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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의 북서쪽에 자리한 건물로 왕조가 설립된 이후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입주자가 너무 많아질 것에 대비하여 지은 전각이다. {{ㅊ|정전을 무한정 길게 증축할 수도 있는데}}. 영녕전은 세종 3년(1421년) 정종(당시 공정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정전의 전각이 부족하여 지은 것으로 {{ㅊ|나라 창업한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벌써 모자라?}} 처음에는 6칸짜리 건물이었으나 이쪽에다가 모시는 왕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여러 차례 확장공사를 거듭하여 현종 2년에 현재의 규모인 16칸짜리 건물로 변모하게 되었다. | 정전의 북서쪽에 자리한 건물로 왕조가 설립된 이후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입주자가 너무 많아질 것에 대비하여 지은 전각이다. {{ㅊ|정전을 무한정 길게 증축할 수도 있는데}}. 영녕전은 세종 3년(1421년) 정종(당시 공정왕)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정전의 전각이 부족하여 지은 것으로 {{ㅊ|나라 창업한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벌써 모자라?}} 처음에는 6칸짜리 건물이었으나 이쪽에다가 모시는 왕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여러 차례 확장공사를 거듭하여 현종 2년에 현재의 규모인 16칸짜리 건물로 변모하게 되었다. | ||
본래. 역대 국왕의 신위는 창업주인 태조와 현직 국왕의 4대조, 불천위(不遷位)에 해당하는 생전 업적이 뛰어난 국왕과 왕비들의 신위는 정전에, 정전에서 옮겨진 국왕과 왕비, 새로이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는 영녕전에 모시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왕들은 불천위로 간주되어 정전에 모셔지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추존왕, 그리고 후사가 없어 왕위를 잇지 못한 왕들이 주로 정전에서 옮겨져 모셔졌다. 영녕전에 모셔진 대표적인 왕들로 정종, 문종, 단종, 인종, 명종, 경종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식이 없어 | 본래. 역대 국왕의 신위는 창업주인 태조와 현직 국왕의 4대조, 불천위(不遷位)에 해당하는 생전 업적이 뛰어난 국왕과 왕비들의 신위는 정전에, 정전에서 옮겨진 국왕과 왕비, 새로이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는 영녕전에 모시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왕들은 불천위로 간주되어 정전에 모셔지고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와 추존왕, 그리고 후사가 없어 왕위를 잇지 못한 왕들이 주로 정전에서 옮겨져 모셔졌다. 영녕전에 모셔진 대표적인 왕들로 정종, 문종, 단종, 인종, 명종, 경종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식이 없어 왕위를 잇지 못한 왕들이다. | ||
현재 영녕전에는 16실에 34명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까지의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봉안하여으며.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 현재 영녕전에는 16실에 34명의 왕과 왕비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까지의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봉안하여으며.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