율이 비교적 높던 유로까지 [[물귀신|하락세로 끌어들였을 정도]]였다. 그 이듬 영업일인 13일에는 추가로 10~20원 가까이 떨어져 160원/₺(약 8₺/USD)까지 깨질 위기에 처하자, 교민이고 현지인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러 구하려 현찰을 쓸어다 환전소로 찾아가는 바람에 북새통을 이루었고, 미처 환율연동가 대응을 하지 못한 <s>할인 행사중인 [[버버리]]라던지</s> 명품매장 등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환차익을 노린 레이드를 띄웠으며, 불안하던 치안은 더욱 악에 물드는 가운데 대통령이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할 정도로 막장가도를 걷게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튀르키예 리라의 침몰이 [[1997년 외환 위기|태국발 경제위기]]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진단, 대통령의 국민 호소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IMF]]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냈었으나, <small><s>[[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이 전망이 실제로 인용되는 일은 없었다.]]</s></small> 결과적으로 정부의 무두질이 제대로 작용했는지, 17일 환율은 추가 폭락 이전인 190원 내외까지 도로 회복하였다. 한편 미국의 신흥국 시장에 대한 관세폭탄 견제로 인해 튀르키예 리라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 [[인도네시아 루피아]], [[아르헨티나 페소]], [[브라질 헤알]]에도 쇼크를 먹여 직전대비 10%가량 가치를 떨어트린 바 있다.


[[파일:USDTRY20112021.png]]
그러나 [[COVID-19|2020년 유행병]]으로 인해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ref>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튀르키예 경제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ref>하던 튀르키예 경제는 직격탄을 먹었는데, 그럼에도 대통령인 [[레젭 타입 에르도안|에르도안]]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sub>(대개는 디플레이션 및 환율 하락에 대항하는 수단인)</sub>'''금리 인하'''를 꾸준히 밀어대서, 화폐가치 하락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문제는 2020년 8월, 그렇게 문제가 많던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2조 3천억원=175억리라(약 131.43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는 것.
여튼간 전성기인 2011 ~ 2012년 경 환율값은 약 680원/₺ (2₺/$ 미만)이었고, 각종 해외발 금융사태가 터진 뒤인 2016년 환율은 대략 400원/₺ 이하 정도를 가리켰는데, 그 해 말에 30% 넘게 대폭락을 했다. 이후 2018년 5월에 추가로 10% 떨어지면서, 중앙은행 차원에서도 환율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허나 방어막이 통하지 않았는지 동년도 7월말에 230원 내외를 가리키던 리라화는 미국과의 외교전쟁으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터키에도 관세폭탄을 던져놓음으로 인해 국제정세적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리라를 버리고 달러로 돌아서면서 떡락이 예고되어, 연동율이 비교적 높던 유로까지 [[물귀신|하락세로 끌어들였다.]]  


그 직후로도 추가 하락하여 8.00₺/USD(약 160원/₺)선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발등에 불 떨어진 현지인이고 교민이고 너나 할 것 없이 달러 구하려고 리라 현찰을 쓸어모아다 환전소로 찾아가는 바람에 외환시장이 북새통을 이루었고, 미처 환율연동에 대응하지 못한 <s>할인 행사중인 [[버버리]]라던지</s> 명품매장 등에서는 본의 아닌 바겐세일을 열어버린 바람에 환차수익을 노린 외국인 관광객들이 레이드를 뛰었으며, 그런 혼돈의 도가니에 치안이 멀쩡하게 작동되지는 않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그 와중에 에르도안은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하는 촌극도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당시 튀르키예 리라의 침몰이 [[1997년 외환 위기|태국발 경제위기]]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진단하여, 대통령의 국민 호소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IMF]]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냈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정부의 무두질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당해 내에서 8리라선이 깨지지는 않았다.  
2020년을 기점으로 가치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한 [[스팀 (플랫폼)|스팀]], [[애플]], [[샤넬]] 등의 국제적 대기업의 상품 가격 또한 환율에 맞춰 비정상적으로 급락하였고, 그걸 눈치채고 셔터 내릴 때까지의 잠깐동안 해외구매가 번성(?)하기도 하는 해프닝이 또다시<ref>2016년 경 베네수엘라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나마 튀르키예가 베네수엘라 만큼의 막장은 아니긴 해서, 단체 철수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지만...</ref> 벌어졌다.


그러나 5년도 채 안 되어 [[COVID-19|2020년 유행병]]으로 인해 에너지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ref>에너지 자원의 부족은 튀르키예 경제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ref>하던 튀르키예 경제는 직격탄을 먹었는데, 그럼에도 대통령인 에르도안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sub>(대개는 디플레이션 및 환율 하락에 대항하는 수단인)</sub>'''금리 인하'''를 꾸준히 밀어대서, 리라화 가치 하락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가팔라지게 된다.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한 [[스팀 (플랫폼)|스팀]], [[애플]], [[샤넬]] 등의 국제적 대기업의 상품 가격 또한 환율에 맞춰 비정상적으로 급락하였고, 그걸 눈치채고 셔터 내릴 때까지의 잠깐동안 해외발 구매 행렬이 번성(?)하게 된 사태가 또다시<ref>2016년 경 베네수엘라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있었다. 그나마 튀르키예가 베네수엘라 만큼의 막장은 아니긴 해서 단체 철수 사태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ref> 벌어졌다. 여담으로 2020년 8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2조 3천억원=175억리라(약 131.43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여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2021년 12월 20일에 잠깐 가치가 급반등했다가 다시 추락했다. 이후 반등하는 일 없이 꾸준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이후 2021년 12월 20일에 잠깐 가치가 급반등했다가 다시 하향세로 돌아섰으며, 이후 반등하는 일 없이 꾸준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 유로화 전환 관련 ===
=== 유로화 전환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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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권 : Emission 9 (2009) ===
=== 현행권 : Emission 9 (2009) ===
2009년 1월 1일 부터 통용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이때부터 YTL의 Y가 탈락하였다. 유적지에 중점을 두던 과거와 달리, 전반적으로 유명인사를 디자인 소재로 적극 기용하는 방향. 기호 ₺는 이 시리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1일 부터 통용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이때부터 YTL의 Y가 탈락하였다. 유적지에 중점을 두던 과거와 달리, 전반적으로 유명인사를 디자인 소재로 적극 기용하는 방향. 기호 ₺는 이 시리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환율은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튀르키예 경제성장률이 매년 5% 이상씩을 찍으면서 초반에 언급했듯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가파른 편이고, 2013년 경 튀르키예 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게 되면서 초창기에 비해 30%가까이 가치가 폭락한 바가 있다. 예를 들면 이스탄불의 교통 토큰인 제톤(Jeton) 1개의 가격도 2004년에는 650,000TL~1,000,000TL(₺0.65~₺1.00)였지만 2015년 경에는 ₺3(3,000,000TL)까지로 많이 올랐다. <s>다만 [[교통카드]]로는 ₺1.95, 튀르키예 학생이라면 ₺0.90라는 게 함정</s> 2017년 기준으로는 제톤 코인이 없어지고 카드로 바뀌었으며, 기본요금을 ₺5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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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200 유누스 엠레(시인)<br />영묘와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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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폐는 몰론 동전에도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그려져 있는데, 최소액권인 5쿠루쉬는 완전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가 액면이 커질수록 [[아타튀르크]]가 점점 정면을 향해 돌아보도록 바뀜과 동시에 얼굴 표정도 점차 미묘하게 밝아진다.<ref>7차 및 8차에서는 옆을 보다가 앞을 보다가 다시 옆을 보는 구조이라 적용되지 않는다.</ref> [[비정상회담]](13회 방송분)의 [[에네스 카야]]가 이를 언급했었고, 덕분에 '돈이 없으면 대통령도 안 쳐다본다'라는 명언(?)을 전한 바가 있다. <s>아타튀르크께서는 큰 돈을 지니고 다니는 분을 좋아하십니다!</s>
* 지폐는 몰론 동전에도 앞면에 [[아타튀르크]]가 그려져 있는데, 최소액권인 5쿠루쉬는 완전한 옆모습을 하고 있다가 액면이 커질수록 [[아타튀르크]]가 점점 정면을 향해 돌아보도록 바뀜과 동시에 얼굴 표정도 점차 미묘하게 밝아진다.<ref>7차 및 8차에서는 옆을 보다가 앞을 보다가 다시 옆을 보는 구조이라 적용되지 않는다.</ref> [[비정상회담]](13회 방송분)의 [[에네스 카야]]가 이를 언급했었고, 덕분에 '돈이 없으면 대통령도 안 쳐다본다'라는 명언(?)을 전한 바가 있다. <s>아타튀르크께서는 큰 돈을 지니고 다니는 분을 좋아하십니다!</s>


{{폐기권}}
=== 구권 : Emission 7 ~ 8 (1979 ~ 2008) ===
{{작성중}}
1979년부터 등장한 시리즈로, 인플레 혼란기에 해당한다. E7에 해당하는 시리즈는 모두 15개 종류에 36가지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 참으로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최저액권과 최고액권의 격차는 무려 2,000,000배. 당연하지만 전 종류가 한꺼번에 쓰인 적은 없다.


=== 전환기 : Emission 7 ~ 8 (1979 ~ 2008) ===
디자인상 10만 리라(1990년 첫 발행)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을 나눈다. 최고액권인 2000만 리라는 2002년에 등장하였고, 모든 종류는 2005년 1월 1일부터 사용이 중단되었다. 개혁 직전인 2004년에는 환율이 135만 리라/USD이었다. 2016년 1월 1일부로 통화로서 효력을 잃는데, 계산하기도 귀찮고 교환하기도 귀찮은 탓에 이미 이것들은 시중에서 거의 안 받아주는 편.
7차 발행분은 대략 1995년 무렵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며, 1/1,000,000 규모의 화폐개혁을 시행하기 직전인 2004년의 환율은 약 135만 리라/USD를 기록했다. 2005년에 신 터키 리라(Yeni Türk Lirası, 8차 발행분)로 개혁하면서 ISO 4217 코드가 TRY로 바뀌었다. 이 당시에는 구권인 TL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Yeni<ref>영어로 치면 New</ref>의 Y를 붙여 YTL이라고 표기하였다.  


1983년 투르구트 외잘 당시 총리(훗날 대통령)의 시장경제화 정책에 따라 터키 내 통화량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저렴한 노동력을 무기로 하는 2차 산업 투자를 통해 소득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적절하였으나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는 약점 탓인지 무역수지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70년대까지의 국가주의 정권이 벌여놓은 막대한 국가빚과 수렁 깊은 정계 내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았으며, 그 사이 자연재해(지진)와 불안정해진 국제정세까지 겹치는 와중에 90년대 후반부터 집권하게 된 이슬람주의 정권이 민심 확보를 위한 복지를 무턱대고 확대한 결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고 만다. 0의 숫자가 점점 불어나자 편의상 0을 3개 혹은 6개 생략하여 표기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인플레이션이 절정에 달한 2000년대 초반에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은 최소 몇십만, 때로는 억단위의 돈을 들고다니며 유사 억만장자(?)의 기분을 누렸다는 경험담을 털기도 하였다.
워낙에 "0"이 많다보니 당시 계산할 때, 일단 0을 3개 혹은 6개 먼저 빼놓고 계산했다고 한다. 10만TL, 25만TL화는 동전으로도 발행되었다.


다만 여타 다른 초인플레이션 사례와는 달리 장기화 되기 전에 대책을 세웠기에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고, 그 속에는 케말 데르비쉬 당시 경제장관의 강경한 통화정책과 민영화 & 외자 유치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하여, 비록 물가는 다 오르는데 월급만 그대로라는 당연한(?)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국민들의 욕을 푸짐하게 먹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한 자릿수까지 끌어내리는 데는 성공하였다.
디노미 탈출을 위해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 결국 2005년에 개혁한 시리즈(Yeni Türk Lirası)로, 이때부터 [[ISO 4217]]코드가 TRY로 바뀌었다. 약간의 진통은 이어졌지만 강력한 통화정책의 덕분인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s>그리고 대신에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s> 구권과의 디노미 비율은 1(신):1,000,000(). 20리라까지는 E7의 디자인을 이어받았고, 뒤늦게 나온 2종은 새롭게 개정된 신판이다. 이 당시에는 구권인 TL과 구분하기 위해 일부러 Yeni<ref>영어로 치면 New</ref>의 Y를 붙여 YTL이라고 표기하였다. 2020년 1월 1일부터 통화로서 효력이 없어진다.
 
7차 시리즈는 2016년 정초부터, 8차 시리즈는 2020년 정초부터 유통 및 환전/교환이 모두 중단되었다.


{| class="wikitable"
{| class="wikitable"
! colspan="4" | 튀르키예 1기 - 2기 리라 전환기 (E7후반(1995~2004) ↔ E8(2005~2008))
! colspan="3" | 튀르키예 1기 - 2기 리라 전환기 (E7후반(1995~2004) ↔ E8(200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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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width:25%;" | [[File:100 YTL ön.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00 YTL arka.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50 YTL arka.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left; width:25%;" | ←<br />100 YTL & 50 YTL 앞면 패턴<br />100 YTL 이샤크 파샤 궁전<br /> 50 YTL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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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text-align: center;" | 20 YTL ▼
| style="text-align: center;" | 1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10 YTL ▼
아타튀르크에게 꽃을 전달하는 초딩들
| style="text-align: center;" | 5 YTL ▼
| style="text-align: center;" | 25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1 YTL ▼
크즐 쿨레(알란야)
| style="text-align: center;" | 500,000TL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차낙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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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yle="text-align: center;" | [[File:20 YTL ön.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0 YTL ön.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5 YTL ön.jpg]]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 YTL ön.jpg]]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20million.JPG]][[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0 Million TL reverse.jpg]]피리 레이스의 지도<ref>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항해사인 피리 레이스가 그린 고지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부 및 남미 동부(브라질)까지 그려져 있지만, 이 지방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그냥 자료가 있으니까 그려 넣었다' 에 가깝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File:5 Million TL reverse.jpg]]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늣카비르)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II Million TL reverse.jpg]]아타튀르크 댐
|-
|-
| style="text-align: center;" | ▲ 20,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1,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 10,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5,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 5,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10,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 1,000,000TL
|-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500000 TL reverse.jpg]]
|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File:250000 TL reverse.jpg]]
| style="text-align: center;" | 20,00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File:100000-II lira reverse.jpg]]
| style="text-align: left;" | ←500,000TL 갈리폴리 전투 기념관(차낙칼레)<br />250,000TL 크즐 쿨레(알란야)<br />100,000TL 아타튀르크에게 꽃을 전달하는 아이들
|}
|}
* 1,000,000TL(=1YTL) ~ 20,000,000TL(=20YTL)은 신권의 뒷면과 같은 디자인/스펙이다.


{| class="wikitable"
{| class="wikitable"
! colspan="3" style="text-align: center;" | 튀르키예 1기 리라 E7(전기) 시리즈
! colspan="3" style="text-align: center;" | Turkiye 7th Emission Series Low Digit
|-
|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앞면의 아타튀르크<ref>권종별로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10TL (고액판 10만리라와 동일)
|-
|-
| style="text-align: center;" | 앞면의 아타튀르크<ref>권종별로 디자인이 약간씩 다르지만, 5만 리라까지 앞면 아타튀르크의 시선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이후 고액권은 정면을 보고 있다.)</ref>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10TL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
| style="text-align: center;" | 100TL
마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 style="text-align: center;" | 500TL
이즈미르 시계탑
| style="text-align: center;" | 1,000TL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오스만 시절 이스탄불의 전경
|-
|-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162번째 줄: 166번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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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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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100TL 마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1판)
| style="text-align: center;" | 500TL 이즈미르 시계탑
콘야의 메블라나 묘소
| style="text-align: center;" | 1,000TL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2세와 오스만 시절 이스탄불의 전경
|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2/3판)
메블라나 루미와 그의 묘소
|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4판)
아프신-엘비스탄의 지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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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1판) 콘야의 메블라나 묘소
| style="text-align: center;" | 10,000TL
|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2/3판) 메블라나 루미와 그의 묘소
미마르 시난<ref> 카이세리(카파도키아의 동쪽에 있는 중간규모 도시.) 출신의 기독교도. 데브시르메 제도에 따라 예니체리로 징집되었으나, 황제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들어 건축가로 전직하였다. 참고로 미마르(mimar)는 성이 아니라, 튀르키예어로 건축가라는 뜻.</ref>과 셀리미예 모스크(에디르네)
| style="text-align: center;" | 5,000TL(4판) 아프신-엘비스탄의 지력발전소
| style="text-align: center;" | 20,000TL
튀르키예 중앙 은행 본관
| style="text-align: center;" | 50,000TL
튀르키예 대 국민의회 (앙카라)
|}
 
{| class="wikitable"
! colspan="4" style="text-align: center;" | Turkiye Emission 8 (200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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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 center;" | 모습
| style="text-align: center;" | 앞면
| style="text-align: center;"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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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1YTL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아타튀르크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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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5YTL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아타튀르크의 영묘 (아늣카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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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10,000TL 미마르 시난<ref> 카이세리(카파도키아의 동쪽에 있는 중간규모 도시.) 출신의 기독교도. 데브시르메 제도에 따라 예니체리로 징집되었으나, 황제 쉴레이만 1세의 눈에 들어 건축가로 전직하였다. 참고로 미마르(mimar)는 성이 아니라, 튀르키예어로 건축가라는 뜻.</ref>과 셀리미예 모스크(에디르네)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20,000TL 튀르키예 중앙 은행 본관
| style="text-align: center;" | 10YTL
| style="text-align: center;" | 50,000TL 튀르키예 대 국민의회 (앙카라)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피리 레이스의 지도<ref>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이자 항해사인 피리 레이스가 그린 고지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부 및 남미 동부(브라질)까지 그려져 있지만, 이 지방들을 식민지배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다 '그냥 자료가 있으니까 그려 넣었다' 에 가깝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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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20Y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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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에페소스]]의 셀수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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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50Y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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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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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100YTL
| style="text-align: center;" |
| style="text-align: center;" | 이샤크 파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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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전의 최소단위는 1쿠루쉬이며, 구권 10,000TL에 해당했다. 이때 10,000TL 이하의 지폐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었는데, 이미 사장되었었기 때문. 그리고 새 튀르키예 리라 도입당시에도 1쿠루쉬는 쓸일이 없어서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잔돈을 받을때면 5쿠루쉬 이하는 그냥 버렸다. 이것은 2012년 이후(E9)도 마찬가지.
동전의 최소단위는 1쿠루쉬이며, 구권 10,000TL에 해당했다. 이때 10,000TL 이하의 지폐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었는데, 이미 사장되었었기 때문. 그리고 새 튀르키예 리라 도입당시에도 1쿠루쉬는 쓸일이 없어서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잔돈을 받을때면 5쿠루쉬 이하는 그냥 버렸다. 이것은 2012년 이후(E9)도 마찬가지.
 
{{폐기권}}
== 현찰 시리즈 (과거) ==
== 현찰 시리즈 (과거) ==
=== 건국 초기 (Emission 1, 1926 ~ 1936) ===
=== 건국 초기 (Emission 1, 1926 ~ 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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