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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미소는 한국 주권, 독립불가침을 보장하고, 정치, 경제적 특권을 요구하지 말라.}} | 다섯째, 미소는 한국 주권, 독립불가침을 보장하고, 정치, 경제적 특권을 요구하지 말라.}} | ||
여기서 그는 해방 후 귀국한 정치지도자들을 배제하고 일제하 국내에서 투쟁한 국내 인사들로 임시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해방 후 귀국한 정치인들이 미소 강대국의 영향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해방 후 귀국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독립이 실현될 | 여기서 그는 해방 후 귀국한 정치지도자들을 배제하고 일제하 국내에서 투쟁한 국내 인사들로 임시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해방 후 귀국한 정치인들이 미소 강대국의 영향력을 대변하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해방 후 귀국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독립이 실현될 떄까지 정치무대에서 은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 ||
한편, 김용중은 입법의원 창설 계획이 보도되자 하지 중장에게 공정한 선거의 실시와 함께 민주의원 즉시 해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민주의원이 이승만의 한국민주당 그 자체이며, 이승만과 같은 소수 귀국자와 부유한 지지자들이 통제하는 위성이니, 이를 내버려두면 남한 내 다양한 정치집단 간의 조화 가능성을 파괴할 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946년 11월에 실시된 입법의원 선거 결과, 이승만 계열 민주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반면 좌익은 검거 및 체포령을 피해 은신했다. 이에 김용중은 입법의원 선거가 불법이라며 무효화를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공산당의 선전거리가 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이기적이며 비애국적인 일파에 의한 민주주의 농단이다."라고 규정했다. | 한편, 김용중은 입법의원 창설 계획이 보도되자 하지 중장에게 공정한 선거의 실시와 함께 민주의원 즉시 해체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민주의원이 이승만의 한국민주당 그 자체이며, 이승만과 같은 소수 귀국자와 부유한 지지자들이 통제하는 위성이니, 이를 내버려두면 남한 내 다양한 정치집단 간의 조화 가능성을 파괴할 거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946년 11월에 실시된 입법의원 선거 결과, 이승만 계열 민주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반면 좌익은 검거 및 체포령을 피해 은신했다. 이에 김용중은 입법의원 선거가 불법이라며 무효화를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공산당의 선전거리가 될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이기적이며 비애국적인 일파에 의한 민주주의 농단이다."라고 규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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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
[[분류: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자]] | [[분류:건국훈장 애족장 수훈자]] | ||
[[분류:1898년 출생]] | |||
[[분류:1975년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