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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가 국방부에서 주관한 국무회의에 참여하였다가 [[10월 27일]] 새벽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보안사 보안처 2과장 오일랑 중령이 이끄는 병력에 체포되어 보안사령부 정동 분실로 압송되었다.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과 수사관 신동기의 심문을 받던 중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서빙고 분실로 이송되었다. 신체검사를 실시하여 간질환 외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받고 이어서 보안부대 경남지구대장 백동림 대령과 보안사 수사과장 [[이학봉]] 중령의 심문을 받았다. | [[최규하]]가 국방부에서 주관한 국무회의에 참여하였다가 [[10월 27일]] 새벽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보안사 보안처 2과장 오일랑 중령이 이끄는 병력에 체포되어 보안사령부 정동 분실로 압송되었다.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과 수사관 신동기의 심문을 받던 중 [[전두환]]의 지시에 의해 서빙고 분실로 이송되었다. 신체검사를 실시하여 간질환 외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받고 이어서 보안부대 경남지구대장 백동림 대령과 보안사 수사과장 [[이학봉]] 중령의 심문을 받았다. | ||
[[전두환]]은 체포된 김재규에게 그대는 역적이고 배신자이니 어쩔수 없이 죽어야 된다고 말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의 남동생 김항규에게도 사정을 양해했다고 한다. 김항규는 "[[전두환|전 장군]]은 '나는 군 선배로서의 김재규 장군은 존경하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일이니 이렇게 할 | [[전두환]]은 체포된 김재규에게 그대는 역적이고 배신자이니 어쩔수 없이 죽어야 된다고 말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의 남동생 김항규에게도 사정을 양해했다고 한다. 김항규는 "[[전두환|전 장군]]은 '나는 군 선배로서의 김재규 장군은 존경하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일이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이해해 달라.'고 말하였다."고 [[1993년]]에 밝혔다. [[전두환]]은 김항규에게 "미국의 [[지미 카터|카터]]나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찾아와도 형님은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ref name="bresinep"/> | ||
[[10월 27일]] 하루 3회의 신문조서를 작성했고 이는 수사관들의 손을 거쳐서 대검으로 넘겨졌다. 보안사 수사 결과는 대검 1과로 넘겨졌고 대검찰청은 이종남 대검특수부 1과장, 이건개, 정경식, 주광일 검사 등으로 대응팀이 구성되었다. 수사결과는 [[10월 28일]] 오후 4시 국방부 제1회의실 기자회견장에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에 의해 발표되었다. | [[10월 27일]] 하루 3회의 신문조서를 작성했고 이는 수사관들의 손을 거쳐서 대검으로 넘겨졌다. 보안사 수사 결과는 대검 1과로 넘겨졌고 대검찰청은 이종남 대검특수부 1과장, 이건개, 정경식, 주광일 검사 등으로 대응팀이 구성되었다. 수사결과는 [[10월 28일]] 오후 4시 국방부 제1회의실 기자회견장에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에 의해 발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