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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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경우는 아드리아 해안선 다수를 점하고 있는 지리적 요점 탓에 내륙국 고립+연방붕괴를 우려한 유고슬라비아 측에서 이를 저지하고자 군대를 보내게 된다. 이것이 유고내전의 시작이었고, 세르비아-보스니아-크로아티아 간의 치열한 전쟁으로 인해 달마티아 지역은 거의 폐허가 되었었다. 흔히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당연히 곧장 바다 건너에 있는 [[이탈리아]]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곧바로 [[UN|국제사회]]가 중재압박을 걸어서 세르비아측이 철수, 그렇게 '''1차''' 내전은 종식되었다. 아직 회복이 더딘 [[몬테네그로]]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쟁 피해 복구가 완료된 상태인데, 특히 [[꽃보다 누나]]에서 처음 크로아티아를 접했다면, 그곳이 한때 전쟁폐허였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할 정도로 재건해냈다.
[[크로아티아]]의 경우는 아드리아 해안선 다수를 점하고 있는 지리적 요점 탓에 내륙국 고립+연방붕괴를 우려한 유고슬라비아 측에서 이를 저지하고자 군대를 보내게 된다. 이것이 유고내전의 시작이었고, 세르비아-보스니아-크로아티아 간의 치열한 전쟁으로 인해 달마티아 지역은 거의 폐허가 되었었다. 흔히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당연히 곧장 바다 건너에 있는 [[이탈리아]]가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곧바로 [[UN|국제사회]]가 중재압박을 걸어서 세르비아측이 철수, 그렇게 '''1차''' 내전은 종식되었다. 아직 회복이 더딘 [[몬테네그로]]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쟁 피해 복구가 완료된 상태인데, 특히 [[꽃보다 누나]]에서 처음 크로아티아를 접했다면, 그곳이 한때 전쟁폐허였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할 정도로 재건해냈다.


덧붙여, [[북마케도니아]] 또한 독립을 선언했었는데,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와는 달리 [[알바니아]]계<ref>신생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알바니아계의 충돌로 내전이 벌어질 정도로 알바니아계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95602&cid=43025&categoryId=43025 알바니아 소수민족과의 민족 분쟁]</ref>가 세르비아계보다 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이었기에 세르비아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또한 티토는 동구권에 속했던 불가리아의 견제 목적에서 마케도니아인의 독자성과 역사 교육을 인정해주었고 마케도니아 정교회도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분리 독립할 수 있게끔 지원해줄 정도로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특별 대우를 해주었기에 별다른 갈등 없이 조용히 독립하였다. 북마케도니아 지역은 유고슬라비아 왕정 시기에 '남세르비아(Јужна Србија)'와 '바르다르주(Вардарска бановина)'로 불릴 만큼 독립정체로서의 위상이 낮았기에, 세르비아 측에서도 이들의 독립을 그저 새로운 남부 세르비아 정부가 탄생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덧붙여, [[북마케도니아]] 또한 독립을 선언했었는데,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와는 달리 [[알바니아]]계<ref>신생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알바니아계의 충돌로 내전이 벌어질 정도로 알바니아계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95602&cid=43025&categoryId=43025|알바니아 소수민족과의 민족 분쟁]</ref>가 세르비아계보다 다수를 차지하던 지역이었기에 세르비아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또한 티토는 동구권에 속했던 불가리아의 견제 목적에서 마케도니아인의 독자성과 역사 교육을 인정해주었고 마케도니아 정교회도 세르비아 정교회에서 분리 독립할 수 있게끔 지원해줄 정도로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특별 대우를 해주었기에 별다른 갈등 없이 조용히 독립하였다. 북마케도니아 지역은 유고슬라비아 왕정 시기에 '남세르비아(Јужна Србија)'와 '바르다르주(Вардарска бановина)'로 불릴 만큼 독립정체로서의 위상이 낮았기에, 세르비아 측에서도 이들의 독립을 그저 새로운 남부 세르비아 정부가 탄생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3개국이 떨어져 나간 후, 어중간하게 남은 땅에 어중간하게 섞인 민족구성을 보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방에서 땅따먹기 싸움이 벌어졌다. 내륙부의 보스니아계+남부의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북부와 동부의 세르비아계가 뒤섞여가며 대치한 상태에서 중심부([[사라예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기 바쁜 [[보스니아 내전]]이 1992년 봄부터 1995년 겨울까지 이어졌다. 크로아티아 내전때와는 달리 외부로 개입할 요소가 별로 없었고,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재림한 것마냥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명확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사실상 분단상태의 나라로 만들어지고 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vs [[스르프스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산업기반은 농경시대 수준으로 파괴되었으며<ref>원래부터 보스니아 지역은 세르비아 지역 다음가는 곡창지대였긴 했지만.</ref>, 경제는 장기전으로 인해 하이퍼인플레이션<ref>[[짐바브웨 달러]], [[베네수엘라 볼리바르]]가 새로운 레전드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이곳의 통화인 [[유고슬라비아 디나르]]가 초인플레이션의 교과서였다.</ref>과 더불어 나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3개국이 떨어져 나간 후, 어중간하게 남은 땅에 어중간하게 섞인 민족구성을 보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방에서 땅따먹기 싸움이 벌어졌다. 내륙부의 보스니아계+남부의 크로아티아계, 그리고 북부와 동부의 세르비아계가 뒤섞여가며 대치한 상태에서 중심부([[사라예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기 바쁜 [[보스니아 내전]]이 1992년 봄부터 1995년 겨울까지 이어졌다. 크로아티아 내전때와는 달리 외부로 개입할 요소가 별로 없었고,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재림한 것마냥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명확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사실상 분단상태의 나라로 만들어지고 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vs [[스르프스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산업기반은 농경시대 수준으로 파괴되었으며<ref>원래부터 보스니아 지역은 세르비아 지역 다음가는 곡창지대였긴 했지만.</ref>, 경제는 장기전으로 인해 하이퍼인플레이션<ref>[[짐바브웨 달러]], [[베네수엘라 볼리바르]]가 새로운 레전드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이곳의 통화인 [[유고슬라비아 디나르]]가 초인플레이션의 교과서였다.</ref>과 더불어 나락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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