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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보 | {{사건 정보 | ||
| | |사건 =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 ||
| | |그림 = | ||
| | |그림크기 = | ||
|그림설명 = | |그림설명 = | ||
| | |시점 =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0분 | ||
| | |위치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 | ||
|원인 = | |||
|인명 피해= 사망 : 292명, 생존 : 70명 | |||
|원인 | |재산 피해= 서해훼리호 여객선 1척 침몰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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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인양== | ==선박 인양== | ||
[[ | [[File:서해훼리호 인양 사진.jpg|섬네일|인양중인 서해훼리호의 모습]] | ||
사고 이후 선박 내부에 남아있을 다수의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하여 침몰한 서해훼리호에 대한 인양작업이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5/2010040500052.html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구난함인 [[구미함]]이 투입되었으며, [[UDT]]/[[SEAL]] 등 특수부대원 다수가 투입되어 시신 수습 및 수중 탐색을 지원했다. 당시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지점의 수심은 약 18미터, 유속은 평균 3~4노트에서 최대 7노트까지 강력하였으며, 뻘이 많은 서해안 지역의 특성상 시야 확보는 극도로 불량하여 대략 50cm 정도의 시야가 확보되는 수준이었다. 선박인양용 대형 크레인이 사고해역에 도착하였고, 선박이 가라앉은 바닥의 뻘을 뚫어 인양용 체인을 결속했다. 인양작업 착수 7일이 흐른 후, 크레인이 선체를 수면 가까이 들어올리는데 성공하였으나 당시 해역에는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었고, 25~30노트의 거센 바람과 높이 4~5미터의 파도가 몰아치는 바람에 선체에 연결했던 와이어 하나가 끊기면서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다시 와이어를 묶는 작업을 진행하여 17일만에 인양에 성공하였으며, 크레인이 들어올린 서해훼리호는 대형 바지선에 실려 사고원인 분석을 위해 옮겨졌다. | 사고 이후 선박 내부에 남아있을 다수의 희생자를 수습하기 위하여 침몰한 서해훼리호에 대한 인양작업이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5/2010040500052.html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구난함인 [[구미함]]이 투입되었으며, [[UDT]]/[[SEAL]] 등 특수부대원 다수가 투입되어 시신 수습 및 수중 탐색을 지원했다. 당시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지점의 수심은 약 18미터, 유속은 평균 3~4노트에서 최대 7노트까지 강력하였으며, 뻘이 많은 서해안 지역의 특성상 시야 확보는 극도로 불량하여 대략 50cm 정도의 시야가 확보되는 수준이었다. 선박인양용 대형 크레인이 사고해역에 도착하였고, 선박이 가라앉은 바닥의 뻘을 뚫어 인양용 체인을 결속했다. 인양작업 착수 7일이 흐른 후, 크레인이 선체를 수면 가까이 들어올리는데 성공하였으나 당시 해역에는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었고, 25~30노트의 거센 바람과 높이 4~5미터의 파도가 몰아치는 바람에 선체에 연결했던 와이어 하나가 끊기면서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다시 와이어를 묶는 작업을 진행하여 17일만에 인양에 성공하였으며, 크레인이 들어올린 서해훼리호는 대형 바지선에 실려 사고원인 분석을 위해 옮겨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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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 | ==대한민국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 | ||
[[ | [[File: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오보 관련 신문 기사.png|섬네일|당시 오보에 관한 비판조의 기사]] | ||
사고가 난 뒤로 유력 언론들은 일제히 사고 후 선장 등 선원 3명이 생존하여 도피하였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물론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기레기|추측성 보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담당한 [[검찰]]까지 이 기사를 맹신하여 선장 등 선원들이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하에 이들에 대한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ord&articleno=6761242&categoryId=0®dt=20140417133948 수배령]을 내렸으며, 이때문에 선장의 가족들은 죄인의 가족이 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부 언론은 아예 선장이 생존한 것을 기정사실화해 [[소설|기사를 작성]]하였으며 외딴 섬으로 도피했다거나 중국이나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남발했다. | 사고가 난 뒤로 유력 언론들은 일제히 사고 후 선장 등 선원 3명이 생존하여 도피하였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물론 제대로 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기레기|추측성 보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담당한 [[검찰]]까지 이 기사를 맹신하여 선장 등 선원들이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하에 이들에 대한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ord&articleno=6761242&categoryId=0®dt=20140417133948 수배령]을 내렸으며, 이때문에 선장의 가족들은 죄인의 가족이 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부 언론은 아예 선장이 생존한 것을 기정사실화해 [[소설|기사를 작성]]하였으며 외딴 섬으로 도피했다거나 중국이나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남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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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김영삼 정부|문민정부]]의 이런저런 대형 [[흑역사]] 중 하나이다. | *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김영삼 정부|문민정부]]의 이런저런 대형 [[흑역사]] 중 하나이다. | ||
== | == 바깥 고리 == | ||
*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1914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 국가기록원] | *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1914 서해훼리호 침몰사건 - 국가기록원] | ||
{{각주}} | {{각주}} | ||
{{대한민국의 해양 사건 및 사고}} | |||
[[분류:해양 사건사고]] | [[분류:해양 사건사고]] | ||
[[분류:대한민국의 사건]] | [[분류:대한민국의 사건]] | ||
[[분류:1993년 대한민국]] | [[분류:1993년 대한민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