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29번째 줄: | 29번째 줄: | ||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칼이 뭉툭하여 참수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 위 작업이 끝나면 사형집행인은 큰 칼로 사형수의 목을 자른다. 이때 상투에 줄을 매어 목을 베기도 하였는데, 이는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효시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칼이 뭉툭하여 참수가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 ||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ref>효수의 주목적은 '''일벌백계'''인바, 나무나 다리 밑을 지나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사형장은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의 남문 안에 있는 고가(藁街)였다. 그런데 이곳은 제후국(속국) 사절들이 머무는 만이저(蠻夷邸) 인근에 있었다. 이는 정변 등을 꿈꾸던 제후국의 사절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ref>효수의 주목적은 '''일벌백계'''인바, 나무나 다리 밑을 지나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사형장은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의 남문 안에 있는 고가(藁街)였다. 그런데 이곳은 제후국(속국) 사절들이 머무는 만이저(蠻夷邸) 인근에 있었다. 이는 정변 등을 꿈꾸던 제후국의 사절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f> | ||
=== 문제점 === | === 문제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