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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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년 1월 5일~2016년 2월 19일))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소설가]], [[비평저술가]].
Umberto Eco
 
 
== 소개 ==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미학자]], [[소설가]], [[비평저술가]].


== 생애 ==
1932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이 그 세력을 펼쳐가던 시기, 그 중심지 중 하나였던 북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가정은 독실한 [[가톨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코 자신도 어린 시절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의 청소년기는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이는 자신의 에세이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문장 실력이 뛰어났기에 아버지는 변호사가 되길 기대했으나, 에코 자신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토리노]] 대학에서 중세 철학 및 문학을 전공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으로 1954년 철학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 에코는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무신론자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토리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기호학자로서 자신의 명성을 알리기 시작하였다.1962년 결혼하여 이후 1남 1녀를 두었다.
1932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이 그 세력을 펼쳐가던 시기, 그 중심지 중 하나였던 북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가정은 독실한 [[가톨릭]]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코 자신도 어린 시절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의 청소년기는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이는 자신의 에세이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문장 실력이 뛰어났기에 아버지는 변호사가 되길 기대했으나, 에코 자신은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토리노]] 대학에서 중세 철학 및 문학을 전공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으로 1954년 철학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 에코는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무신론자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토리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기호학자로서 자신의 명성을 알리기 시작하였다.1962년 결혼하여 이후 1남 1녀를 두었다.


그는 기호학자로서 자신의 스승인 루이지 파레이손의 이론을 이어 해석 기호학(Interpretative semiotics)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50대에 들어선 1980년에 첫 작품 <장미의 이름>을 출판하면서 소설가로서도 데뷔하였다. 이 소설은 그의 주된 관심 분야인 중세 철학, 종교 역사, 해석 기호학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여기에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녹여내 만든 것이다. 이 책은 그에게 소설가로서도 큰 명성을 주었다. 이후 그는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의 소설을 연달아 출판하였다.
그는 기호학자로서 자신의 스승인 루이지 파레이손의 이론을 이어 해석 기호학(Interpretative semiotics)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50대에 들어선 1980년에 첫 작품 <장미의 이름>을 출판하면서 소설가로서도 데뷔하였다. 이 소설은 그의 주된 관심 분야인 중세 철학, 종교 역사, 기호 해석학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여기에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녹여내 만든 것이다. 이 책은 그에게 소설가로서도 큰 명성을 주었다. 이후 그는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의 소설을 연달아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와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력 일간지 <레스프레소>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이 칼럼은 이후 에세이집으로 여러차례 출간되기도 했다. 2008년 볼로냐 대학 석좌교수로 취임하여 강의와 집필 활동을 이어가면서 <중세> 시리즈의 총편집을 맡았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와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력 일간지 <레스프레소>에 칼럼을 연재하였으며, 이 칼럼은 이후 에세이집으로 여러차례 출간되기도 했다. 2008년 볼로냐 대학 석좌교수로 취임하여 강의와 집필 활동을 이어가면서 <중세> 시리즈의 총편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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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자로서의 에코 ==
== 학자로서의 에코 ==
에코는 [[철학]]과 [[미학]]의 연장선상에서 [[기호학]]을 전공하였으며, 특히 해석기호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의 스승이었던 루이지 파레이손의 이론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이다. 이 이론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다. 기호의 제작자는 그 자신이 의도한 만큼이나 의도하지 않은 기호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이다."라는 주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해석학의 시선 하에서 중세 미학과 철학의 여러 저작들을 연구하였다.
 
에코는 [[철학]]과 [[미학]]의 연장선상에서 [[기호학]]을 전공하였으며, 특히 해석기호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의 스승이었던 루이지 파레이손의 이론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이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다. 기호의 제작자는 그 자신이 의도한 만큼이나 의도하지 않은 기호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이다."라는 주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해석학의 시선 하에서 중세 미학과 철학의 여러 저작들을 연구하였다.


오늘날 철학의 주요 사조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창한 철저한 도그마의 배제를 새로운 도그마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의심하였으며, 여러 에세이를 통해 이를 경고하였다.
오늘날 철학의 주요 사조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창한 철저한 도그마의 배제를 새로운 도그마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의심하였으며, 여러 에세이를 통해 이를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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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로서의 에코 ==
== 소설가로서의 에코 ==
에코는 1980년 <장미의 이름>으로 첫 소설을 발표했으며, 이후 <푸코의 진자> 등의 소설을 꾸준히 집필하였다. 이러한 소설들은 출판될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코의 소설들은 그 자신의 학문적 연구나 관심 분야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그냥 읽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서양 중세 문화가 생경한 한국 독자들에게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은 꼼꼼히 읽어보면 충분한 배경 지식을 건네주면서 진행되고, 또한 번역에 있어서도 각주 등으로 이러한 배경을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천천히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에코는 1980년 <장미의 이름>으로 첫 소설을 발표했으며, 이후 <푸코의 진자> 등의 소설을 꾸준히 집필하였다. 이러한 소설들은 출판될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코의 소설들은 그 자신의 학문적 연구나 관심 분야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그냥 읽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서양 중세 문화가 생경한 한국 독자들에게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들은 꼼꼼히 읽어보면 충분한 배경 지식을 건네주면서 진행되고, 또한 번역에 있어서도 각주 등으로 이러한 배경을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천천히 읽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소설들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뉠 수 있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과 같은 전기 작품들은 기호학과 해석에 대한 에코 본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는 해석이란 작가의 의도를 알아맞추는 정답 맞추기가 아니며, 창조된 작품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것이고, 이를 유추하는 독자의 해석은 언제나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부분까지 기호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사는 엉뚱한 해석을 하지만 우연히 진실에 도달하게 되며 해석의 한계를 절감한다. <푸코의 진자>에서는 전혀 다른 정보를 확대 해석하고, 여기에 자신들의 지식 체계나 추측을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벌어질 수 있는 해석의 최대 오용, 즉 [[음모론]]을 경계하였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음모론]] 역시 해석의 일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부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과 같은 전기 작품들은 기호학과 해석에 대한 에코 본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는 해석은 작가의 의도를 알아맞추는 정답 맞추기가 아니며, 창조된 작품은 이미작가의 손을 떠났고, 이를 유추하는 독자의 해석은 언제나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부분까지 기호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사는 엉뚱한 해석을 하지만 우연히 진실에 도달하게 되며 해석의 한계를 절감한다. <푸코의 진자>에서는 전혀 다른 정보를 확대 해석하고, 여기에 자신들의 지식 체계나 추측을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벌어질 수 있는 해석의 최대 오용, 즉 [[음모론]]을 경계하였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음모론]] 역시 해석의 일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부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바우돌리노>를 분기점으로 시작되는 후기 작품들에서는 에코 개인의 자서전적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우돌리노>의 경우 그의 고향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바탕으로 구성하였으며,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의 경우 그 자신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프라하의 유령>은 전후 시기의 특징이 모두 녹아나는 작품이라 하겠다.
<바우돌리노>를 분기점으로 시작되는 후기 작품들에서는 에코 개인의 자서전적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우돌리노>의 경우 그의 고향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바탕으로 구성하였으며,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의 경우 그 자신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프라하의 유령>은 전후 시기의 특징이 모두 녹아나는 작품이라 하겠다.


== 에세이 작가, 평론가, 사회활동가로서의 에코 ==
== 에세이 작가, 평론가, 사회활동가로서의 에코 ==
한편 그는 꾸준히 칼럼과 에세이를 발표했는데, 이는 주로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레스프레소>의 칼럼란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칼럼들은 이후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으며, 개중 유명한 것들을 따로 모아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후 한국 출판평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등으로 선집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그는 꾸준히 칼럼과 에세이를 발표했는데, 이는 주로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레스프레소>의 칼럼란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칼럼들은 이후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으며, 개중 유명한 것들을 따로 모아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이후 한국 출판평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등으로 선집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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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이 12살 때 [[베니토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글을 써서 수상했다는, 어찌 보면 부끄럽게 여겨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며, 유사 파시즘(Ur-Fascism)의 특징을 열거하기도 했다. 이는 맹종을 경계하고 지적 정직성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12살 때 [[베니토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글을 써서 수상했다는, 어찌 보면 부끄럽게 여겨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며, 유사 파시즘(Ur-Fascism)의 특징을 열거하기도 했다. 이는 맹종을 경계하고 지적 정직성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기존 인류학이 서양의 시각에 경도되어 있음을 지적하였으며,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 발언에 대해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시스트"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그는 본래 상호 존중을 위해 시작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또하나의 [[교조주의]]가 되어가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도그마란 허상이다"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기존 인류학이 서양의 시각에 경도되어 있음을 지적하였으며,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 발언에 대해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시스트"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그는 본래 상호 존중을 위해 시작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또하나의 [[교조주의]]가 되어가는 것을 경계하였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도그마란 허상이다"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에코는 현재 쓰이지 않는 언어인 교회 라틴어를 포함하여 영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그리스어, 심지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의 주 관심분야인 중세, 철학, 미학, 기호학을 넘어 컴퓨터 등의 현대 기술이나 가상 현실 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년에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하이퍼텍스트]]가 문학의 맥락에 영향을 줄 가능성, 상호 참조되는 [[메타텍스트]]가 확대되는 현상 등이다. 오늘날 [[위키]]라는, [[하이퍼텍스트]]와 [[메타텍스트]]의 모든 장단점이 모여 있는 미디어의 발달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 지 이제 들을 수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에코는 현재 쓰이지 않는 언어인 교회 라틴어를 포함하여 영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그리스어, 심지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의 주 관심분야인 중세, 철학, 미학, 기호학을 넘어 컴퓨터 등의 현대 기술이나 가상 현실 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말년에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하이퍼텍스트]]가 문학의 맥락에 영향을 줄 가능성, 상호 참조되는 [[메타텍스트]]가 확대되는 현상 등이다. 오늘날 [[위키위키]]라는, [[하이퍼텍스트]]와 [[메타텍스트]]의 모든 장단점이 모여 있는 미디어의 발달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 지 이제 들을 수 없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 한국에서의 에코 ==
== 한국에서의 에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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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과거 출판명 <미네르바 성냥갑>)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과거 출판명 <미네르바 성냥갑>)
*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과거 출판명 <미네르바 성냥갑>)
*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과거 출판명 <미네르바 성냥갑>)
*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과거 출판명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
*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과거 출판명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
* <가재걸음>  
* <가재걸음>  
* <무엇을 믿을 것인가>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 서간 대담집)
* <무엇을 믿을 것인가>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 서간 대담집)
* <책의 우주> (장 클로드 카리에르 대담집)
* <책의 우주> (장 클로드 카리에르 대담집)
* <적을 만들다>


== 여담 ==
== 여담 ==
애연가, 애주가로 유명했다. 84세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연가, 애주가로 유명했다. 84세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분류:이탈리아의 학자]]
[[분류:이탈리아의 작가]]
[[분류:이탈리아의 소설가]]
[[분류:수필가]]
[[분류:역사학자]]
[[분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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