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식 (1888년)

朴載植.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8년 5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류연성·류동수·류교희·박진선(朴晋先)·이강욱(李康郁) 등과 함께 편항시장내의 공동타작장에 모여서 그 달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그 진행방법으로서 만일 일본경찰이 제지하면 편항주재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각각 인근지역의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여 동참하도록 하고, 유곡란(柳谷蘭)·박진성과 함께 편항 부근의 주민을 담당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2시경, 박재식은 500명의 군중을 이끌고 편항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이때 주재소에서 2명의 일본경찰이 출동하여 유연성을 강제로 체포해가자 계획대로 편항 주재소로 달려가 그곳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위협하기 위하여 권총을 발사하자 드디어 시위군중의 분노가 터져 박재식등의 지휘아래 투석과 곤봉을 이용하여 주재소와 순사 숙사를 파괴하고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이후 임동면 면사무소까지 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문서와 비품을 파기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건조물 파괴·가택침입·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공소했으나 1919년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7년 9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재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