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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전국 주요 도시에 본사 자본과는 상관없이 설립된 독립법인을 ‘제휴사’라는 명목으로 계열화 해나가 국영KBS보다 훨씬 빠르게 전국 네트워크화를 완료했다. 이에 대하여 정순일과 장한성은 “MBC방송망의 확장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가 [[1971년]]에 있었으므로 정치적 의미가 컸다”고 분석하고 있다.<ref>정순일․장한성(2000),『한국 TV 40년의 발자취-TV 프로그램의 사회사』,한울아카데미.</ref>  따라서 MBC는 기존의 부산국 외에 [[1963년]] 대구․광주․대전․전주에 직할국을 설립하는 한편 [[1968년]]부터71년까지 5․16장학회의 주도 아래 지방유지와 손을 잡고 울산․진주․영동(현강릉)․강원(현 춘천)․라디오 목포(현 목포)․남양(현 제주)․경남(현 마산)․남해(현 여수)․안동․원주․충청(현 청주)․중원(현 충주)․동해(현 삼척)․포항문화 방송을 가맹사로 개국함으로써 5개 직할국과 14개 가맹사를 확보한 전국 라디오 네트워크 체제를 형성하였다. 이들 지역 MBC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법인이지만, 서울 MBC가 51% 이상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실질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지역 MBC의 사장 역시 서울 MBC에서 내려보내는 형태로 임명된다.
MBC는 전국 주요 도시에 본사 자본과는 상관없이 설립된 독립법인을 ‘제휴사’라는 명목으로 계열화 해나가 국영KBS보다 훨씬 빠르게 전국 네트워크화를 완료했다. 이에 대하여 정순일과 장한성은 “MBC방송망의 확장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가 [[1971년]]에 있었으므로 정치적 의미가 컸다”고 분석하고 있다.<ref>정순일․장한성(2000),『한국 TV 40년의 발자취-TV 프로그램의 사회사』,한울아카데미.</ref>  따라서 MBC는 기존의 부산국 외에 [[1963년]] 대구․광주․대전․전주에 직할국을 설립하는 한편 [[1968년]]부터71년까지 5․16장학회의 주도 아래 지방유지와 손을 잡고 울산․진주․영동(현강릉)․강원(현 춘천)․라디오 목포(현 목포)․남양(현 제주)․경남(현 마산)․남해(현 여수)․안동․원주․충청(현 청주)․중원(현 충주)․동해(현 삼척)․포항문화 방송을 가맹사로 개국함으로써 5개 직할국과 14개 가맹사를 확보한 전국 라디오 네트워크 체제를 형성하였다. 이들 지역 MBC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법인이지만, 서울 MBC가 51% 이상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실질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지역 MBC의 사장 역시 서울 MBC에서 내려보내는 형태로 임명된다.


한편 [[1974년]]에는 경영 상 어려움을 겪던 경향신문을 인수 합병 하였다. 이환의 당시 MBC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불러 적자에 시달리던 경향신문을 MBC가 인수하도록 직접 ‘명령’하였다고 한다. 즉, 두 언론사의 합병은 적자 경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향신문을 처리하기 위한 정권의 행동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ref>최홍미(2007), 위의 글, p.141</ref> 이후 [[1980년]]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단행하면서 경향신문과 분리되었다.
한편 [[1974년]]에는 경영 상 어려움을 겪던 경향신문을 인수 합병 하였다. 이환의 당시 MBC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불러 적자에 시달리던 경향신문을 MBC가 인수하도록 직접 ‘명령’하였다고 한다. 즉, 두 언론사의 합병은 적자 경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향신문을 처리하기 위한 정권의 행동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ref>최홍미(2007), 위의 글, p.141</ref> 이후 [[1980년]]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단행하면서 경향신문과 분리되었다.  


전두환의 언론통폐합 시기 잠시 공영방송이 된 적이 있는데, [[1972년]] 대기업에 할애했던 주식 70%를 보상도 없이 반강제적으로 무상헌납 받아 [[한국방송공사]]가 넘겨받았다. 따라서 이 시기 MBC는 KBS의 자회사로 일단 외형만은 공영방송이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제정되고 KBS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넘겨받은 공익법인 방송문화진흥회를 대주주로 한 공익적 민영방송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사장 등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문진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한 이사 9명과 감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9명의 이사는 여당 3명 야당 3명 정부 3명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공영방송인지 민영방송인지 정체성이 애매한 사상 유례없는 괴악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두환의 언론통폐합 시기 잠시 공영방송이 된 적이 있는데, [[1972년]] 대기업에 할애했던 주식 70%를 보상도 없이 반강제적으로 무상헌납 받아 [[한국방송공사]]가 넘겨받았다. 따라서 이 시기 MBC는 KBS의 자회사로 일단 외형만은 공영방송이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제정되고 KBS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넘겨받은 공익법인 방송문화진흥회를 대주주로 한 공익적 민영방송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사장 등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방문진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한 이사 9명과 감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9명의 이사는 여당 3명 야당 3명 정부 3명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공영방송인지 민영방송인지 정체성이 애매한 사상 유례없는 괴악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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