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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조보(朝報)'''
'''민간 조보'''(民間朝報)는 [[1577년]] 말부터 [[1578년]] 초까지 [[조선]]에서 발행되었던 세계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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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민간 조보는 [[1577년]] 말부터 [[1578년]] 초까지 조선에서 발행되었던 세계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 등장배경 ==
== 출현 배경 ==
기존에 조보가 존재하였으나 이는 양반 등 특정 계층에 국한되어 배포되었고, [[양민]] 계층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었다.
기존에 조보가 존재하였으나 이는 양반 등 특정 계층에 국한되어 배포되었고, [[양민]] 계층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었다.


== 발간과 판매 ==
== 발간과 판매 ==
그러던 것이 [[1577년]]말, [[향리]] 출신 [[중인]]들과 [[양반]] 30여명이 '민간 조보'를 발행하여 구독료를 받고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헌부 등 관의 발행허가를 받아 영업을 개시하였다. 승정원의 조보를 본뜬 형태로서 조보를 초서체로 직접 쓴 것을 관청에서 구하여 목판인쇄를 통하여 대량 인쇄하였고, 이를 민간에 판매하였다. 민간 조보는 필사한 조보보다 읽기 편리하였고 돈을 내면 누구나 볼 수 있었으며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공주]](정명공주, 貞明公主)의 출산 등의 소식엔 호외까지 발행하였다.<ref>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이는 [[1638년]] [[명나라]]의 그것보다 61년, [[1650년]] [[독일]]보다 73년이나 앞선 것이다.<ref>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
그러던 것이 [[1577년]]말, [[향리]] 출신 [[중인]]들과 [[양반]] 30여명이 ‘민간조보’를 발행하여 구독료를 받고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헌부 등 관의 발행허가를 받아 영업을 개시하였다. [[승정원]]의 조보를 본뜬 형태로서 조보를 초서체로 직접 쓴 것을 관청에서 구하여 목판인쇄를 통하여 대량 인쇄하였고, 이를 민간에 판매하였다. 민간 조보는 필사한 조보보다 읽기 편리하였고 돈을 내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가 첫딸 [[정명공주]]를 출산한 등의 소식에는 호외까지 발행하였다.<ref>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이는 [[1638년]] [[명나라]]의 그것보다 61년, [[1650년]] [[독일]]보다 73년이나 앞선 것이다.<ref>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


== 폐간 ==
== 폐간 ==
{{날짜/출력|1578-2-1}} [[선조]]는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민간 조보 내용이 타국에 전해지면 나라의 수치를 폭로하는 것'이라며 진노하였다. 그리고 조보의 판매를 금지시켰으며 발행을 허가한 관리들을 처벌하였다.<ref>http://m.blog.naver.com/nada5582/220145746954</ref><ref>폐간이 [[1577년]]이었다는 기사도 있다. 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 이후 '민간 조보'와 같은 백성들을 위한 '신문'은 구한말까지 발행되지 않았다.
[[1578년]] [[2월 1일]] [[선조]]는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민간조보 내용이 타국에 전해지면 나라의 수치를 폭로하는 것’이라며 진노하였다. 그리고 조보의 판매를 금지시켰으며 발행을 허가한 관리들을 처벌하였다.<ref>http://m.blog.naver.com/nada5582/220145746954</ref><ref>폐간이 [[1577년]]이었다는 기사도 있다. http://m.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505250166</ref> 이후 민간조보와 같은 백성들을 위한 [[신문]]은 구한말까지 발행되지 않았다.


{{각주}}
{{각주}}
[[분류:조선]]
[[분류:1577년 창간]]
[[분류:폐간된 신문]]
[[분류:1578년 폐간]]

2023년 12월 1일 (금) 23:24 기준 최신판

민간 조보(民間朝報)는 1577년 말부터 1578년 초까지 조선에서 발행되었던 세계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출현 배경[편집 | 원본 편집]

기존에 조보가 존재하였으나 이는 양반 등 특정 계층에 국한되어 배포되었고, 양민 계층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었다.

발간과 판매[편집 | 원본 편집]

그러던 것이 1577년말, 향리 출신 중인들과 양반 30여명이 ‘민간조보’를 발행하여 구독료를 받고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헌부 등 관의 발행허가를 받아 영업을 개시하였다. 승정원의 조보를 본뜬 형태로서 조보를 초서체로 직접 쓴 것을 관청에서 구하여 목판인쇄를 통하여 대량 인쇄하였고, 이를 민간에 판매하였다. 민간 조보는 필사한 조보보다 읽기 편리하였고 돈을 내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가 첫딸 정명공주를 출산한 등의 소식에는 호외까지 발행하였다.[1]이는 1638년 명나라의 그것보다 61년, 1650년 독일보다 73년이나 앞선 것이다.[2]

폐간[편집 | 원본 편집]

1578년 2월 1일 선조는 우연히 이 사실을 알고 ‘민간조보 내용이 타국에 전해지면 나라의 수치를 폭로하는 것’이라며 진노하였다. 그리고 조보의 판매를 금지시켰으며 발행을 허가한 관리들을 처벌하였다.[3][4] 이후 민간조보와 같은 백성들을 위한 신문은 구한말까지 발행되지 않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