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게시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는 포로를 참수<ref>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기에 참수형이 아니다</ref>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버젓이 올려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서는 포로를 참수<ref>국가가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기에 참수형이 아니다</ref>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유투브]]에 버젓이 올려 보여주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 ||
== 집행 과정 == | == 집행 과정 == | ||
31번째 줄: | 26번째 줄: | ||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ref>효수의 주목적은 '''일벌백계'''인바, 나무나 다리 밑을 지나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사형장은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의 남문 안에 있는 고가(藁街)였다. 그런데 이곳은 제후국(속국) 사절들이 머무는 만이저(蠻夷邸) 인근에 있었다. 이는 정변 등을 꿈꾸던 제후국의 사절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12021144141&code=960201&med_id=khan 사형장의 살풍경…인간백정의 역사], 경향신문, 2014.12.2.</ref> | 참수가 끝나고, 사형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지면, 사형집행인은 사형수의 목을 들어 나무에 매단다. 때로는 성문이나 다리에 매다는 경우도 있었다.<ref>효수의 주목적은 '''일벌백계'''인바, 나무나 다리 밑을 지나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사형장은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의 남문 안에 있는 고가(藁街)였다. 그런데 이곳은 제후국(속국) 사절들이 머무는 만이저(蠻夷邸) 인근에 있었다. 이는 정변 등을 꿈꾸던 제후국의 사절들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12021144141&code=960201&med_id=khan 사형장의 살풍경…인간백정의 역사], 경향신문, 2014.12.2.</ref> | ||
=== 문제점 === | === 문제점 : 고통스러운 죽음 === | ||
서양에서 단두대가 개발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 서양에서 단두대가 개발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속성과 잔혹성이었다. | ||
사형제 자체의 문제점은 논외로 하고 참수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한 번에 사람이 사망하지 않는 경우가 사형수나 집행인 모두 극심한 고통 또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이다. | |||
19세기 말 영국의 여행하 새비지 랜도어는 수구문(水口門, 광화문) 밖에서 참형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망나니가 처형장으로 가는 도중 주막집마다 들러 마신 술로 잔뜩 취해 단칼에 목을 베어내지 못하고 어깨를 찍는 등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ref>[http://smelldog.tistory.com/132 조선시대의 참형(斬刑)], 2010.1.25.</ref> | 19세기 말 영국의 여행하 새비지 랜도어는 수구문(水口門, 광화문) 밖에서 참형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망나니가 처형장으로 가는 도중 주막집마다 들러 마신 술로 잔뜩 취해 단칼에 목을 베어내지 못하고 어깨를 찍는 등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ref>[http://smelldog.tistory.com/132 조선시대의 참형(斬刑)], 2010.1.25.</ref> | ||
43번째 줄: | 36번째 줄: | ||
형정풍속도(刑政風俗圖)를 통해 본 조선의 형정(刑政)]에서 재인용</ref>}} | 형정풍속도(刑政風俗圖)를 통해 본 조선의 형정(刑政)]에서 재인용</ref>}} | ||
사형수의 가족들은 집행인에게 거금을 주고 한 번에 처형시켜줄 것을 | 이런 점을 걱정하여 사형수의 가족들은 집행인에게 거금을 주고 한 번에 처형시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 ||
예를 들면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는 어린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혼자서만 참수당하는 길을 택하였는데, 이에 자녀들은 자신들이 동양한 쌀과 돈 몇 푼을 집행인에게 가져다 주면서 '어머니가 고통 당하지 않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감동받은 사형집행인은 밤새 칼을 갈아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 예를 들면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는 어린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혼자서만 참수당하는 길을 택하였는데, 이에 자녀들은 자신들이 동양한 쌀과 돈 몇 푼을 집행인에게 가져다 주면서 '어머니가 고통 당하지 않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감동받은 사형집행인은 밤새 칼을 갈아 자녀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