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반도

218.236.209.93 (토론)님의 2020년 6월 2일 (화) 23:35 판

遼東半島

소개

요동반도는 압록강 바로 서북쪽에 존재하는 반도이다. 남쪽으로는 황해(서해), 서쪽으로는 발해 만(보하이 만)을 접하고 있다.둘 다 큰 범주에서 황해긴 하지만 요동이라는 지명은 요하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중국랴오닝 성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어 발음으로는 랴오닝 반도라 한다.

역사

요동반도는 고조선한나라가 각각 지배한 것으로 보이나 고조선은 요동반도를 지배했다고 보기 힘들고 영향력을 일부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역시 고조선 멸망 후 요동반도를 확실하게 손에 넣긴 했지만 변경 중의 변경이어서 확실하게 통치하지 못한 듯 하다.

때문에 요동반도 전역에 대한 확고부동한 지배력을 행사한 나라는 고구려가 최초이다. 중국 왕조들과의 격전 속에 3~4세기 무렵에 요동반도를 확고하게 지배한 것으로 보이는데, 요동반도의 풍부한 철광과 지리적 이점은 고구려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고구려는 요동성과 요동반도 끝의 비사성을 각각 육상과 해상에서의 대 중국 방어거점으로 삼았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나 바로 발해가 세워지면서 요동반도의 주인도 발해에게로 넘어간다. 다만 발해가 고구려만큼의 지배력을 행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8세기 무렵 장문휴가 수군을 동원해 당나라의 등주(산동반도)를 공략한 것을 보면 고구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지배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 멸망 이후에는 거란족요나라, 여진족금나라, 몽고족원나라 등 북방민족들이 차지하였으며 온전히 중국 한족 왕조의 영향력이 확실하게 뿌리내린 것은 명나라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명나라도 17세기 초반 여진족의 청나라에게 요동을 상실하고 이후 멸망하고 만다.

중국 왕조들이 북경에 도읍하기 시작한 이래 요동반도는 해상에서 북경으로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는 요충지로 기능하였으나 동양에서 그정도의 해상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없었기에 그 기능이 발휘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 청이 상대해야 하는 상대는 막강한 영국 해군이었고, 결국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요동반도의 청 요새들은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요충지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일본청일전쟁 승리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남하정책을 추구하던 러시아가 중심이 된 삼국간섭으로 도로 토해내야 했고, 이후 러시아는 요동반도 끝의 뤼순(현 다롄)을 해군 기지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요동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축출했지만 법적으로 요동반도를 차지하진 않았다. 이후 일본1931년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우며 요동반도를 만주국의 영토로 선언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러시아의 후신인 소련만주 전역을 발동, 러일전쟁의 패배를 되갚고 요동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했다. 이후 소련군은 뤼순에서 다시 해군 기지를 운용하다 중국에게 일괄적으로 반환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