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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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급히 조직된 대책위에서는 "추락 지점을 특정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구조 요청을 미루고 있었고, 정확한 추락 위치를 내놓으라면서 애꿏은 ATC만 갈궈댔다. 관할 현경에서는 엇갈리는 보고와 신고로 위치 특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다 123편 화물 중에 의료용 방사능 기기가 있어서 방사선을 풀풀 내뿜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고 후 급히 조직된 대책위에서는 "추락 지점을 특정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구조 요청을 미루고 있었고, 정확한 추락 위치를 내놓으라면서 애꿏은 ATC만 갈궈댔다. 관할 현경에서는 엇갈리는 보고와 신고로 위치 특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다 123편 화물 중에 의료용 방사능 기기가 있어서 방사선을 풀풀 내뿜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본격적인 사고 수색이 시작된 것은 날이 밝은 13일 새벽으로, 자위대와 현경이 중심이 되어 수색을 시작했다. 수색 과정에서 4명의 생존자를 발견했으며, 중상을 입은 2명은 도쿄 소방청 헬리콥터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직후에는 생존자가 다수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줄어갔다고 한다. 늑장 대응의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생존자들은 출혈과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당시 대원들이 늦게 출동한 것은 수색헬기가 산악용이 아닌 해상용이고 야간 수색장비도 없었으며, 폭발로 인해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사고 다음날에 온것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사고 수색이 시작된 것은 날이 밝은 13일 새벽으로, 자위대와 현경이 중심이 되어 수색을 시작했다. 수색 과정에서 4명의 생존자를 발견했으며, 중상을 입은 2명은 도쿄 소방청 헬리콥터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직후에는 생존자가 다수 있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줄어갔다고 한다. 늑장 대응의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생존자들은 출혈과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당시 대원들이 늦게 출동한 것은 수색헬기가 산악용이 아닌 해상용이고 야간 수색장비도 없어시으며, 폭발로 인해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사고 다음날에 온것이라고 한다.


주일미군이 수색에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주일미군이 수색에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일본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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