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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방사선조사실을 출입하던 연구생이 안전장치 고장으로 노출된 방사선원에 피폭되어 원자력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피폭 휴유증으로 3주 지나 사망했다. 사고 발표는 12년이 지난 1988년에 이루어졌고, 서면 자료는 그 전에 모두 파기되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284442 76년 방사능 사망사고 은폐], 중앙일보, 1998.10.27.</ref>.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사고로 자료가 남아있었을 경우 [[INES]] 4등급에 준할 것으로 추정된다. | *: 1976년, 방사선조사실을 출입하던 연구생이 안전장치 고장으로 노출된 방사선원에 피폭되어 원자력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피폭 휴유증으로 3주 지나 사망했다. 사고 발표는 12년이 지난 1988년에 이루어졌고, 서면 자료는 그 전에 모두 파기되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284442 76년 방사능 사망사고 은폐], 중앙일보, 1998.10.27.</ref>. 대한민국 최초의 원자력 사고로 자료가 남아있었을 경우 [[INES]] 4등급에 준할 것으로 추정된다. | ||
* 플루토늄 농축 | * 플루토늄 농축 | ||
*: 2호기는 IAEA의 사찰대상이 된바 있는 데, 핵무기의 주원료인 [[플루토늄]]을 분리·농축한 경위를 추궁받았다. 실험 흔적이 1997년 폐로작업 중 IAEA에서 환경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나 폐로 이후라 장비도 폐기되고 실험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부는 자료 미비로 제대로 된 답변을 못 하였으며, | *: 2호기는 IAEA의 사찰대상이 된바 있는 데, 핵무기의 주원료인 [[플루토늄]]을 분리·농축한 경위를 추궁받았다. 실험 흔적이 1997년 폐로작업 중 IAEA에서 환경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나 폐로 이후라 장비도 폐기되고 실험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부는 자료 미비로 제대로 된 답변을 못 하였으며, 2004년에 다른 건으로 추궁당할 때도 1982년 중반에 실험을 했고 극미량일 것이라고 추정만 하여 보고했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4/09/003000000200409091733084.html 플루토늄 실험경위 살펴보니], 한겨레, 2004.09.0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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