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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聖心)은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을 지칭한다. ‘예수성심’은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의 강생과 [[성체성사]], 수난과 죽음으로 드러난 예수의 사랑의 마음을 가리킨다. ‘성모성심’은 [[하느님]]의 충실한 여종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 이바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일컫는다.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톨릭]]대사전 참조) [[라틴어]]로는 Cor Sanctissimum, [[영어]]로는 Sacred Heart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세이신’이라고 읽는다. | 성심(聖心)은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을 지칭한다. ‘예수성심’은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의 강생과 [[성체성사]], 수난과 죽음으로 드러난 예수의 사랑의 마음을 가리킨다. ‘성모성심’은 [[하느님]]의 충실한 여종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에 이바지한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일컫는다.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톨릭]]대사전 참조) [[라틴어]]로는 Cor Sanctissimum, [[영어]]로는 Sacred Heart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세이신’이라고 읽는다. | ||
== 창설자 성녀 마들렌 | == 창설자 성녀 마들렌 소피아 바라 == | ||
{{인용문|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가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성녀 마들렌 | {{인용문|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가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성녀 마들렌 소피아 바라(축일 [[5월 25일]])}} | ||
마들렌 | 마들렌 소피아 바라는 [[1779년]] [[12월 12일]],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시골의 소시민이었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만 했고,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 ||
소피아 바라는 10살 무렵부터 11살 위의 오빠 루이 바라로부터 엄격하면서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역사]], [[수학]], [[물리학]], [[성경]], [[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등을 두루 학습했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첫 [[영성체]]도 했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소피이 바라는, [[하느님]]께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
소피아 바라가 10대 초반이던 1789~1793년, [[프랑스]]에서는 큰 일이 일어났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의 [[가톨릭]]교회는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교회의 재산을 몰수당했고, [[사제]]들은 [[교황청]]에 순명하는 대신 새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당했다. 이에 반발하는 사제, [[수도자]], 신자들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ㅈ|훗날 이들은 [[순교자]]로 인정되어 [[복자]]로 시복되었다.}} 루이 바라도 이때 처형당할 뻔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졌다. 1795년, 루이 바라는 사제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다. | |||
루이 바라 신부는 (새 정부의 눈을 피해) 조용히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으며, 여동생의 학업과 신앙을 지도하는 일도 계속했다. | 루이 바라 신부는 (새 정부의 눈을 피해) 조용히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으며, 여동생의 학업과 신앙을 지도하는 일도 계속했다. 소피아 바라는 지역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어려서부터 생각해 온 수도 성소(聖召){{ㅈ|[[하느님]]의 부르심. 넓은 의미에서의 성소란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모든 직업, 직분, 삶의 방식을 말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성소는 ‘[[사제]]나 [[수도자]]의 길로 부르시는 것’을 말한다.}}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봉쇄 수도생활을 생각했지만, 소피아 바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도직에 투신하기로 마음먹는다. 교육, 특히 여성교육에 힘쓰는 [[수도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 ||
[[1800년]] [[11월 21일]], | [[1800년]] [[11월 21일]], 소피아 바라는 3명의 동료와 함께 첫 서원{{ㅈ|[[수도자]]로 살겠다는 약속.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을 서원함.}}을 하였다. 이로써 성심수녀회가 창립되었다. 수녀들은 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힘썼다. [[1865년]] [[5월 25일]]에 소피이 바라가 선종한 후로도 성심수녀회는 발전했고,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 성심수녀회 분원(分院)들과 성심학교들이 세워졌다. | ||
소피아 바라는 1905년 [[가경자]]로 선포되었고, 1908년 5월 24일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25년]] 5월 24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 (기독교)|시성]]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는 [[수도회]] 설립자 39명의 성상이 있는데, 소피아 바라의 성상도 1934년에 안치되었다. | |||
== 사복 수도회 == | == 사복 수도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