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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탄핵후폭풍이 정가를 강타하면서, 민주당은 말 그대로 멸망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한나라당도 죽다 살아났으며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살짝 넘기는 152석을 획득하며 대승리를 거둔다! 6공화국 이래 총선에서 1개 정당이 과반 이상을 획득한 것은 처음이었다.<ref>[[1990년]]부터 [[1997년]]까지의 민주자유당-신한국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이건 정상적인 선거가 아닌 3당 합당과 야당의원과 무소속 의원 영입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과반수를 만든 결과이다. 13대 국회 하반기때는 민주자유당이 개헌선을 넘어섰지만 선거를 통한 결과는 아니었고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이 얻은 의석은 149석(총 의석 299석)이었고,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얻은 의석도 139석으로 과반에 미달했기 때문이다.</ref><ref>이후 총선을 통한 과반 달성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2번째로 기록했고, 이어 [[새누리당]] 이 19대 총선에서 과반을 3번째로 기록했다. 거기다 중도 과반붕괴한 열린우리당과 달리 [[2015년]] 현재까지 과반을 유지중이다.</ref><ref>6공화국 이전으로 거슬러가면 [[4.19 혁명]] 이후 2공화국 체제에서 [[민주당 (1955)]]가 75%를 차지하긴 했다. 다만 이땐 민주당 외 제대로 된 정당이 [[자유당]]뿐인데다 그 자유당이 [[3.15 부정선거]]로 스스로 붕괴한 뒤라서...</ref> 한때 200석까지 바라보았으나 정동영 당시 당 의장의 노인폄하실언으로 많이 깎아먹었음에도 이 성과였던 것.<ref>젋은 층의 투표독려 취지로 한 발언이였으나, 노인을 폄하한다는 뉘앙스가 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ref> 이후 [[2004년]] [[6월 5일]] 재보궐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4개를 모조리 내주며 패배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중 제주도를 빼면 모두 총선에서도 우리당이 고전한 지역(부산, 경남, 전남)이었고, 기초단체장에서도 수도권에서는 패했지만 충청권에서 승리(대전 동구, 대덕구 및 충남 당진군)하였고 무엇보다 총선 후 2달밖에 안 지나서 패배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같은 해 [[10월 30일]] 재보궐선거도 기초단체장 5석이 걸렸는데 하나같이 열린우리당 약세지역이라 패배는 당연시 여겨졌고, 그 와중에 강원 철원군수 선거에서 승리하여 오히려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2005년]]부터였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당시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경선을 했는데 이게 역설적이게도 선거법 위반 사유를 늘려주는 부작용을 낳았다.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재보궐 사유를 발생시킨 경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이상락 (경기 성남 중원) 선거법 위반 : 2005. 4. 30 재보궐 * 이철우 (경기 포천/연천) 선거법 위반 : 2005. 4. 30 재보궐 * 오시덕<ref>피선거권 회복 후 자유선진당에 입당,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주시장에 출마하나 낙선,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재도전하여 당선된다.</ref> (충남 공주/연기) 선거법 위반 : 2005. 4. 30 재보궐 * 복기왕<ref>피선거권 회복 후 민주당 후보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아산시장에 출마하여 당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선한다.</ref> (충남 아산) 선거법 위반 : 2005. 4. 30 재보궐 * 김맹곤<ref>피선거권 회복 후 민주당 후보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김해시장에 출마하여 당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선하였으나, [[2015년]] [[11월 27일]] 기자들에게 [[뇌물|돈 봉투를 돌린 죄]]로 시장직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7/0200000000AKR20151127066651004.HTML 상실했다.] 특히 [[2012년]] 선거에서 새누리당 김정권 후보에게 이겼는데, 김정권 후보는 김맹곤 의원직 상실로 치뤄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선된 경력이 있어 라이벌 매치로 관심을 끌었다.</ref> (경남 김해 갑) 선거법 위반 : 2005. 4. 30 재보궐 * 김기석 (경기 부천 원미 갑) 선거법 위반 : 2005. 10. 26 재보궐 * 신계륜 (서울 성북 을) 불법 정치자금 수뢰 : 2006. 7. 26 재보궐 * 이호웅 (인천 남동 을) 불법 정치자금 수뢰 : 2006. 10. 25 재보궐 * 안병엽 (경기 화성) 불법 정치자금 수뢰 : 2007. 4. 25 재보궐 * 구논회 (대전 서 을) 사망 : 2007. 4. 25 재보궐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측 귀책사유로 재보궐을 치른 곳은 위와 같이 총 10곳이며 이중 지병으로 작고한 故구논회 의원을 제외해도 9명이다. 그야말로 공천받기 위해, 그리고 공천 후 당선을 위해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이 속출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결국 열린우리당이 총선 채 1년도 안되어 과반의석이 붕괴되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어쨌든 자당 귀책사유가 압도적으로 많긴 했지만 재보궐을 치뤄야하니 후보 공천을 해야 하는데 이 공천에서부터 우리당은 온갖 실책을 저지르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4.30 재보궐 당시 충남 아산 지역구인데, 우리당은 1년 전인 17대 총선때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이명수를 영입, 공천했다. 문제는 이명수가 '''자민련에서 아직 탈당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이명수 본인도 당연히 탈당된줄 알고 우리당에 입당, 공천받았다. 정확히는 자민련에서 이명수를 출당조치했고, 이명수는 출당된줄 알았는데 자민련의 당 내 의결기구에서 아직 출당안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중당적으로 후보등록 불가'''를 통보하며 우리당의 아산 선거는 [[망했어요]]. 이후 급히 후보를 임좌순으로 교체하지만 결국 졌다.<ref>이후 이명수는 우리당을 탈당한 후 [[국민중심당]]으로 민선 4기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하나 낙선, [[자유선진당]]으로 아산 지역구에서 18~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2015년]] 현재 새누리당 소속이다.</ref><ref>이명수를 대신해 급히 공천받은 임좌순은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아산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로 임좌순은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17027 #]</ref> 같은 선거의 공주/연기 선거구에서도 우리당은 전 자민련 출신 이병령을 공천한다. 이병령은 전 유성구청장으로 자민련 소속이었다가 총선을 위해 구청장직에서 사퇴한 후 17대 총선에 유성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 탄핵을 반대하기에 탈당했고 당선된 후 우리당에 입당하겠다고 했으나 정동영 의장에게 설사 당선되도 입당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반박을 당하며 근소한 차로 낙선된 사람이었다.<del>당선되면 안받아준다고 했지, 낙선해도 안받아준다고는 안했습니다.</del> 이처럼 불과 1년 전에 입당을 거부한다고 공개선언한 사람을 영입해 다른 지역구에 공천을 주니 제대로 선거가 될 리가 있나. 결과는 또 망했어요. 경북 영천의 경우 우리당 귀책사유 선거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민주정의당 12~13대 의원''' 정동윤을 영입하였는데 이게 지지층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영천이라도 이겼으면 다행인데, 근소한 차로 '''또 졌다!''' 경기 성남 중원의 경우 당 문제보다는 선거구 환경, 즉 운이 너무 안 좋았다. 전체적으로 당시 여권성향 지지층이 많은 선거구였고 후보도 16대 국회에서 이 지역구 의원이었던 조성준 전 의원을 공천했다.<ref>조성준의 경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하고 민주당에 잔류했지만, 민주당 내 소장파로 탄핵에 반대하여 탈당, [[2004년#3월|2004년 3월]] 우리당에 입당했다. 17대 총선때 아예 자민련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던 이명수보다는 당 정체성도 나았고, 지역구와 무관계한 인물도 아니었다.</ref> 그러나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한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가 득표력이 상당하였기에 민주노동당도 첫 수도권 지역구 의원을 만들기 위해 모든 당력을 투입했고, 민주당도 김강자 전 총경을 공천하여 결국 셋이 서로 표를 깎아먹다가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우리당은 또 망했어요.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아예 패색이 짙어 아무도 나서려는 사람이 없다보니 광역단체장 선거에 장관진들을 차출시켜 장관 선거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서울시장 후보 전 법무부 장관 강금실, 경기지사 후보 전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 경남지사 후보 전 행정자치부 장관 김두관, 충남지사 후보 전 행정자치부 장관 오영교, 대구시장 후보 전 환경부 장관 이재용, 부산시장후보 전 해양수산부 장관 오거돈, 경북지사 후보 전 행정자치부 장관 박명재<ref>박명재는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 [[2013년#4월|2013년 4월]] 재보궐 경북 포항 북/울릉 국회의원 재보궐로 당선된다.</ref>가 그 대상으로 무려 장관 출신만 7명이었으나 모두 낙선.<ref>장관은 아니지만 서범석 전남지사 후보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출신으로 역시 내각 출신 후보였다.</ref> 그밖에도 인천에선 후보가 없어 자민련 출신 최기선 전 인천시장을 영입했으나 졌고, 대전에선 한나라당 출신 현직 시장 염홍철을 영입<ref>이 과정에서 대전시장을 노리던 초선의원 권선택(대전 중)이 반발하여 탈당, 국민중심당에 입당했다. 이후 권선택은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18대 총선에서 재선하나 19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이후 새누리당과의 합당에 반발하고 탈당, 민주당에 입당한 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 민주연합 후보로 대전시장에 출마, 당선된다.</ref>하여 당선이 유력했으나, 선거운동기간 중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피습당한 사건의 여파로 대전마져도 졌다.<ref>그 유명한 박근혜의 '''대전은요?''' 발언이 이 때 나온 것이다. 피습 후 치료를 받던 박근혜 대표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ref><ref>염홍철은 낙선 후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한 뒤 당적을 정리했다가 자유선진당에 입당,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출마, 4년 전 자신을 이긴 박성효 한나라당 후보에 설욕하며 당선되고 [[2014년]] 선거에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임기를 마쳤다. 다만 시장 재임중 소속 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면서 박성효와 불편한 동거를 해야했다.</ref> 결국 2006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텃밭 전북<ref>당의 핵심인물인 정동영의 지역기반이었다.</ref>에서만 승리하고 다 졌으며, 기초단체장 및 광역의회에서도 수도권에선 말 그대로 괴멸당해 서울특별시의회나 경기도의회의 경우 비례대표 1명씩을 제외하면 다 한나라당 후보였다. 그야말로 한국 선거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참패였다. 그나마 기초의회는 이때부터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2, 3위로 당선된 경우가 많았는데 기초의회마저 소선거구제였다면... 이후로도 2006~2007년 재보궐 선거가 있었지만 이미 당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전략같은건 없었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