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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단순 투자자로 남겠다던 퀴네는 2012년 여름에 이미 독자적으로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 영입을 추진했던 데 이어 2013년에도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이사회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펠릭스 마가트]]와 접촉하는 등 점차 노골적으로 구단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칼-에드가 야르호프가 이끄는 운영이사회는 그런 퀴네의 입김에 끌려다니며 우왕좌왕했고, 신중한 재정 관리와 장기적인 관점을 모토로 내걸었으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편, 아르네센의 후임으로는 [[올리버 크로이처]](Oliver Kreuzer)가 새로운 단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족한 경력 탓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팀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단순 투자자로 남겠다던 퀴네는 2012년 여름에 이미 독자적으로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 영입을 추진했던 데 이어 2013년에도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이사회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펠릭스 마가트]]와 접촉하는 등 점차 노골적으로 구단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칼-에드가 야르호프가 이끄는 운영이사회는 그런 퀴네의 입김에 끌려다니며 우왕좌왕했고, 신중한 재정 관리와 장기적인 관점을 모토로 내걸었으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편, 아르네센의 후임으로는 [[올리버 크로이처]](Oliver Kreuzer)가 새로운 단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족한 경력 탓에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2013-14 시즌은 출반부터 삐걱거렸다. 시즌 5라운드가 종료된 상황에서 구단은 15위까지 떨어졌고,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은 야심차게 데려온 애재자 [[자크 주아]](Jacques Zoua)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퀴네가 염원하던 대로 경질되었으며, 약 일주일 뒤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에 올려놓았던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Bert van Marwijk)가 새 감독으로 팀에 합류했다. 반 마르바이크의 지도 하에 HSV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 U-19 팀에서 콜업된 [[요나탄 타]](Jonathan Tah)가 단숨에 주전 센터백으로 발돋움했으며, 신입생 [[피에르-미헬 라조가]](Pierre-Michel Lasogga)와 임대에서 복귀한 [[하칸 찰하놀루]](Hakan Çalhanoğlu)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2013-14 시즌은 출반부터 삐걱거렸다. 시즌 5라운드가 종료된 상황에서 구단은 15위까지 떨어졌고, [[토어스텐 핑크|핑크]] 감독은 야심차게 데려온 애재자 [[자크 주아]](Jacques Zoua)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퀴네가 염원하던 대로 경질되었으며, 약 일주일 뒤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에 올려놓았던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Bert van Marwijk)가 새 감독으로 팀에 합류했다. 반 마르바이크의 지도 하에 HSV에는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났다. U-19 팀에서 콜업된 [[요나탄 타]](Jonathan Tah)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며 주전 센터백으로 발돋움했으며, 신입생 [[피에르-미헬 라조가]](Pierre-Michel Lasogga)와 임대에서 복귀한 [[하칸 찰하놀루]](Hakan Çalhanoğlu)가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요나탄 타|타]]는 전반기 이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막시밀리안 바이스터]](Maximilian Beister)와 [[슬로보단 라이코비치]](Slobodan Rajković)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등 스쿼드 전체에 부상이 들끓은 결과 성적은 수직하락했다. 특히 20라운드 [[헤르타 BSC]]와의 홈 경기에서는 0:3의 스코어로 역사적인 6연패를 기록하자 분노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주차장에 모인 300여명의 팬들은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야르호프 운영이사회장과 크로이처 단장, 그리고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팬들을 진정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계란과 쓰레기만 날아올 뿐이었다.<ref>빌트(Bild)지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주아는 팬이 던진 무엇인가에 맞고 울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벤피카에서 임대되어 온 [[올라 존]](Ola John)은 <s>눈치 없이</s> 차를 타고 유유히 떠나려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ref> 이에 감독이사회는 이튿날 비공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 현 운영이사회와 감독의 신임 여부에 대해 토의를 벌였고, 비록 당장에는 재신임이 결정되었으나, 이어진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과의 [[DFB-포칼]] 4강전과 리그 21라운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원정에서 모두 패하자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마침내 경질되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때를 구단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일컬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요나탄 타|타]]는 전반기 이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막시밀리안 바이스터]](Maximilian Beister)와 [[슬로보단 라이코비치]](Slobodan Rajković)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등 스쿼드 전체에 부상이 들끓은 결과 성적은 수직하락했다. 특히 20라운드 [[헤르타 BSC]]와의 홈 경기에서는 0:3의 스코어로 역사적인 6연패를 기록하자 분노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주차장에 모인 300여명의 팬들은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야르호프 운영이사회장과 크로이처 단장, 그리고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팬들을 진정시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계란과 쓰레기만 날아올 뿐이었다.<ref>빌트(Bild)지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주아는 팬이 던진 무엇인가에 맞고 울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벤피카에서 임대되어 온 [[올라 존]](Ola John)은 <s>눈치 없이</s> 차를 타고 유유히 떠나려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ref> 이에 감독이사회는 이튿날 비공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 현 운영이사회와 감독의 신임 여부에 대해 토의를 벌였고, 비록 당장에는 재신임이 결정되었으나, 이어진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과의 [[DFB-포칼]] 4강전과 리그 21라운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원정에서 모두 패하자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마침내 경질되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때를 구단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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