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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전 앞에 펼쳐진 단도 진짜 넓은데 자세히 보면 중앙이 살짝 볼록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가 내렸을 때 빨리 배출하기 위해서인데 맨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 부분에 배수구(?) 비슷한 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저 정전 앞에 펼쳐진 단도 진짜 넓은데 자세히 보면 중앙이 살짝 볼록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가 내렸을 때 빨리 배출하기 위해서인데 맨 위의 사진을 보면 오른쪽 부분에 배수구(?) 비슷한 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
원래는 '''11칸'''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조선 | 원래는 '''11칸'''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영조 (조선)|영조]] 때 왕이 계속 죽으면서 신주가 계속 늘어서(...) 종묘가 꽉 차게 되는 바람에 4칸을 증축면서 '''15칸'''으로 늘게 되었고 이후 [[헌종 (조선)|헌종]] 때 또 꽉 차서 또 4칸을 증축하면서 '''19칸'''이라는 미친 건물이 되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8&cp_code=cp0237&index_id=cp02370011&content_id=cp023700110001&search_left_menu=</ref> 이렇게 건물을 증축하는 방식은 우리나라 건축 양식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방식이다. 종묘의 정전의 기둥들을 잘 보면 기둥마다 오래된 정도가 다른데 서쪽이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 ||
===수복방=== | ===수복방=== |