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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을 하달했다. 철수 과정에서 예상강 교량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연안의 제3대대 본부와 제10중대는 적침보고에 따라 비상령을 하달하고, 연안서와 협조해 사이렌을 울려 영외 거주 장병, 외출 방병, 그리고 비번 근무중인 경찰까지 빠르게 소집하였다. 제10중대장 조기백 중위는 05:00 제1소대를 출동시켰지만, 전방의 207, 209고지를 선점하고 있던 제2, 제3소대는 이미 북한군의 포격과 공세로 인해 그곳을 넘겨주어야 했다. 제3대대장은 민관의 철수를 위해 비봉산을 장악하여 시간을 벌려고 하였지만 이미 북한군의 수중에 들은 후였다. 10:00 대대는 철수를 시작하였고, 13:00에 석포에 도착하여 어선으로 강화도로 철수하였다. 제11중대는 교동도로 철수하였으며 대대의 일부 병력은 인천으로 철수하였다. ==== 개성 전투 ==== 제12연대 제2대대는 예성강 동안에서 제13연대가 있는 대원리까지의 지역을 서에서 동으로 제5, 제6, 제7중대 순서로 배치된 상태였다. 04:00 포성에 잠을 깬 대대장 한순화 소령은 작전장교에게 교전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대대장은 먼저 연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각 중대장에게 현 진지 고수명령을 내렸다. 이때 개성시내에서도 포탄이 낙하되어 시내가 혼란에 휩싸였다. 지역 내 주요 도로를 담당했던 제5중대는 1개 대대규모의 북한군에게 기습을 받아 분산되고 연락선이 차단되었다. 송악산에 배치된 제6중대는 집중 포화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고, 통신기기가 파괴되었으며 안개로 인한 시계제한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 중대장이 백원담 중위가 사망하면서 중대는 와해되었다. 제7중대장 김영선 중위는 03:00 비둘기고지에서 총격전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고 현황을 살펴보았다.<ref>비둘기고지는 북한군의 위치에서 200m 거리로 평소에도 서로 <s>욕배틀</s> 욕설을 주고받았다.</ref> 중대장이 돌아서려고 할 때, 북한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중대장은 지휘를 위해 관측소로 향했지만 이미 북한군이 인공기를 꽂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에 중대장이 본부요원에게 철수를 준비시키고 대대본부에 보고하자 대대본부가 위치한 자남산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07:00 중대가 자남산에 이르자 북한군이 밀려들고 있었기에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송악산 지역 고수에 실패하고 철수중인 대대장과 일부 병력은 문산으로 이동중인 제5중대와 만났다. 대대장은 낙오병과 함께 연대본부로 이동했으나 이미 본부 방향에서 화염이 치솟고 있어 다시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예비대인 제1대대는 24일 오후부터 장병들의 외출 외박으로 일부만이 남고 거의 비어 있었는데, 25일 아침 연병장에 포탄이 떨어지자 연대장 전성호 대령이 제1대대의 잔여병력과 본부병력을 고남리에 배치하여 공격에 대비시켰다. 그러나 멀지 않아 연대장이 연대참모를 집합시켜 철수준비를 지시하고 불필요한 물자는 파기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때 참모들이 연대장에게 군인가족을 빨리 남하시키자고 하자 <s>우리 가족이라도 살려요!!</s> 연대장은 "개성시민 피난 대책도 없는데 군인가족이라고 부족한 차량을 주냐"라고 대노했다고 한다. <s> 진정한 군인</s> 연대장 전성호 대령의 과거를 소개하자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일본 제국군과 맞서 싸운 독립투사였고, 1945년 해방 때 귀국해 53세라는 나이에 소령으로 임관하였다. <s>군대 두 번 다녀오기.</s> 이후 제18연대 부연대장을 거쳐 제12연대장으로 임관해 서부의 요충지인 개성의 경비를 맡았다. <s>국K-1들 보고 있냐?</s> 고남리 부근에서 제2대대의 철수병력과 만난 연대장은 제1, 제2대대장과 함께 사후대책을 논의하였고 개성시내에 있는 북한군을 역습하기로 결정했다. 제2대대장 한순화 소령이 제1중대와 특공대를 이끌고 10:00 개성시 남대문까지 전진하여 대열을 정비중인 북한군을 기습,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곧바로 북한군의 반격에 버티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이들은 17:00 영정포에 도착하여 어선으로 19:00 김포로 도하 퇴각하였다. 연대본부와 제1대대는 문산으로 후퇴하였다. ==== 고랑포 전투 ==== 고랑포에서 대원리간의 경비임무를 맡은 제13연대 제3대대는 지휘소를 아곡동에 두고 제11중대를 좌측, 제10중대를 우측, 제9중대를 예비대로 두었다. 제11중대는 04:30 부터 전투를 시작하여 전방 소대들이 북한군 일부를 격퇴하고 이후 공격에 대비하였으나 이미 북한군의 주력은 대덕산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방 소대는 임진강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장단을 우회해 오후에 임진강을 도하하였다. 동일한 시각 제10중대장 박형수 중위는 112고지의 제1소대장 장재만 중위에게 1개 중대가 진지에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 대대장 유재성 소령으로부터 고랑포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중대장은 제1소대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북한군 선두부대가 사격을 집중하자 방향을 틀어 임진강 남쪽의 59고지에 부대를 배치했다. 북한군이 임진강을 도하를 시도하자 우선적으로 이미 임진강 남쪽 53고지를 점령한 북한군에게 화력을 집중해 분산시킨 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포격전을 벌였다. 06:00 중대의 포탄이 바닥나자 북한군이 자하리쪽으로 남하했다. 북한군이 대대본부까지 다다랐을 것이라 판단한 중대장은 석포로 철수를 명령했다. 대대장은 북한군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해 금곡리 부근에 집결하라는 지시를 받고 각 중대에 하달하려 했지만 이미 통신이 차단된 상태였다. 대대장은 전방중대가 여의치 않은 사태에 직면했다고 판단, 91고지와 무명고지를 점령해 아군의 철수를 엄호하기로 했다. 06:00 포탄이 숙영지 주위에 떨어지며 전차 7대가 남하하자 대대장은 제9, 제12중대의 중화기를 도로변에 배치시켰다. 장단경찰서의 경비주임 김기태 경위가 탑승한 차량을 파괴한 전차가 잠시 멈추자 바주카와 박격포 사격 명령을 내렸지만 파괴에 실패하고 오히려 역습을 당했다. 대대장은 제9중대 제1소대장 장두철 중위를 포함한 8명의 특공대를 선발하여 저지시키려 했지만 모두 전사하고 실패했다. 이어 화기중대의 김일하 병장 등 7명이 특공대를 자청해 전차의 측면에 수류탄을 투척했으나 실패하고 되돌아왔다. 대대장은 현 위치 사수가 불가능하자 남쪽 85고지로 철수시켰다. 17:00 제10중대와 합류하고 강을 건너 22:30 금곡리에 집결했다. ==== 사령부 상황과 증원 ==== 25일 07:00 보병학교에서 교육중이던 제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으로부터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단장은 급히 차편을 얻어 용산의 육군본부에 출두하였다. 사단장은 미 고문관 로크월 중령과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과 함께 수색에 위치한 사단사령부에 돌아와 1/3의 병력이 자리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사단장은 최경록 대령에게 병력이 집결되는대로 전방에 투입시키도록 지시를 내렸고, 참모장 석주암 대령에게 문산에 사단 지휘소를 설치하도록 하였으며, 다시 정오에 파주로 지휘소를 옮겼다. 14:00 제12연대장 전성호 대령이 부상을 입은 채 사단 본부에 돌아와 기습공격으로 연대가 조기에 와해되고 제3대대의 상황을 알 길이 없다고 하자 사단장은 전 대령을 후송 조치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의 명령을 받고 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의 병력으로 편성된 서울특별연대가 증원병력으로 때마침 도착하였다. 사단장은 육사교도대를 제13연대에, 보병학교 교도대를 제11연대에 재배속시켰다. 그리고 조금 뒤 역시 총참모장의 명령을 받은 제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이 예하 제3대대의 지원 소식을 알렸다. 당시 전주에 있던 제3대대는 이동 도중 전투기의 공격을 받자 열차에서 내려 금촌 북쪽까지 행군하였다. 사단장은 우일선은 파평산을 확보해 저지할 수 있지만 좌일선의 경우 문산 돌출부라는 조건 때문에 서측방의 위협이 증대될 것이며 도하를 시작하면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제15연대 제3대대에게 금촌 북쪽의 고지군을 점령해 방어하도록 명령하였다. 16:30 제1사단 지역으로 도착한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대전차포 1개 중대를 문산에 배치하고 장갑소대에게 정찰임무를 전담시켰다.<ref>장갑소대 M8 그레이하운드의 37mm 주포 위력은 별 볼 일 없었지만 장착된 무전기는 장거리 통신이 가능했다.</ref> 17:00 백선엽 사단장의 명령을 받은 제15연대 제3대대가 용산까지 진출했다. 한편 광주에 위치한 제20연대는 백운산의 공비토벌 명령을 받고 이동중인 예하 제3대대를 서울로 돌렸으며, 제3대대는 26일 문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 임진강 철교 폭파 ==== 제1사단 공병대대장 장치은 소령은 사단장의 철교폭파 준비명령이 내려지자 대대 작전과장 정극서 대위로 하여금 폭파계획을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정대위는 제3중대의 주둔지로 이동해 중대장 김동일 대위를 찾았으나 행방이 묘연하자 직접 폭파를 지휘하기로 했다. 정대위가 교각에 폭약을 장전하고 대기하였는데 대대장 장소령이 차안쪽이 아니라 대안쪽에 설치하라고 명령하여 다시 대안쪽 교각에 장전을 마치고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사단이나 대대로부터 폭파명령이 오지 않자 제12연대의 철수 후 폭파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제12연대의 주력이 통과하자 폭파 시기가 왔다고 믿고 폭파조에게 남쪽 쳘고인 경의선 철도를 폭파하도록 명령했다. 남쪽 교량을 성공적으로 폭파하고 북쪽 교량을 폭파하려고 했으나 배선이 끊어졌는지 실패했다. 정대위는 폭파병에게 다시 배선을 연결하고 폭파하라고 지시했다. 폭파 과정에서 북한군의 사격을 받자 정대위와 폭파조는 폭파 상황을 확인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후 북한군이 교량을 이용한 것을 보아 완파시키지 못했다고 이후 판단되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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