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요약 없음 |
|||
(다른 사용자 한 명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http://static.wixstatic.com/media/a3e3eb_7bcb97844e784f7187406ff89560866f.jpg?width=80% | http://static.wixstatic.com/media/a3e3eb_7bcb97844e784f7187406ff89560866f.jpg?width=80% | ||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일본]] [[호류사]]의 벽에 그린 그림 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논란이 있다. |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일본]] [[호류사]]의 벽에 그린 그림 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논란이 있다. | ||
== 담징의 작품인가? == | == 담징의 작품인가? == | ||
만약 호류지의 건물이 실제로 670년에 재건된거라면 담징의 생몰연대를 넘어가기에 호류지 금당의 벽화는 [[담징]] 작품이 아니게 된다. 또한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린 것이 고구려의 담징이라는 것을 학계에 알린 것은 [[이병도]]인데, 이 주장의 근거는 문헌자료가 아닌 일본의 구전이었기 때문에 신빙성에 논란이 있다. | 만약 호류지의 건물이 실제로 670년에 재건된거라면 담징의 생몰연대를 넘어가기에 호류지 금당의 벽화는 [[담징]] 작품이 아니게 된다. 또한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린 것이 고구려의 담징이라는 것을 학계에 알린 것은 [[이병도]]인데, 이 주장의 근거는 문헌자료가 아닌 일본의 구전이었기 때문에 신빙성에 논란이 있다. | ||
== 보존상태 == | == 보존상태 == |
2021년 12월 3일 (금) 10:28 기준 최신판
http://static.wixstatic.com/media/a3e3eb_7bcb97844e784f7187406ff89560866f.jpg?width=80%
고구려의 화가 담징이 일본 호류사의 벽에 그린 그림 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논란이 있다.
담징의 작품인가?[편집 | 원본 편집]
만약 호류지의 건물이 실제로 670년에 재건된거라면 담징의 생몰연대를 넘어가기에 호류지 금당의 벽화는 담징 작품이 아니게 된다. 또한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린 것이 고구려의 담징이라는 것을 학계에 알린 것은 이병도인데, 이 주장의 근거는 문헌자료가 아닌 일본의 구전이었기 때문에 신빙성에 논란이 있다.
보존상태[편집 | 원본 편집]
1949년 호류사에 불이 났을 때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