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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권력을 놓고 형제들간의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진 사건으로 파급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커다란 이권이나 권력을 놓고 형제들이 크게 다투는 상황을 빗대어 왕자의 난이라 칭하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 제계순위 1위였던 [[현대그룹]]이 [[정주영]]의 후계구도를 놓고 정몽구와 정몽헌 등 형제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암투를 벌인 사건을 당시 언론들이 왕자의 난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대중들에게 깊숙히 각인되는 단어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특히 정몽구와 정몽헌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고 정주영이 정몽헌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이에 불복한 정몽구는 [[현대자동차]]와 계열사를 아예 현대그룹에서 분리시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자신만의 노선을 걸으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였다. 정몽구와 정몽헌 외에도 일가 친지들이 각자 이권을 행사하여 계열분리가 이뤄졌고, 이 사건으로 인해 현대그룹은 재계서열 부동의 1위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 * 절대 권력을 놓고 형제들간의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진 사건으로 파급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커다란 이권이나 권력을 놓고 형제들이 크게 다투는 상황을 빗대어 왕자의 난이라 칭하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 제계순위 1위였던 [[현대그룹]]이 [[정주영]]의 후계구도를 놓고 정몽구와 정몽헌 등 형제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암투를 벌인 사건을 당시 언론들이 왕자의 난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대중들에게 깊숙히 각인되는 단어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특히 정몽구와 정몽헌의 대립이 극에 달하였고 정주영이 정몽헌의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을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이에 불복한 정몽구는 [[현대자동차]]와 계열사를 아예 현대그룹에서 분리시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자신만의 노선을 걸으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였다. 정몽구와 정몽헌 외에도 일가 친지들이 각자 이권을 행사하여 계열분리가 이뤄졌고, 이 사건으로 인해 현대그룹은 재계서열 부동의 1위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 ||
* 제1차 왕자의 난이 발발하자 이에 격분한 태조는 도성을 떠나 멀리 함흥에서 칩거하게 되었고, 왕위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정종과 태종은 끈질기게 태조의 환궁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어려움들이 모여 '''[[함흥차사]]'''라는 고사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 * 제1차 왕자의 난이 발발하자 이에 격분한 태조는 도성을 떠나 멀리 함흥에서 칩거하게 되었고, 왕위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정종과 태종은 끈질기게 태조의 환궁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어려움들이 모여 '''[[함흥차사]]'''라는 고사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