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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 강 유역 일대의 매우 광활한 영역을 양도받았으며, [[스페인]]에게는 [[텍사스]]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대가로 플로리다를 양도받았다. 뒤이어 [[미국-멕시코 전쟁]]의 승리로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거대한 서부 영토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대한 서부 영토의 법적 영유권과는 별개로, 이 지역에는 수많은 [[원주민]]들이 수백년 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이들 원주민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서쪽으로 진출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이렇게 인디언들과 싸워 뺏은 엄청난 영토가 헐값에, 사실상 공짜나 마찬가지로 불하된다는 말에 유럽에서 국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으며 이들의 서부 진출은 더더욱 가속화되었다. 다만 인디언들의 희생은 [[눈물의 길]]과 [[서식지의 파괴]]로 인한 문제가 더 막대했다. 인디언 전쟁에서 사망한 인디언은 30000명, 백인은 19000명이고 기록되지 않은 인디언 사망자를 포함하면 최고 45000명 정도다. <ref>Bureau of the Census (1894). Report on Indians taxed and Indians not taxed in the United States (except Alaska). pp. 637–38.</ref> 보통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은 이 정도로 활발히 굴러가기 힘든데 이는 미국의 지리적인 이점이 한 몫 했다. 우선 미국은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천연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유럽 열강들에게 시달릴 일이 적었다. 게다가 상술했듯 미국 서부엔 아주 많은 빈 땅이 널려 있었다. 물론 엄밀히 말해 이 역시 상술했듯 이미 원주민들이 있는 엄연한 주인있는 땅이였으나, 유럽에서 온 백인들에게 있어 백인 외의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빈 땅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것이다. === 남북전쟁과 열강으로의 진입 === 한편, 노예제도의 찬반, 강력한 중앙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독립성 인정 등을 두고 갈등 끝에 [[1861년]] 남부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하며 내전이 발발한다.([[남북전쟁]]) 4년여의 전쟁 끝에 남부(아메리카 연합국, 남부맹방)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기존의 매우 느슨한 주 정부와 중앙 정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여 주 정부의 독립성은 인정하되 강력한 중앙정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원칙을 정립하며 하나의 결속된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동부 해안 및 오대호 주변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본격화되었고, [[1869년]]에는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었고, [[1893년]]까지 대륙횡단철도 노선 3개가 추가되면서 서부진출이 본격화되었다. 뒤이어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통해 스페인을 완전히 격파하며 새로운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 필리핀, 괌, 푸에르투리코를 획득하고 뒤이어 하와이를 병합하며 태평양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쳐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후 미국은 유럽 국가에 군수물자를 수출하며 대호황을 맞이하였는데, 문제는 지리적인 문제 때문에 연합국의 대 동맹국 해상봉쇄로 이 군수물자는 오로지 연합국에게만 수출되었다. 즉 미국 입장에서는 동맹국에게도 물자를 팔고는 싶었으나 대서양을 꽉 잡는 연합국들이 이것을 막아서 그럴 수 없었다는 것. 이에 고의가 있든없든 어쨌건 연합국에게만 좋은 일 시켜주고 있었기 때에 미국의 수출선단은 독일 잠수함들의 공격목표가 되었고,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된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자신들이 불합리하게 동맹국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을 내세워 [[1917년]] 연합국의 일원으로 정식으로 참전하여 연합국의 승리에 공헌한다. 이후, 먼로 독트린에 따라 다시 고립정책으로 돌아온 미국은 [[1920년]]대의 황금기를 보내다가 [[1929년]] 경제대공황을 맞이한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시련인 이 공황으로 기업과 은행이 연이어 도산하며 미국의 경제는 크게 위축되었고 실업자들은 폭증했다. [[1932년]] 대선에서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을 통한 적극적인 정부 개입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고 어느 정도 미국 경제에 약간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여전히 중립정책을 지키고 있던 미국이었으나 [[파시스트]] 세력의 확산을 좌시할 수 없던 미국은 산업체계를 군수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하고 연합국인 영국과 중국, 소련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뒤이어 주축군의 일원인 일본이 저지른 [[진주만 공습]]을 받고 이것에 대응하기 위해 정식으로 참전, 미국은 유럽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양면전쟁을 치르며 압도적인 국력으로 주축국에 연이어 결정적 타격을 주어 최종적으로 파시스트 세력을 축출해내고 세계대전을 자유민주진영의 승리로 이끌었다. 뒤이은 냉전 시대에서도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과 맞붙는 모든 곳에 전면으로 나서며 위대한 고립 정책을 탈피했다. [[그리스]], [[터키]], [[중국]], [[한국]], [[베트남]]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산세력에 맞섰고 중국, 베트남에서는 현지 정부의 무능으로 밀려났지만 그리스와 터키, 한국에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전후 피폐해진 서유럽과 일본에 마셜 플랜을 통한 막대한 원조를 퍼부으며 재건시키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창설하여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유대감을 세워 소련에 맞섰다. 약 40여년에 걸친 냉전은 결국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2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일본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분류:중국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