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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란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을 보이는 우파이다. 반의어로 [[기독교 좌파]]가 있다. 기독교 우파는 신은 교리를 어기면 응징한다는 개념이 강하며 자신들의 신을 심판자의 권위를 가진 신으로 보는 경향이 다분하다. 이런 이유로 권력과 자신들이 [[정교유착|권력과 야합]]하는 것을 신의 뜻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 통상 전통적 가족관을 중요시하고 성소수자 권리, 낙태, 성매매, 포르노그라피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 |||
== | == 미국 == | ||
[[KKK단]]은 미국에서 생겨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로 인종 차별을 정당화 하고 있다. | |||
게다가 [[68혁명]] 이후 미국에서 신좌파가 등장하자 80년대에 극우파들이 이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 기독교 우파, 신자유주의자가 연계하여 [[네오콘]]이 탄생했다. 그러나 2008년 경제 공황으로 인해 네오콘은 몰락했다. | |||
== 한국 == | |||
한국에서는 주로 개신교 성향(특히 [[장로교]])을 지닌 기독교 우파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는 한국 개신교계 내부에서는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 사실상의 [[흑역사]]로 점철된 개신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 |||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개신교를 받아들인 주 계층은 평안도와 원산지역, 그리고 서울지역의 인사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개신교로 개종한 교회 지도층의 성향은 개신교에서 근대 사상의 원동력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계층과 자신들의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긴 계층이 있었으며 후자의 경우 대체로 지역적으로 차별을 받아오던 몰락양반이나 중인, 도교 신자{{ㅈ|초기 개신교 전도사로 유명한 이기풍 목사의 경우 본래 도교 도사였다}}들이었다. 초기 개신교 성장기 당시 이들이 혼재한 상태로 존재하였으며 대체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적인 모습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
[[File:장로교 신사참배 결의.jpg|1938년 한국장로교 제 27회 총회 신사참배 결의문 이 결의는 해방 후 10년이 거의 다 된 1954년 총회가 되어서야 취소되었다.|섬네일]] | |||
[[ | |||
[[ | 그러나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과 [[3.1 운동]]을 기점으로 민족독립적 성향은 상당히 희석되고 이들을 지도하던 외국인 선교사들도 "권위에 순종하라"는 [[로마서]]의 성경 구절을 내세워서 일제 정권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개신교 지도층의 전반적인 성향이 일제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후 1940년대에 들어서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반일적 성향은 [[성결교]]단의 자진 폐쇄와 평양 [[숭실대학교|숭실학당]]의 자진폐교, [[주기철]] 목사의 순교 등으로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하였으며 이후 한국 개신교는 신사참배, 동방요배, 황국신민서사 등을 완전 수용하면서 일제 제국주의 침탈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개신교 재단 대학인 [[연세대학교|연희전문]], [[이화여자대학교|이화학당]], [[배재대학교|배재학당]] 등도 모두 신사참배를 수용하여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일제 신사참배에 반발하였던 [[성결교|성결교단]]조차도 자신들의 [[1941년_성결교회_규칙#.EC.B2.AB.EB.A8.B8.EB.A6.AC|규칙 맨 첫머리]]에 [[황국신민의 서사]]를 넣었고 모든 개신교 교단 총회에서도 동방요배와 대미승전기도문을 낭독하는 것이 기본적인 절차였다. | ||
[[파일:기독교도_중앙위원회_정부통령_지지포스터(1956).jpg|[[3.15 부정선거]] 직전 이승만과 이기붕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는 자유당의 선거포스터.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섬네일]] | |||
문제는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38선 이북지역의 경우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이에 영향을 무신론을 외치자 개신교측은 당연히 탄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던 것. 반대로 남한측의 경우 개신교 인사인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개신교인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미국과 선이 닿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때마침 터진 [[한국전쟁]]으로 북한 지역에 있던 개신교인들이 대거 월남하면서{{ㅈ|정확히는 한국전쟁 직전에도 꽤 많은 탈북이 있었다}} 이들이 개신교 주류를 장악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북한에 있을 때 받았던 탄압 등을 예시로 하면서 북한 공산주의 정권을 사탄의 세력으로, 이에 맞서는 이승만 정권과 미국을 하나님의 세력으로 여기게 되면서 개신교의 우경화와 친미화가 가속화되며{{ㅈ|21세기 들어 열리는 태극기 집회에 개신교인이 주축이며 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승공정책을 노골적으로 펴게 된다. 실제 한국전쟁 중 [[한경직]] 목사가 조직한 [[서북청년단]]이 북한지역에서 월남한 개신교인들이 조직화된 대표적인 사례이며, 한경직목사의 자서전에서도 이들이 [[제주 4·3 사건|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다녔다]]고 서술하고 있다. | |||
[[ | [[File:국자조찬기도회 김준곤 설교.jpg|1973년 5월 1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준곤 목사의 설교문|섬네일]] | ||
이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개신교입장에서 숨 죽이고 버로우타고 있어야 하는 시기가 오나 싶었으나 곧이어 5.16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들 역시 반공을 국시로 세우면서 개신교 입장에서는 [[정교유착]]을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가 다시 한번 열리게 되었다. 실제 박정희와 반공기독교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김준곤]] 목사와의 만남이 대표적인 것으로 <ref>[http://cairos.tistory.com/230 유신과 함께 온 그리스도의 계절: 박정희와 김준곤]</ref> 당시 학생운동에 골머리를 앓던 박정희가 김준곤에게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반공으로 방향성을 잡는 학생선교단체의 설립과 후원을 얻어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로 이후 이들을 위시한 개신교계의 [[정교유착]] 작품으로 [[국가조찬기도회]], [[구국십자군]](구국선교회) 운동<ref>[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59759 최태민이 만든 구국십자군의 진실]</ref>{{ㅈ|개신교 언론지인 국민일보에서는 목사들이 이용당했다고 하였지만 당시 교단차원에서는 참여를 금하였지만 실제로 적극 참가한 인사들을 보면 주류교단의 대형교회 목사들이었으며 이들이 이용당했다고 하기 보다는 주류 개신교 인사들이 적극 가담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군신자화 운동]]를 통한 군내 집단세례식의 시작, 현재로도 열기 힘든 초대형 반공 기독교 집회인 [[엑스플로 74]]를 개최하게 되면서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의 성장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었다. 즉 정교유착을 하면 교회의 외형과 재산이 성장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루어지면서 정교유착이 고착화 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 | 이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고 개신교입장에서 숨 죽이고 버로우타고 있어야 하는 시기가 오나 싶었으나 곧이어 5.16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들 역시 반공을 국시로 세우면서 개신교 입장에서는 [[정교유착]]을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가 다시 한번 열리게 되었다. 실제 박정희와 반공기독교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김준곤]] 목사와의 만남이 대표적인 것으로 <ref>[http://cairos.tistory.com/230 유신과 함께 온 그리스도의 계절: 박정희와 김준곤]</ref> 당시 학생운동에 골머리를 앓던 박정희가 김준곤에게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반공으로 방향성을 잡는 학생선교단체의 설립과 후원을 얻어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로 이후 이들을 위시한 개신교계의 [[정교유착]] 작품으로 [[국가조찬기도회]], [[구국십자군]](구국선교회) 운동<ref>[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59759 최태민이 만든 구국십자군의 진실]</ref>{{ㅈ|개신교 언론지인 국민일보에서는 목사들이 이용당했다고 하였지만 당시 교단차원에서는 참여를 금하였지만 실제로 적극 참가한 인사들을 보면 주류교단의 대형교회 목사들이었으며 이들이 이용당했다고 하기 보다는 주류 개신교 인사들이 적극 가담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군신자화 운동]]를 통한 군내 집단세례식의 시작, 현재로도 열기 힘든 초대형 반공 기독교 집회인 [[엑스플로 74]]를 개최하게 되면서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의 성장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었다. 즉 정교유착을 하면 교회의 외형과 재산이 성장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루어지면서 정교유착이 고착화 되는 시기가 된 것이다. | ||
이러한 모습으로 성장해 왔던 개신교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게 된 사례가 바로 [[1997년 외환 위기]]로 개신교측에서 밀어주던 '''"장로 대통령"'''인 [[김영삼]] 정권 말기에 나타나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하여도 신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일시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당시까지는 한국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그나마 신뢰할만하고 사회적으로 구제활동과 같은 선한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가 남아있었고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을 장소로 교회를 택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ㅈ|실제 이 당시 교회로 들어온 30~40대 실직자 세대의 중 어릴 때 주일학교나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나누어준 것을 추억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이전과 같은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한 여러 사건들로 [[미국]]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악화되고 결정적으로 개신교 스스로가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데다가 일반 대중적 시각으로 봐도 말이 | 이러한 모습으로 성장해 왔던 개신교의 성장세가 한풀 꺾이게 된 사례가 바로 [[1997년 외환 위기]]로 개신교측에서 밀어주던 '''"장로 대통령"'''인 [[김영삼]] 정권 말기에 나타나게 된 사건이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하여도 신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일시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당시까지는 한국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그나마 신뢰할만하고 사회적으로 구제활동과 같은 선한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가 남아있었고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을 장소로 교회를 택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ㅈ|실제 이 당시 교회로 들어온 30~40대 실직자 세대의 중 어릴 때 주일학교나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나누어준 것을 추억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이전과 같은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한 여러 사건들로 [[미국]]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악화되고 결정적으로 개신교 스스로가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데다가 일반 대중적 시각으로 봐도 말이 안되는 엽기적인 사건들{{ㅈ|속칭 [[에어장]] 사건이 이 시기에 있었다}}이나 괴리된 인식의 모습{{ㅈ|한국교회의 [[교회세습]]이 본격화된 시기가 2000년대 초반이다}}이 개신교 내에서 지속적으로 불거져 나오면서 개신교 인구 성장세 자체가 감소되기에 이른다. | ||
이러한 모습에 위기를 느끼던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다시 기독교 지도자(속칭 장로 대통령 만들기)를 세우고 자신들이 사회 주류층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몰락하게 되고 이들과 [[정교유착]]이 견고하던 개신교 주류층의 민낯이 일부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반공 프레임이 약해지게 된 개신교 우파들의 주 공격대상이 동성애와, 이슬람교, 천주교 등으로 전환되게 되었으며{{ㅈ|그렇다고 북한이 빠진건 절대로 아니다.}} 내부 결속을 위해 보다 극우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른 극우 집단과 다를바 없는 [[가짜뉴스]]의 [[에스더기도운동본부|생산기지 역할]]까지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 이러한 모습에 위기를 느끼던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다시 기독교 지도자(속칭 장로 대통령 만들기)를 세우고 자신들이 사회 주류층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몰락하게 되고 이들과 [[정교유착]]이 견고하던 개신교 주류층의 민낯이 일부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반공 프레임이 약해지게 된 개신교 우파들의 주 공격대상이 동성애와, 이슬람교, 천주교 등으로 전환되게 되었으며{{ㅈ|그렇다고 북한이 빠진건 절대로 아니다.}} 내부 결속을 위해 보다 극우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른 극우 집단과 다를바 없는 [[가짜뉴스]]의 [[에스더기도운동본부|생산기지 역할]]까지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 ||
참고로 한국의 기독교 우파 정당으로 알려진 정당은 [[기독자유당]]이지만 실제 [[정교유착]]현상을 보이는 정당은 [[자유한국당]]까지 포함된다. 이외에 한국 기독교 우파의 기타 특성으로 교회 내 여성 지위나 인식이 일반 사회의 인식보다 훨씬 더 전근대적이고 뒤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 참고로 한국의 기독교 우파 정당으로 알려진 정당은 [[기독자유당]]이지만 실제 [[정교유착]]현상을 보이는 정당은 [[자유한국당]]까지 포함된다. 이외에 한국 기독교 우파의 기타 특성으로 교회 내 여성 지위나 인식이 일반 사회의 인식보다 훨씬 더 전근대적이고 뒤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ㅊ|[[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젠더 권력 불평등 문제가 한국내에서 아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곳}} | ||
==== | ===참조=== | ||
다음은 한국의 대표적 주류 교단이자 기독교 우파로 분류되는 [[장로교]]의 총회 결의문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이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우파가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유추가 가능하다. 참고로 1959년 장로교 분열 이후 총회는 보수성이 강하면서 대형교단에 속하는 합동교단의 총회를 기준으로 하였다. | |||
*제6회 총회(1917) - [[천주교]]인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하다. | *제6회 총회(1917) - [[천주교]]인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하다. | ||
*제14회 총회(1925) - 불신자가 혼례에 목사를 청하여 주례를 청할 경우 주례해줌이 불가하다. | *제14회 총회(1925) - 불신자가 혼례에 목사를 청하여 주례를 청할 경우 주례해줌이 불가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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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회 총회(2004) -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반대 | *제89회 총회(2004) -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반대 | ||
== 유럽 == | |||
* | *예외적으로 독일의 기독민주연합(CDU)는 기독교 우파 성향이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 | ||
*90년대 공산권이 무너진 후 | *90년대 공산권이 무너진 후 헝가리와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과도기로 인해 혼란을 겪자 기독교 우파와 연계한 극우파들이 득세를 이루면서 우경화 되었다. | ||
*[[장 마리 르 펜]]은 극우성향의 가톨릭 신자로 낙태,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인지 자신의 딸인 [[마린 르 펜]]과 손녀인 [[마리옹 마레샬 르 펜]]도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다. | *[[장 마리 르 펜]]은 극우성향의 가톨릭 신자로 낙태,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인지 자신의 딸인 [[마린 르 펜]]과 손녀인 [[마리옹 마레샬 르 펜]]도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다. | ||
{{주석}} | {{주석}} | ||
[[분류:기독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