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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 출전한 고종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멕시코전에 출전한 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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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는 지도자 커리어 최악의 흑역사를 쓸 위기에 놓인 인물'''
'''그러나 현재는 지도자 커리어 최악의 흑역사를 쓸 위기에 놓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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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클럽 경력''' ==
== '''2. 클럽 경력''' ==


=== 유소년 시절 ===
=== 유소년 시절'''''' ===


고종수는 현재까지도 선천적인 재능만을 따졌을 때 한국축구 사상 손에 꼽히는 축구천재였다. 유소년 시절때부터 또래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알려져있는데, 금호고 1학년이었던 1993년에는 시도대항 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금호고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2학년인 1994년에는 모교에게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트로피를 안겨주기도 하였다. 고교 시절부터 이미 또래애들로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잠재력을 뽐내고 있던 고종수였다.
고종수는 현재까지도 선천적인 재능만을 따졌을 때 한국축구 사상 손에 꼽히는 축구천재였다. 유소년 시절때부터 또래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알려져있는데, 금호고 1학년이었던 1993년에는 시도대항 축구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금호고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2학년인 1994년에는 모교에게 백록기 고교축구대회 트로피를 안겨주기도 하였다. 고교 시절부터 이미 또래애들로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잠재력을 뽐내고 있던 고종수였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
''''''
''''''
'''고종수 커리어 최전성기'''
'''고종수 커리어 최전성기'''
이렇게 고교 무대를 평정하고 있던 고종수는 수원삼성의 초대 감독 부임을 준비하던 [[김호|김호]]의 눈에 들었고, 결국 고교 졸업 이후 수원의 사상 첫 시즌인 1996시즌부터 팀에 합류하여 프로무대로 직행하게 된다. 지금은 축구선수가 대학 무대로 가지 않고 바로 프로 데뷔를 하는 것이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당시에는 고교 졸업 이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고종수는 96시즌 7월 4일 매북과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뤘고, 이 뒤에도 프로데뷔시즌을 맞이하는 신인치고 꽤나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11월 2일에는 데뷔전 상대였던 매북을 상대로 프로데뷔골을 터뜨렸는데, '''이 득점은 현재까지도 수원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만 18세 3일)으로 남아있다.''' 그의 1996 시즌 스탯은 14경기 1골 4도움이었고, 바로 다음 시즌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1997시즌에는 15경기 3골 5도움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고교 무대를 평정하고 있던 고종수는 수원삼성의 초대 감독 부임을 준비하던 [[김호|김호]]의 눈에 들었고, 결국 고교 졸업 이후 수원의 사상 첫 시즌인 1996시즌부터 팀에 합류하여 프로무대로 직행하게 된다. 지금은 축구선수가 대학 무대로 가지 않고 바로 프로 데뷔를 하는 것이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당시에는 고교 졸업 이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고종수는 96시즌 7월 4일 매북과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뤘고, 이 뒤에도 프로데뷔시즌을 맞이하는 신인치고 꽤나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11월 2일에는 데뷔전 상대였던 매북을 상대로 프로데뷔골을 터뜨렸는데, '''이 득점은 현재까지도 수원 역사상 최연소 득점 기록(만 18세 3일)으로 남아있다.''' 그의 1996 시즌 스탯은 14경기 1골 4도움이었고, 바로 다음 시즌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1997시즌에는 15경기 3골 5도움을 기록하였다.
2시즌동안 유망한 모습을 보여주던 고종수는 1998시즌부터 비로소 완성형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플레이메이커로써 그의 미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는 한 시즌동안 팀을 진두지휘하며 수원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인 덕분에 월드컵 이후로는 전국구 스타로 발돋음하였고 이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 펼쳐졌던 K리그 보기 운동으로 인해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5  소속이었던 안정환,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었던 매동국과 더불어 'K리그 트로이카'라 불리우며 리그 관중몰이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2시즌동안 유망한 모습을 보여주던 고종수는 1998시즌부터 비로소 완성형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플레이메이커로써 그의 미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는 한 시즌동안 팀을 진두지휘하며 수원의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인 덕분에 월드컵 이후로는 전국구 스타로 발돋음하였고 이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 펼쳐졌던 K리그 보기 운동으로 인해 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5  소속이었던 안정환,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 소속이었던 매동국과 더불어 'K리그 트로이카'라 불리우며 리그 관중몰이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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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가 출전하여 골을 기록했었던 98년 8월 16일 K리그 올스타전-
-고종수가 출전하여 골을 기록했었던 98년 8월 16일 K리그 올스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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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즌에도 경기에 나올 때마다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해당 시즌에 [[산드로|산드로]]가 합류하면서 기존에 팀에 있던 데니스와 함께 지금까지도 수원 올드팬들에게 회상되는 전설적인 [[고데로%20트리오|고데로 트리오]]를 형성되게 된다. 5월 17일에 열린 울산과의 경기에서는 고종수 혼자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3대1 역전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상과 시즌 중간에 시드니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팀에 차출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2000시즌에는 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근데 8경기에 나와서 4골 3도움을 기록한건 함정....
2000 시즌에도 경기에 나올 때마다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해당 시즌에 [[산드로|산드로]]가 합류하면서 기존에 팀에 있던 데니스와 함께 지금까지도 수원 올드팬들에게 회상되는 전설적인 [[고데로%20트리오|고데로 트리오]]를 형성되게 된다. 5월 17일에 열린 울산과의 경기에서는 고종수 혼자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팀의 3대1 역전승을 이끌기도 하였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상과 시즌 중간에 시드니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팀에 차출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2000시즌에는 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근데 8경기에 나와서 4골 3도움을 기록한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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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즌이 끝난 뒤에는 한일월드컵 홍보를 위해 개최된 한일올스타와 세계올스타6  간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여 파라과이의 전설적인 골키퍼 칠라베르트가 반응도 하지 못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칠라베르트도 경기 후에 고종수의 프리킥을 칭찬하였다. [http://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841#08fn 관련 기사]
2000 시즌이 끝난 뒤에는 한일월드컵 홍보를 위해 개최된 한일올스타와 세계올스타6  간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여 파라과이의 전설적인 골키퍼 칠라베르트가 반응도 하지 못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칠라베르트도 경기 후에 고종수의 프리킥을 칭찬하였다. [http://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841#08fn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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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직전 시즌에는 수원 경기에 거의 못나온 고종수였지만, 2001 시즌에는 시즌 초반부터 경기에 지속적으로 출전하여 여전히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특히 3월에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7 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AFC가 선정한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5월 2일 안양LG치타스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 팀의 1대0 승리에 일조하여 20-20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K리그 최연소 및 최소경기 출장으로 탄생한 20-20 클럽 가입으로 기록되어있다.
바로 직전 시즌에는 수원 경기에 거의 못나온 고종수였지만, 2001 시즌에는 시즌 초반부터 경기에 지속적으로 출전하여 여전히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특히 3월에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7 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AFC가 선정한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5월 2일 안양LG치타스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 팀의 1대0 승리에 일조하여 20-20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K리그 최연소 및 최소경기 출장으로 탄생한 20-20 클럽 가입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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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데로%20트리오|고데로 트리오]]가 모두 득점하여 팀의 3대2 역전승을 이끌었던 01시즌 7월 15일 부산전
[[고데로%20트리오|고데로 트리오]]가 모두 득점하여 팀의 3대2 역전승을 이끌었던 01시즌 7월 15일 부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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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는 긴 재활 끝에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인 2002 시즌 중반에야 수원에 복귀할 수 있었다. 9월 4일 매북과의 경기에서는 [[서정원|서정원]]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더니, 경기 종료 직전에는 57m짜리 장거리 골을 성공시켜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기도 하였다. 이 경기 덕분에 고종수는 30-30 클럽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K리그 사상 최단 경기 30-30클럽 가입(114경기)으로 기록되어있다. 또한 고종수의 이 장거리 골은 당시에 종전 K리그 최다길이 장거리골이었던 1999시즌 울산 김종건의 기록(54m)을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현재 이 골은 역대 K리그 장거리골 5위에 랭크되어 있다.10 
고종수는 긴 재활 끝에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인 2002 시즌 중반에야 수원에 복귀할 수 있었다. 9월 4일 매북과의 경기에서는 [[서정원|서정원]]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더니, 경기 종료 직전에는 57m짜리 장거리 골을 성공시켜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기도 하였다. 이 경기 덕분에 고종수는 30-30 클럽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K리그 사상 최단 경기 30-30클럽 가입(114경기)으로 기록되어있다. 또한 고종수의 이 장거리 골은 당시에 종전 K리그 최다길이 장거리골이었던 1999시즌 울산 김종건의 기록(54m)을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현재 이 골은 역대 K리그 장거리골 5위에 랭크되어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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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기록을 세운 것과는 별개로 고종수의 폼은 부상 직전에 비해 확실히 떨어져있었다. 아무래도 1년이나 경기를 못 뛰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02시즌 중반에 복귀하여 20경기 4골 3도움이라는 스탯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선발이 아닌 교체출전이었고 무엇보다도 경기력이 부상 전의 그 고종수보다 확연히 떨어진 모습이었다. 02시즌 이후 수원과의 계약이 만료된 고종수는 이미 수원에서 주전에 밀린 상황이었으니 새로운 팀을 모색하였고, 때마침 J2리그 소속의 교토 퍼플 상가가 고종수에게 입단을 제안하게 된다. 하지만 수원 측이 FA 선수의 이적에도 이적료가 발생한다는 국내 룰을 근거로 하여 이적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고종수는 이에 반발하여 구단과 합의없이 교토 퍼플 상가의 훈련 캠프에 합류해버리는 등 수원과 고종수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해버린다. 결국 수원 측과 고종수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보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고, 이렇게 고종수는 커리어 처음으로 수원과 K리그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록을 세운 것과는 별개로 고종수의 폼은 부상 직전에 비해 확실히 떨어져있었다. 아무래도 1년이나 경기를 못 뛰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02시즌 중반에 복귀하여 20경기 4골 3도움이라는 스탯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선발이 아닌 교체출전이었고 무엇보다도 경기력이 부상 전의 그 고종수보다 확연히 떨어진 모습이었다. 02시즌 이후 수원과의 계약이 만료된 고종수는 이미 수원에서 주전에 밀린 상황이었으니 새로운 팀을 모색하였고, 때마침 J2리그 소속의 교토 퍼플 상가가 고종수에게 입단을 제안하게 된다. 하지만 수원 측이 FA 선수의 이적에도 이적료가 발생한다는 국내 룰을 근거로 하여 이적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고종수는 이에 반발하여 구단과 합의없이 교토 퍼플 상가의 훈련 캠프에 합류해버리는 등 수원과 고종수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해버린다. 결국 수원 측과 고종수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보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고, 이렇게 고종수는 커리어 처음으로 수원과 K리그를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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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종수는 2005시즌 시작 전 조병국과 함께 당시 전남 소속이었던 김남일과 트레이드되어 창단때부터 함께해온 수원과 씁쓸한 이별을 하게된다. 북패 이적 소동과 직전 시즌 보였던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트레이드에 대한 수원 올드팬들의 반발이 꽤나 심했던 것을 보면 고종수가 수원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 시기 수원 삼성 1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역대 베스트일레븐 팬투표에도 당당히 선정되었던 고종수였다. 수원에서의 총 스탯은 130경기 33골 32도움.
결국 고종수는 2005시즌 시작 전 조병국과 함께 당시 전남 소속이었던 김남일과 트레이드되어 창단때부터 함께해온 수원과 씁쓸한 이별을 하게된다. 북패 이적 소동과 직전 시즌 보였던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트레이드에 대한 수원 올드팬들의 반발이 꽤나 심했던 것을 보면 고종수가 수원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 시기 수원 삼성 1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역대 베스트일레븐 팬투표에도 당당히 선정되었던 고종수였다. 수원에서의 총 스탯은 130경기 33골 32도움.
2015년 수원 삼성 20주년을 기념하여 팬들이 뽑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이와 동시에 발표된 구단 선정 공식 레전드로도 뽑히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인정받게된다.
2015년 수원 삼성 20주년을 기념하여 팬들이 뽑은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이와 동시에 발표된 구단 선정 공식 레전드로도 뽑히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인정받게된다.


=== 전남 드래곤즈 시절 &amp; 대전 시티즌 시절 ===
=== 전남 드래곤즈 시절 &amp; 대전 시티즌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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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은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해인데, 당시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고종수를21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로 발탁할지에 대해서 찬반여론이 팽팽히 맞서기도 하였다. 결국 허정무는 고종수를 발탁하였고, 이렇게 그는 그해 9월에 열렸던 시드니 올림픽의 남자 축구 대표팀으로 나서며 조별예선경기 세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은 2승 1패라는 조별예선 성적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에 밀려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고종수 또한 올림픽 직후 10월에 열렸던 아시안컵에는 결국 부상으로 인해 엔트리에서 탈락하게 된다.
2000년은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해인데, 당시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고종수를21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로 발탁할지에 대해서 찬반여론이 팽팽히 맞서기도 하였다. 결국 허정무는 고종수를 발탁하였고, 이렇게 그는 그해 9월에 열렸던 시드니 올림픽의 남자 축구 대표팀으로 나서며 조별예선경기 세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은 2승 1패라는 조별예선 성적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에 밀려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고종수 또한 올림픽 직후 10월에 열렸던 아시안컵에는 결국 부상으로 인해 엔트리에서 탈락하게 된다.
아시안컵 우승 실패의 책임을 지고 허정무가 사퇴하고, 그 뒤 2001년 히딩크가 국대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히딩크 부임 이후 고종수는 그의 중용을 받으며 자신이 출전했던 1월 24일 노르웨이전과 27일 파라과이전, 그리고 2월 11일 UAE전에서 세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히딩크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게된다. 특히 파라과이전 동점골은 AFC 이달의 골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근데 정작 이 세경기 중 파라과이전만 영상 못찾겠는건 함정....
아시안컵 우승 실패의 책임을 지고 허정무가 사퇴하고, 그 뒤 2001년 히딩크가 국대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히딩크 부임 이후 고종수는 그의 중용을 받으며 자신이 출전했던 1월 24일 노르웨이전과 27일 파라과이전, 그리고 2월 11일 UAE전에서 세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히딩크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게된다. 특히 파라과이전 동점골은 AFC 이달의 골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근데 정작 이 세경기 중 파라과이전만 영상 못찾겠는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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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4일 노르웨이전에서의 고종수 활약상.22 
1월 24일 노르웨이전에서의 고종수 활약상.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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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UAE전 골모음 영상. 23 
2월 11일 UAE전 골모음 영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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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뒤 벌어졌던 난투극에도 참전하여 알사드 선수 한명을 흠씬 두둘겨 패주었다.... 물론 폭력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24  수원팬들은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종수는 이로 인해 아챔 6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 뒤 벌어졌던 난투극에도 참전하여 알사드 선수 한명을 흠씬 두둘겨 패주었다.... 물론 폭력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24  수원팬들은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종수는 이로 인해 아챔 6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013 시즌 [[서정원|서정원]] 체재로 바뀐 이후에는 1군 코치로 정식 임명되었고, 2015시즌에는 [[염기훈|염기훈]]에게 킥 특훈을 가르쳐 염기훈의 킥이 더욱 정교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2017 시즌부터는 스카우터와 R리그팀을 동시에 전담하기도 하였다. 17시즌이 끝난 뒤에는 새로 영입할 브라질 선수를 찾기 위해 브라질로 출장을 떠났었는데....
2013 시즌 [[서정원|서정원]] 체재로 바뀐 이후에는 1군 코치로 정식 임명되었고, 2015시즌에는 [[염기훈|염기훈]]에게 킥 특훈을 가르쳐 염기훈의 킥이 더욱 정교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2017 시즌부터는 스카우터와 R리그팀을 동시에 전담하기도 하였다. 17시즌이 끝난 뒤에는 새로 영입할 브라질 선수를 찾기 위해 브라질로 출장을 떠났었는데....
===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
===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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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컵: 3라운드에서 성남에게 탈락 (0대1)
• FA컵: 3라운드에서 성남에게 탈락 (0대1)


어찌되었던 나쁘지는 않은 성적으로 자신의 감독 커리어 첫시즌을 마친 고종수였으나, 2019시즌을 준비하는 프리시즌 기간인 1월부터 신인선수 공개테스트 불법행위에 연류되면서 그의 감독 커리어가 점차 삐걱거리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29  더군다나 대전 코치진들이 리그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자격증인 1급 이상의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해당 시즌에는 대전의 벤치에 고종수와 외국인 피지컬코치 둘만 있는 촌극을 빚기도....30  이렇게 시즌 시작 전부터 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경기력도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는데, 특히 3월 27일날 열린 단국대와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는 대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고종수는 뻔한 전술과 사실상 없다시피하는 전술적 유연성, 그리고 매경기마다 거의 똑같다 봐도 무방한 선수교체만 보이며 감독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에 열린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는 0대5로 대패하며 대전팬들의 맹비난을 받기도. 당시 대전이 개막 이후 리그 12경기에서 단 9골을 득점하는 극악의 빈공을 선보인 K리그2 최소 득점팀이었다는 사실은 이 팀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고종수는 성적 부진과 밑에서 후술할 사건의 여파로 인해 5월 21일 대전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감독으로서도 대전과는 영 좋지 못한 이별을 하고 말았던 고종수였다.
어찌되었던 나쁘지는 않은 성적으로 자신의 감독 커리어 첫시즌을 마친 고종수였으나, 2019시즌을 준비하는 프리시즌 기간인 1월부터 신인선수 공개테스트 불법행위에 연류되면서 그의 감독 커리어가 점차 삐걱거리게 된다(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29  더군다나 대전 코치진들이 리그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자격증인 1급 이상의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해당 시즌에는 대전의 벤치에 고종수와 외국인 피지컬코치 둘만 있는 촌극을 빚기도....30  이렇게 시즌 시작 전부터 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경기력도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는데, 특히 3월 27일날 열린 단국대와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는 대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고종수는 뻔한 전술과 사실상 없다시피하는 전술적 유연성, 그리고 매경기마다 거의 똑같다 봐도 무방한 선수교체만 보이며 감독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에 열린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는 0대5로 대패하며 대전팬들의 맹비난을 받기도. 당시 대전이 개막 이후 리그 12경기에서 단 9골을 득점하는 극악의 빈공을 선보인 K리그2 최소 득점팀이었다는 사실은 이 팀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고종수는 성적 부진과 밑에서 후술할 사건의 여파로 인해 5월 21일 대전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감독으로서도 대전과는 영 좋지 못한 이별을 하고 말았던 고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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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영상 ==
== 플레이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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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스타로서 고종수의 위상, 그리고 언론과의 트러블 ==
== 스포츠 스타로서 고종수의 위상, 그리고 언론과의 트러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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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트로이카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기사
당시 트로이카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기사
십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예잡지에서도 취재를 할 정도로 고종수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십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예잡지에서도 취재를 할 정도로 고종수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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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가수 홍경민의 98년도 곡인 '내 남은 사랑을 위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홍경민을 띄우기 위해 소속사 측에서 뮤비에 축구스타를 출연시키길 원했었고, 이에 따라 고종수가 섭외되면서 뮤비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고종수가 나온 이 뮤비 덕분에 홍경민의 인지도도 올라가게 되었다. 아래 뮤비를 보면 알겠지만 고종수가 특정 배역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고종수 본인 역으로 나왔으니 당시 그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참고로 상대 여배우는 당시엔 무명신인이었던 김정은이다.
또한 가수 홍경민의 98년도 곡인 '내 남은 사랑을 위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홍경민을 띄우기 위해 소속사 측에서 뮤비에 축구스타를 출연시키길 원했었고, 이에 따라 고종수가 섭외되면서 뮤비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고종수가 나온 이 뮤비 덕분에 홍경민의 인지도도 올라가게 되었다. 아래 뮤비를 보면 알겠지만 고종수가 특정 배역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고종수 본인 역으로 나왔으니 당시 그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참고로 상대 여배우는 당시엔 무명신인이었던 김정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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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말, 당시 인기리에 방영했던 MBC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특별출연하기도 하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소지섭의 친구로 출연하여 신동엽의 여친에게 반해 여친을 뺏으려는 역할이었는데, 고종수 특유의 어눌한 발음과 해맑은 표정을 볼 수 있다. 물론 90년대 특유의 감성은 각오하고 봐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wXXZtI04wQ&list=PL-zVZs0YOCiHBgfZOs4sTzhv4e0h2JuuY&index=1 해당 회차]
같은해 말, 당시 인기리에 방영했던 MBC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특별출연하기도 하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소지섭의 친구로 출연하여 신동엽의 여친에게 반해 여친을 뺏으려는 역할이었는데, 고종수 특유의 어눌한 발음과 해맑은 표정을 볼 수 있다. 물론 90년대 특유의 감성은 각오하고 봐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wXXZtI04wQ&list=PL-zVZs0YOCiHBgfZOs4sTzhv4e0h2JuuY&index=1 해당 회차]
2000년에는 11월에 발매되었던 축구 비디오게임 '피파 2001'의 한국 정발판 표지 모델로 나서기도 하였다.34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들만 할 수 있는 축구게임 모델이었으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2000년에는 11월에 발매되었던 축구 비디오게임 '피파 2001'의 한국 정발판 표지 모델로 나서기도 하였다.34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들만 할 수 있는 축구게임 모델이었으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하지만 고종수는 특유의 말투와 숨기는 것 없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걸 가감없이 말하는 스타일로 인해 현역 시절 내내 언론의 타겟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그의 성향이 당시 젊은층에게 많이 어필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기레기들의 수준은 요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기 때문에 고종수는 이 인간들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리니지 폐인 루머. 이 사건의 발단은 여가시간에 주로 뭘 하냐는 한 기레기의 질문에 고종수가 스타크래프트1과 리니지를 한다고 말한 것을 기레기가 고종수는 리니지에 중독되었다고 부풀려서 기사를 썼고, 이것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고종수가 수원 구단에게 연봉을 리니지 내 게임머니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는 지경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완벽한 헛소리였다.
하지만 고종수는 특유의 말투와 숨기는 것 없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걸 가감없이 말하는 스타일로 인해 현역 시절 내내 언론의 타겟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그의 성향이 당시 젊은층에게 많이 어필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기레기들의 수준은 요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기 때문에 고종수는 이 인간들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리니지 폐인 루머. 이 사건의 발단은 여가시간에 주로 뭘 하냐는 한 기레기의 질문에 고종수가 스타크래프트1과 리니지를 한다고 말한 것을 기레기가 고종수는 리니지에 중독되었다고 부풀려서 기사를 썼고, 이것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고종수가 수원 구단에게 연봉을 리니지 내 게임머니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는 지경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완벽한 헛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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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외에도 기레기와 유명세 때문에 고종수가 겪었던 고충은 다음 기사에서 읽어볼 수 있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7619 해당 기사]
이것 외에도 기레기와 유명세 때문에 고종수가 겪었던 고충은 다음 기사에서 읽어볼 수 있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7619 해당 기사]
2003년에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사하던 가수 조성모와 술자리에서 싸움이 붙을 뻔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에 의하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은 조성모였고, 고종수는 일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는데 당시에 욕은 오히려 고종수가 더 많이 먹었었다.... 이미 그동안의 악성 기사들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아진 고종수였고, 거기다가 이 기사가 나왔던 2003년은 고종수가 J리그에서 실패한 뒤 수원과 한참 이적분쟁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고종수가 억울하게 욕을 더 먹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훗날 본인이 해명하기를 당시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 때문에 조성모와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주먹으로 살짝 툭툭 치는 등 남자들끼리 흔히 하는 장난끼 있는 액션을 했던 것 뿐인데, 다음날 기사가 그따구로 나왔던거라고 밝혔다.... 이 역시 기레기들의 소행이었던 것.
2003년에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사하던 가수 조성모와 술자리에서 싸움이 붙을 뻔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에 의하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것은 조성모였고, 고종수는 일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는데 당시에 욕은 오히려 고종수가 더 많이 먹었었다.... 이미 그동안의 악성 기사들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아진 고종수였고, 거기다가 이 기사가 나왔던 2003년은 고종수가 J리그에서 실패한 뒤 수원과 한참 이적분쟁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고종수가 억울하게 욕을 더 먹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훗날 본인이 해명하기를 당시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 때문에 조성모와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주먹으로 살짝 툭툭 치는 등 남자들끼리 흔히 하는 장난끼 있는 액션을 했던 것 뿐인데, 다음날 기사가 그따구로 나왔던거라고 밝혔다.... 이 역시 기레기들의 소행이었던 것.
물론 고종수가 현역 시절 아예 사고를 안 쳤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서술했다시피 한때 부상 재활을 게을리하고 훈련에도 불성실하게 임했던 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04시즌 수원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유명세 때문에 주변에 연예인이나 그의 유명세를 보고 들러붙었던 사람들이 많아서 축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었다고 고종수 본인이 훗날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레기들이 그에 대해 어이없는 악성 기사를 지속해서 써왔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쌓여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맘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여겨지는 바이다. '''고종수의 짧은 전성기에 대해서 당시 기레기들도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고종수가 현역 시절 아예 사고를 안 쳤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도 서술했다시피 한때 부상 재활을 게을리하고 훈련에도 불성실하게 임했던 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04시즌 수원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유명세 때문에 주변에 연예인이나 그의 유명세를 보고 들러붙었던 사람들이 많아서 축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었다고 고종수 본인이 훗날 직접 밝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레기들이 그에 대해 어이없는 악성 기사를 지속해서 써왔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쌓여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맘을 다잡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여겨지는 바이다. '''고종수의 짧은 전성기에 대해서 당시 기레기들도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


== 이야깃거리 ==
== 이야깃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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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시절, 유명인의 첫사랑이나 은사, 동창 등등을 찾아주는 KBS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고종수의 초등학생 시절 첫사랑 사연을 볼 수 있다. 90년대 특유의 연출은 각오하고 보시길...
• 현역 시절, 유명인의 첫사랑이나 은사, 동창 등등을 찾아주는 KBS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고종수의 초등학생 시절 첫사랑 사연을 볼 수 있다. 90년대 특유의 연출은 각오하고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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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수원 트레이너 재직 당시 [[염기훈|염기훈]]과 프리킥 내기를 하여 이겨버리는 위엄을 보인 적이 있다. 고종수는 수원 코치진 시절에 이 외에도 선수들을 자극시키기 위해 종종 프리킥 내기를 제안했고, 대부분을 이겼다고 한다....
• 2011년 수원 트레이너 재직 당시 [[염기훈|염기훈]]과 프리킥 내기를 하여 이겨버리는 위엄을 보인 적이 있다. 고종수는 수원 코치진 시절에 이 외에도 선수들을 자극시키기 위해 종종 프리킥 내기를 제안했고, 대부분을 이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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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2018년에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서 슛포러브에 출연하여 자신의 제자인 황인범과 프리킥 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다. 근데 사실 이 대결은 고종수 몰래카메라였는데, 고종수가 차는 공만 진짜 선수들이 차는 공이고 황인범이 차는 공은 무회전과 낙차가 더 걸린다는 헬륨공이었던 것.35  하지만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종수는 현역인 황인범을 이겨버리는 위엄을 보인 바 있다....
위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2018년에는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서 슛포러브에 출연하여 자신의 제자인 황인범과 프리킥 대결을 펼치기도 하였다. 근데 사실 이 대결은 고종수 몰래카메라였는데, 고종수가 차는 공만 진짜 선수들이 차는 공이고 황인범이 차는 공은 무회전과 낙차가 더 걸린다는 헬륨공이었던 것.35  하지만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종수는 현역인 황인범을 이겨버리는 위엄을 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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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당시 수원 서포터즈였던 '그랑블루'의 응원음반 3집에 참여하여 '수원의 레전드가 되는 법'이라는 노래를 녹음했었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지는 않는다.
• 2012년 당시 수원 서포터즈였던 '그랑블루'의 응원음반 3집에 참여하여 '수원의 레전드가 되는 법'이라는 노래를 녹음했었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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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수원 스카우터 재직 당시 수원삼성 팬즈데이때 한 어린 팬에게 '오다 주웠다'를 시전하는 츤츤함을 보이기도 했었다... [http://bluewings.me/index.php?mid=board&document_srl=705290 글 링크]
• 2017년 수원 스카우터 재직 당시 수원삼성 팬즈데이때 한 어린 팬에게 '오다 주웠다'를 시전하는 츤츤함을 보이기도 했었다... [http://bluewings.me/index.php?mid=board&document_srl=705290 글 링크]
• 고종수와 같이 K리그 트로이카였던 안정환과 이동국이 20대에 결혼한 것에 반해 고종수는 늦게까지 싱글이었으나, 2018년 11월 24일 드디어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 결혼에 대해 대전 팬들 사이에서는 말이 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결혼날로부터 4일 뒤인 28일에 대전의 K리그1 승격 플레이오프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전 선수들은 통영에서 전지훈련을 했는데 고종수의 결혼식은 서울에서 열리니 경기 준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냐는 것이 당시 대전 팬들의 의견. [http://www.daejeon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7930 관련 기사] 하지만 고종수 입장에서 보자면 결혼 날짜를 오래 전부터 잡아놓은 상황이라 뒤로 미루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결혼식이 끝난 직후에 바로 팀으로 복귀했고 신혼여행도 뒤로 미뤘다고. 새신부도 이를 이해하고 응원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161371 관련 기사]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전은 해당 경기를 이기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36 
• 고종수와 같이 K리그 트로이카였던 안정환과 이동국이 20대에 결혼한 것에 반해 고종수는 늦게까지 싱글이었으나, 2018년 11월 24일 드디어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 결혼에 대해 대전 팬들 사이에서는 말이 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결혼날로부터 4일 뒤인 28일에 대전의 K리그1 승격 플레이오프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전 선수들은 통영에서 전지훈련을 했는데 고종수의 결혼식은 서울에서 열리니 경기 준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냐는 것이 당시 대전 팬들의 의견. [http://www.daejeon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7930 관련 기사] 하지만 고종수 입장에서 보자면 결혼 날짜를 오래 전부터 잡아놓은 상황이라 뒤로 미루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결혼식이 끝난 직후에 바로 팀으로 복귀했고 신혼여행도 뒤로 미뤘다고. 새신부도 이를 이해하고 응원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161371 관련 기사]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전은 해당 경기를 이기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36 


[[분류:위키독 포크]]
[[분류:위키독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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