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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이후 ==
== 죽음 이후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틀 후인 일요일에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이 그를 안장한 돌무덤을 찾아가 보니,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의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갈릴리 일대에서 이미 죽었던 예수가 500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동시가 아니라 수시로 출현했다는 주장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예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제자들은 주장하기를 그가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오른편에 앉았으며, 언젠가 세상에 다시 와서 자신들을 살해한 불의한 세력과 그 동조자들을 처단하고 구약에서 말하는 정의와 평화의 새 세상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을 통해 교회가 성립되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후대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과 결탁하며 원래 철저하게 사회적, 역사적이었고 형이하학적 영역과 형이상학적 영역 모두를 모두 포괄하였던 이러한 가르침들은 개인적, 탈역사적이며 형이상학적 영역에 국한된 관념론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그것이 갈 때까지 간 것이 바로 이른바 예수천국 불신지옥. 종교개혁 이후에 들어와서야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나 둘씩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한꺼번에 뚝딱 복구된 것은 아니고, 교회사를 거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간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틀 후인 일요일에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이 그를 안장한 돌무덤을 찾아가 보니,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의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갈릴리 일대에서 이미 죽었던 예수가 500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동시가 아니라 수시로 출현했다는 주장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예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제자들은 주장하기를 그가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오른편에 앉았으며, 언젠가 세상에 다시 와서 자신들을 살해한 불의한 세력과 그 동조자들을 처단하고 구약에서 말하는 정의와 평화의 새 세상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을 통해 교회가 성립되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ref> 후대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과 결탁하며 원래 철저하게 사회적, 역사적이었고 형이하학적 영역과 형이상학적 영역 모두를 모두 포괄하였던 이러한 가르침들은 개인적, 탈역사적이며 형이상학적 영역에 국한된 관념론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그것이 갈 때까지 간 것이 바로 이른바 예수천국 불신지옥. 종교개혁 이후에 들어와서야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나 둘씩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한꺼번에 뚝딱 복구된 것은 아니고, 교회사를 거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간 것이다. </ref>


== 예수에 대한 종교별 견해 ==
== 예수에 대한 종교별 견해 ==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에 따르면 기독교의 신은 유일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세 인격을 갖고 있으며 이 세 인격이 하나의 신적 속성을 공유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삼위일체론에 따라 신의 세 위격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친다. 동시에 예수는 신으로부터 신의 말씀과 계시를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조리를 규탄하는 예언자, 신의 뜻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여 신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제사장, 신의 뜻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행하는 왕, 이렇게 세 직분을 감당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의 메시아(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로 지칭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에 따르면 기독교의 신은 유일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세 인격을 갖고 있으며 이 세 인격이 하나의 신적 속성을 공유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삼위일체론에 따라 신의 세 위격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친다. 동시에 예수는 신으로부터 신의 말씀과 계시를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조리를 규탄하는 예언자, 신의 뜻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여 신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제사장, 신의 뜻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행하는 왕, 이렇게 세 직분을 감당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의 메시아(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로 지칭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원래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이 내려 준 생명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나, 자기 욕망과 이기심에 빠져서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본성(이것을 죄라고 한다)에 사로잡혀 그 결과로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와 저주(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죽음)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신이 약속했고 거기에 따라서 지상에 보낸 메시아로서 그 자신이 신이며, 동시에 로마 제국 치하의 갈릴리라는 역사와 시대 속에서 살과 뼈를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 현실 속에 현존했던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백창우 작사, 작곡/안치환 노래)라는 CCM에서는 '하늘의 아들, 땅의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탈역사적 기독교(가톨릭, 정교회, 보수주의 개신교-개혁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 미국형 복음주의 등등)에서는 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여 후자는 거의 무시하며, 자유주의 개신교나 이신론에서는 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신정통주의 개신교와 유럽형 복음주의 개신교에서는 후자와 전자를 동등하게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원래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이 내려 준 생명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나, 자기 욕망과 이기심에 빠져서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본성(이것을 죄라고 한다)에 사로잡혀 그 결과로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와 저주(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죽음)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신이 약속했고 거기에 따라서 지상에 보낸 메시아로서 그 자신이 신이며, 동시에 로마 제국 치하의 갈릴리라는 역사와 시대 속에서 살과 뼈를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 현실 속에 현존했던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백창우 작사, 작곡/안치환 노래)라는 CCM에서는 '하늘의 아들, 땅의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탈역사적 기독교<ref>가톨릭, 정교회, 보수주의 개신교-개혁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 미국형 복음주의 등등</ref>에서는 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여 후자는 거의 무시하며, 자유주의 개신교나 이신론에서는 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신정통주의 개신교와 유럽형 복음주의 개신교에서는 후자와 전자를 동등하게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마마마]]에서 [[카나메 마도카]]의 포지션과 상당히 일치한다.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모든 마법소녀들을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마도카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마법소녀가 됨으로써 모든 마법소녀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듯이,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함에 따라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놓인 인류를 그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예수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가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인류인지는 신학적 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수 개혁주의 장로교와 성공회에서는 선택을 받은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지만, 나머지 종파(심지어 신정통주의 장로교까지도)에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 고린도후서 5:14, 골로새서 2:12-15 등등 자신의 서신서에서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음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려고 하는 타락한 자아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정치악을 박살냈으며, 이에 따라 그를 믿는 사람들은 과거의 타락한 자아가 죽고, 서로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고 가르쳤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마마마]]에서 [[카나메 마도카]]의 포지션과 상당히 일치한다.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모든 마법소녀들을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마도카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마법소녀가 됨으로써 모든 마법소녀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듯이,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함에 따라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놓인 인류를 그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예수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가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ref>어떤 인류인지는 신학적 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수 개혁주의 장로교와 성공회에서는 선택을 받은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지만, 나머지 종파(심지어 신정통주의 장로교까지도)에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ref>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 고린도후서 5:14, 골로새서 2:12-15 등등 자신의 서신서에서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음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려고 하는 타락한 자아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정치악을 박살냈으며, 이에 따라 그를 믿는 사람들은 과거의 타락한 자아가 죽고, 서로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고 가르쳤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거짓 예언자이며 자칭 메시아, 심지어는 거짓 선동을 일삼다가 딱 걸려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찌질한 선동꾼으로 간주한다. 거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이다. 대충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심영을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아예 매일 하는 18조 기도문에 '나자렛 사람의 도당들이 멸망하기를' 하는 구절을 넣기도 했을 정도다. 현대 유대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소수파이긴 하지만,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라고 해서 유대교 안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거짓 예언자이며 자칭 메시아, 심지어는 거짓 선동을 일삼다가 딱 걸려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찌질한 선동꾼으로 간주한다. 거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이다. 대충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심영을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아예 매일 하는 18조 기도문에 '나자렛 사람의 도당들이 멸망하기를' 하는 구절을 넣기도 했을 정도다. 현대 유대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소수파이긴 하지만,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라고 해서 유대교 안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2015년 4월 20일 (월) 16:09 판

BC 4-AD 30

기독교의 창시자이며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 기독교에서는 피조물이 아니라 신 그 자체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간주하며, 이슬람교에서는 신이 보낸 예언자로 간주한다.

이름과 뜻

이름은 원래 히브리어로 '예호슈아'라고 하며 '신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예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구어로 사용하던 아람어로는 '예슈아'라고 하였다. 아람어 이름을 헬라어로 음역하여 '예소우스'(Iesous)라 전해졌고 라틴어 사용자들은 헬라어 음역을 받아들여 '예수스'(Iesus)라고 하였다. 구한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던 당시에 이를 한글로 옮겨 '예수'라고 하였다.[1]

탄생과 성장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서 사회 구조악(로마 제국의 식민지배와 지배계층의 무자비한 억압과 착취)과 종교악(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들을 핍박하면서 그러한 사회 구조악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도모하는 예루살렘 성전 세력)이 난무하던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성경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요셉약혼한 상태에서 아직 한 번도 검열삭제를 한 적이 없는 처녀의 몸으로 그를 잉태하였다. 이는 당시 유대교 계명에 의하면 당장 투석형에 처해야 할 중형이었기에 약혼남인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으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지금 잉태한 아기는 신이 보낸 메시아임을 고지하고, 요셉은 마리아가 아이를 낳기까지 한 번도 검열삭제를 하지 않는다. 그런 도중에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 명령을 내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거주지인 나자렛을 떠나 원적지인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된다. 예수는 이 곳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태어난 직후 당시 분봉왕으로 일대를 통치하던 헤롯 대왕은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베들레헴의 2세 미만 남아들을 대량학살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예수의 가족들은 조용히 이집트로 피신하여 예수는 목숨을 건진다. 이후 예수는 나자렛에서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2세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의 랍비들과 토론을 벌인 것 외에는 유년 시절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예수 운동

예수가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한 것은 30세 무렵부터이다. 나자렛에서 목수 또는 석공 일을 하던 노동자였던 그는 당시 요단강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베풀던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명상한 후, 예루살렘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읽으며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스스로 입증한다. 이후 예수는 베드로, 안드레, 대 야고보, 요한, 마태, 시몬, 빌립, 바돌로매, 소 야고보, 다대오, 도마, 유다 이렇게 12명의 제자를 선발하여 갈릴리 일대를 중심으로 예수 운동을 벌인다. 당시 갈릴리에서는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서 온갖 정치, 경제, 사회적 폭압이 난무하였고 종교 권력은 그러한 사회악과 결탁해 종교의 이름으로 그런 사회악을 정당화하며 민중을 억압하던 막장 오브 막장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수탈을 자행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인과 빈민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한 생활을 하였으며, 대다수 민중들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말해 갈릴리 지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오지 탄광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 세력은 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온갖 율법주의적인 규례를 만들어 가지고 민중들을 억압하였으나, 정작 유대교 율법의 핵심인 신과 타자에 대한 사랑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먹은 지 오래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진행된 예수 운동은 인격적인 거듭남, 즉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따라서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철저하게 타자를 서로서로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살아가려는 자세를 갖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을 신약성경에서는 '메타노이아'라 하는데, 직역하면 '생각을 바꾼다'는 뜻이고 한글로는 '회개하다'라고 한다. 이러한 예수운동은 동시에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짓눌려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던 빈민, 장애인, 여성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그러한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맞서서 구약성경에서 제시한 정의와 평화의 대안적 세계질서를 선포하는 운동이었다.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그 본질에서 이런 빈민과 장애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해석. 예수는 자신이 구약성경에서 제시한 정의와 평화의 나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더불어 살아가며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대안적 사회와 세계를 이끌 메시아임을 가르쳤다. 이에 따라 예수는 필연적으로 당대 이스라엘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그러한 사회 구조악의 정점에 있는 헤롯 안티파스를 '저 여우'라 하고, 종교악의 정점에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을 비롯하여 온갖 쌍욕을 퍼부으면서 쿼크가 되도록 깠다. 예수의 주적은 바로 이런 종교악의 정점에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고, 이들은 예수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온갖 도발과 어그로를 끌어 대다가 그 때마다 역관광을 당하곤 했다.

죽음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위험 인물로 여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은 예수를 스스로 메시아라 자처했다는 것을 근거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는 공생애의 마지막을 맞는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예수는 구약의 스가랴서에서 예언한 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군중들은 예수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로마 제국을 무찌르고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재건해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은 결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로마를 박살내고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재건할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약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죽음의 세력들을 무찌른 다음 천하 만민을 정의와 평화의 나라로 초대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과는 일치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상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급이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직후, 성전에 들어가서 종교의 이름을 내세워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을 억압하고 삥뜯어 먹던 인간 쓰레기들을 향해 온갖 쌍욕을 퍼붓고, 채찍을 휘둘러 쓰레기를 치운 다음 집기를 전부 뒤엎어 버렸다. 한 주간 동안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가르친 예수는 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고, 그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비유하면서 자신이 전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임을 예고하면서 성찬 예식을 제정한다. 그러면서 제자들 가운데 유다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세력에게 넘길 것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예수는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고, 스스로 왕이라 자처한 죄, 즉 내란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요구하면서 저 새끼는 우리 왕 아님, 우리 왕은 오직 로마 황제뿐임,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가 사회 구조악과 결탁하고 있음을 인증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 사회적 구조악과 예루살렘 성전의 서기관 및 바리새인들이라는 종교악에 의하여 예수는 다른 두 명의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죽음 이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틀 후인 일요일에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이 그를 안장한 돌무덤을 찾아가 보니,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의 시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갈릴리 일대에서 이미 죽었던 예수가 500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동시가 아니라 수시로 출현했다는 주장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예수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제자들은 주장하기를 그가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종교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의 오른편에 앉았으며, 언젠가 세상에 다시 와서 자신들을 살해한 불의한 세력과 그 동조자들을 처단하고 구약에서 말하는 정의와 평화의 새 세상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을 통해 교회가 성립되어 오늘날의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2]

예수에 대한 종교별 견해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에 따르면 기독교의 신은 유일신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세 인격을 갖고 있으며 이 세 인격이 하나의 신적 속성을 공유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삼위일체론에 따라 신의 세 위격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친다. 동시에 예수는 신으로부터 신의 말씀과 계시를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타락과 부조리를 규탄하는 예언자, 신의 뜻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신에게로 인도하여 신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제사장, 신의 뜻에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행하는 왕, 이렇게 세 직분을 감당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의 메시아(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로 지칭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원래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신이 내려 준 생명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창조되었으나, 자기 욕망과 이기심에 빠져서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하여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본성(이것을 죄라고 한다)에 사로잡혀 그 결과로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있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와 저주(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죽음)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신이 약속했고 거기에 따라서 지상에 보낸 메시아로서 그 자신이 신이며, 동시에 로마 제국 치하의 갈릴리라는 역사와 시대 속에서 살과 뼈를 가지고 구체적인 시대 현실 속에 현존했던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백창우 작사, 작곡/안치환 노래)라는 CCM에서는 '하늘의 아들, 땅의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탈역사적 기독교[3]에서는 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여 후자는 거의 무시하며, 자유주의 개신교나 이신론에서는 후자를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신정통주의 개신교와 유럽형 복음주의 개신교에서는 후자와 전자를 동등하게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죽음은 마마마에서 카나메 마도카의 포지션과 상당히 일치한다.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주 가운데 놓여 있는 모든 마법소녀들을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마도카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마법소녀가 됨으로써 모든 마법소녀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듯이, 신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함에 따라 신의 저주를 받아 비참한 실존 가운데 놓인 인류를 그 저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예수 한 사람이 그 저주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가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4]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 고린도후서 5:14, 골로새서 2:12-15 등등 자신의 서신서에서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음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려고 하는 타락한 자아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가 그 죽음을 넘어 부활함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사회 구조악과 정치악을 박살냈으며, 이에 따라 그를 믿는 사람들은 과거의 타락한 자아가 죽고, 서로 섬기고 더불어 살아가며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고 가르쳤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거짓 예언자이며 자칭 메시아, 심지어는 거짓 선동을 일삼다가 딱 걸려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찌질한 선동꾼으로 간주한다. 거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이다. 대충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심영을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아예 매일 하는 18조 기도문에 '나자렛 사람의 도당들이 멸망하기를' 하는 구절을 넣기도 했을 정도다. 현대 유대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소수파이긴 하지만, 메시아닉 쥬(Messianic Jew)라고 해서 유대교 안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이 보낸 위대한 예언자라 생각하여 의외로 존경한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완벽한 인간이며 신의 피조물이지만, 신의 뜻을 가르치기 위하여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고 할 때 신이 예수를 데려가서 하늘로 올라갔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예수로 위장한 유다였다고 주장한다. 즉 이슬람에서 예수는 최후이자 최고의 예언자인 무함마드 바로 아래 레벨의 예언자이다.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완벽한 신이자 완벽한 인간의 자격으로 예언자, 제사장, 왕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고 믿지만 이슬람에서는 신성은 일체 없이 완벽한 인간의 자격으로 예언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비종교인들 가운데도 예수를 위대한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 존경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놓고 기독교를 까면서 동시에 예수까지 같이 까는 하드코어 기독교 안티들도 존재한다.

기타

예수를 표현한 미술 작품들을 보면 전형적인 장발에 수염 기른 백인 남성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 예수는 유대인이었기에 오늘날 아랍인들이나 세파라딤계 유대인 같은 황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키는 153cm 정도였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직업은 흔히 목수였다고 하지만, 실제 예수가 탄생하고 활동했던 지역의 식생은 나무가 많지 않은 초원과 반사막 지역이다. 따라서 예수의 직업은 목수였다기보다는 석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어로 목수와 석공을 가리키는 단어는 같다.

예수가 사용한 언어는 바빌론 포로기 이후 귀환한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구어인 아람어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갈릴리 사투리를 사용하였다.


<references>

  1. 구한말 시절 음역은 현대와 기준이 많이 다르다. 한 가지 보이는 특징적인 요소는 당시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힘들거나 잘 안 들리는 발음은 과감히 무시하기다. 그래서 명사에서 -s로 끝나는 고유명사는 아예 s는 음역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런 특징이 극명하게 나타난 음역이 개역성경에서 나타난 '아데미'란 음역이다. 아르테미스(Artemis)에서 조선인 귀에 잘 안 들리는 r과 s를 무시했다. '예수스'가 '예수'로 음역됨도 비슷한 사례다.
  2. 후대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과 결탁하며 원래 철저하게 사회적, 역사적이었고 형이하학적 영역과 형이상학적 영역 모두를 모두 포괄하였던 이러한 가르침들은 개인적, 탈역사적이며 형이상학적 영역에 국한된 관념론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그것이 갈 때까지 간 것이 바로 이른바 예수천국 불신지옥. 종교개혁 이후에 들어와서야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나 둘씩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한꺼번에 뚝딱 복구된 것은 아니고, 교회사를 거치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간 것이다.
  3. 가톨릭, 정교회, 보수주의 개신교-개혁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 미국형 복음주의 등등
  4. 어떤 인류인지는 신학적 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수 개혁주의 장로교와 성공회에서는 선택을 받은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지만, 나머지 종파(심지어 신정통주의 장로교까지도)에서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