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콜러

Raute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9일 (목) 22:48 판

틀:축구선수 정보

Fußballgott(축구의 신)[1]

콜러가 뛰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2][3]

클럽 경력

발트호프 만하임(1983-1987)

여느 선수들이 다 그렇듯 콜러도 어렸을 적에는 동네 유스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발트호프 만하임으로 옮겨가 프로계약을 맺은 뒤 18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첫시즌에는 시즌 막판 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계속 선발출장했고 이때부터 이적하기 전까지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맨마커로 유명하지만 선수생활 초창기만 하더라도 측면수비수와 미드필더로 많이 출장했고 주 포지션은 수비형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단지 젊은 나이에 분데스리가에서 1군 자리를 꿰찬 재능있는 선수 중 하나였지만 1986/87시즌부터 국가대표로 뽑히고, 중앙수비수로 출장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단숨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쾰른(1987-1989)

200만 마르크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쾰른으로 이적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처음에는 젊은 수비수에게 너무 비싼 금액이라고 주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분데스리가 최고의 중앙수비수로 자리매김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비록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는 못했지만 분데스리가의 수많은 공격수들을 잠재웠고, 당시 독일 최고의 팀이었던 바이언으로 이적하게 된다. 바이언이 약했던 적이 얼마나 된다고 한편 1988/89시즌 쾰른이 준우승 할 때 우승팀은 바이언이었는데 시즌 후반에 두 팀이 맞붙게 되었었다. 만약 쾰른이 승리를 거둔다면 4경기를 남겨두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경기였고, 당시 부상중이던 콜러가 이적하게 될 바이언을 상대로 뛰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결장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4] 하지만 콜러는 보란듯이 출전했고 비록 평상시보다 부진한 모습으로 패배했지만 부상을 감수한 투혼 덕에 타블로이드를 잠재울 수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1989-1991)

유벤투스(1991-1995)

도르트문트(1995-2002)

국가대표 경력

감독 경력

우승 경력

1. FC 쾰른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수상 경력

통산 기록

시즌 클럽 리그 대륙 총계 비고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1983-84 SV 발트호프 만하임 5 0 0 0 - - 5 0 분데스
1984-85 SV 발트호프 만하임 26 2 1 0 - - 27 2 분데스
1985-86 SV 발트호프 만하임 32 1 5 2 - - 37 3 분데스
1986-87 SV 발트호프 만하임 32 3 2 0 - - 34 3 분데스
1987-88 1. FC 쾰른 30 2 2 0 - - 32 2 분데스
1988-89 1. FC 쾰른 27 0 2 0 6 0 35 0 분데스
1989-90 바이에른 뮌헨 26 2 2 0 6 0 34 2 분데스
1990-91 바이에른 뮌헨 29 4 1 0 7 0 37 4 분데스
1991-92 유벤투스 27 3 7 0 - - 34 3 세리에A
1992-93 유벤투스 29 1 7 1 11 2 47 4 세리에A
1993-94 유벤투스 27 3 1 0 7 1 35 4 세리에A
1994-95 유벤투스 19 1 5 0 5 1 29 2 세리에A
1995-9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9 5 3 0 7 0 39 5 분데스
1996-97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30 2 1 0 8 1 39 3 분데스
1997-9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3 3 5[5] 1 5 0 33 4 분데스
1998-99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9 2 3 0 - - 32 2 분데스
1999-00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30 2 1[6] 0 10 2 41 4 분데스
2000-0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8 0 2 0 - - 30 0 분데스
2001-0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2 0 1[7] 0 10 0 33 0 분데스
종합 독일 398 28 31[8] 3 59 2 488 33
종합 이탈리아 102 8 20 1 23 4 145 13

  1. 거창한 의미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자팀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붙여주는 꽤나 흔한 별명이다. 그러나 이 별명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는 콜러다.
  2. 1989년에 독일의 키커가 콜러와 귀도 부흐발트의 차이라며 쓴 표현
  3. 마르코 판 바스턴을 콜러가 마크하고 있었으나 부상으로 교체된 뒤 부흐발트가 판 바스턴을 마크했다. 경기 막판 부흐발트는 판 바스턴에게 오는 공을 차단하지 않았고, 판 바스턴은 한 템포 빠른 논스톱 슛을 날려 무승부를 만들었다.
  4. 이와 비슷하게 바이언으로 이적할 예정이던 마테우스가 DFB-포칼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면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5. 리가포칼 포함
  6. 리가포칼
  7. 리가포칼
  8. 리가포칼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